brunch

부끄러움이 다정함이 되는 순간

실수의 미학

by 유쾌한 철옥쌤

쓰레기더미 속에 있는 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질타와 비난을 한꺼번에 학부모한테 받은 날이 그렇다.

“기본이 되어 있는 선생님이 맞긴 한거예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냐구요!!!! 도대체 무슨 딴짓을 하면 이걸 모를 수가 있냐고요!!!! 선생님처럼 대책없는 사람은 정말 처음입니다!!!!” 이렇게 대책없는 사람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 버린 날. 차라리 쓰레기처럼 분리배출이라도 하면 나을텐데 깨진 유리조각같은 분노, 오물 가득 묻은 비난, 땅속 깊에 매립해도 평생 썩지 않을 좌절 등이 한 번에 나한테 쏟아졌다. 어쩌다 나는 비분리배출된 쓰레기 속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한 유아의 실수한 배변의 결과물을 분리배출 못한 채 귀가지도했기 때문이었다. 귀가준비를 할 즈음 짙은 방귀냄새를 맡았고 실수를 해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있으면 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떤 아이도 말하지 않았다. 정말 누군가 짙은 방귀를 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대변실수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개별 유아들의 뒷바지를 잡아당겨 밀착되어 있는 똥님을 확인하는 절차도 어떤 유아에게는 수치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똥부착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똥부착 미확인절차는 결국 가정에서는 똥폭풍이 되어 나에게 똥독설을 마구마구 배설하기 시작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죄송합니다’를 무한반복하기는 처음이었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라는 속담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후회하거나 다른 조치를 해도 소용이 없다라는 뜻이지만 다른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고치는 게 맞다. 비굴모드로 죄송함을 반복 읊조리는 상황을 두 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입학 첫 날부터 똥과 오줌을 틀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사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내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비밀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난 유치원선생님을 20년 넘게 해 왔는데 지금 너희들처럼 이렇게 특별한 눈빛으로 매우 친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아이들은 처음이야. 심지어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도 말하고 싶어졌어. 하지만 비밀은 말 안하려고 해. 왜냐면 오줌과 똥과 관련되어 있는 나의 비밀이라서 좀 부끄럽거든. 그 비밀을 오늘 너희들이 듣고 집에 가서 엄마나 아빠한테 이야기하다면 나는 정말 하늘 땅만큼 부끄러워질 게 틀림없어”라고 말하자 모두 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집에 가서 절대로 이야기 안 할게요! 비밀 말해 주세요! 오줌과 똥 비밀 말해주세요!”

실제로 나는 36살 즈음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기간에 업무와 육아, 논문기한 임박 등으로 심신이 매우 힘들었는데 결국 꿈에서 소변을 보는 꿈을 꾸고 누워자는 침대를 오줌으로 흔건히 젖게 해버렸다. 꿈속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말이다.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면서 기침감기로 몸이 너무 안좋아 기침을 힘겹게 하던 도중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짝 지려나온 똥이야기도 조미료처럼 추가해서 이야기 해줬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똥오줌을 그렇게 실수한게 너무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혹시나 나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었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솔직하게 의사선생님께 내가 실수한 걸 말씀드렸단다. 그랬더니 의사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걱정하지마세요 저도 얼마전에 그런 적이 있었는 걸요. 몸과 마음의 면역이 많이 떨어지면 그럴 수 있답니다. 그럴 때는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게 중요합니다. 링거한 대 맞고 돌아가셔서 푹 쉬세요. 어서 면역력을 끌어올리세요라고 했단다. 선생님은 지금 너희들이 몸과 마음이 약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유치원도 바뀌고 교실도 바뀌고 선생님도 처음 만나고 친구들도 낯설으니까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 것 같애.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다보면 선생님처럼 똥오줌 실수를 할 수 있거든. 그때는 꼭 유치원 엄마인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해주길 바래. 그리고 혹시 친구가 면역력이 떨어져 똥오줌 실수를 하게 된 걸 알게 되었다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도록 주사나 약보다 더 안정을 느낄 수 있는 눈빛이나 말, 따뜻한 태도로 도와주자”

이 말이 끝나자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의 눈빛이 나에게 말을 해 주고 있었다.

'나 알아들었어요'

'우리가 친근하게 느끼는 말 비밀과 똥오줌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었어요'

'똥오줌 실수도 다정하게 바라볼 거예요'

'선생님 이야기는 진짜 같아요'

아이들은 숨죽인 듯 조용했다가 이내 외쳤다. “그럼 우리도 말해도 돼요?”

그렇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저는 엄마 몰래 오줌을 지렸는데 무서워서 말 안 했어요.”

아이들은 하나씩, 자신이 숨기고 있었던 작고 큰 실수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선생님도 그런 적 있어요.”

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실수를 결함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로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사이의 언어’는 실수를 숨기지 않고, 함께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언어다.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조심스레 붕대를 감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리듬이다.

그날 이후, 아이들과 나는 더 많은 실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넘어졌던 기억, 울면서 소리 질렀던 날, 혼자 속상했던 순간까지.

그리고 실수 하나하나가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어른은 없다는 것을.

오히려 완벽해 보이는 어른일수록 다가가기 어렵다는 것도.

그보다는 실수한 적이 있고, 그 실수를 받아줄 줄 아는 어른,

자신의 허물을 먼저 꺼내 놓을 수 있는 어른을 더 신뢰하고, 더 좋아했다.

교사인 내가 먼저 드러내면,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죄책감 없이 내보인다.

교사가 먼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아이도 ‘그럼 나도 괜찮을까?’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진짜 배움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드러냄은 용기다. 용기는 연결이다. 연결은 존엄이다.

내가 당신의 실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 너머의 당신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내가 실수를 어떻게 대하는지, 아이는 그걸 통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를 배운다.

내가 부끄러움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이도 자신의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수한 아이를 혼내는 대신,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순간,

교실은 훈육의 공간이 아니라 성장의 공간이 된다.

혼냄은 행동을 멈추게 하지만, 이해는 마음을 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사람이 되자.

실수를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눈빛, 존엄을 지켜주는 말.

그것으로 아이들에게 ‘사람다운 어른’을 보여주는 교사가 되자고.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너는 괜찮아"라고 들리기를.

그리고 그 말이,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걷게 해 주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이 바로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