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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이 바로 너야

어른의 말이 길이 되는 순간

by 유쾌한 철옥쌤


초등학교 시절 주어진 과제를 다 하고 나면 담임선생님이 공책에 ‘참 잘했어요’나 ‘검’도장을 찍어주셨다. 개인적으로 ‘참 잘했어요’도장이 더 좋았다. ‘검’도장은 검사완료의 뜻인데 너무 딱딱한 느낌이었음을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느낌이 떠올려진다. 화들짝 놀라운 건 정육점에 걸린 큰 돼지고기 덩어리의 껍질에 선생님이 찍어줬던 도장과 똑같은 ‘검’표시가 짙은 보라색으로 베여있는 걸 내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후부터 엄마가 끓여준 돼지고기 김치찌개에서 보라색 글자도장 표시가 나는 고기조각을 발견하고 김치만 골라 먹었다. 어쩜 이게 물에 빠진 고기는 안 먹고 구운 고기를 선호한 시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구운 고기를 선호하듯 난 ‘참 잘했어요’도장을 선호한다는 말이 하고 싶어 돼지고기 이야기까지 꺼냈나보다. 담임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이 공책에 은밀히 찍혀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 낸 숙제에 대한 규정도 참 잘한 게 되고 그 숙제를 해 낸 나도 참 잘한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규정해주는 선생님은 나에겐 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유치원교사가 되어 어느새 유아들의 그림이나 활동지에 여러 가지 말도장을 찍게 되었다. 상품화된 말도장 셋트에는 20가지가 넘는 도장이 들어 있다. ‘참 잘했어요’ 뿐만 아니라 ‘훌륭해요’, ‘대단해요’, 심지어 ‘짱’도 있다. 선생님놀이를 즐겨하던 내가 선생님이 되어 여러 가지 말 도장을 찍어주다보면 나만 아는 짜릿함이 있기도 했다. 유아들은 찍힌 글자와 작은 이모티콘 그림을 미소지며 바라보다가 각자가 보관하는 A4 파일에 활동지를 넣어둔다. 주로 7세 담임교사를 많이 했는데 학급의 절반의 유아들은 글자도장에 찍힌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 ‘선생님이 나한테 글자랑 작은 그림이 있는 도장을 찍어줬어. 웃으면서 찍어줬다구...이건 잘했다는 칭찬일거야’라고 유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을 줄도 모른다. 비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도장을 찍어 준 교사의 표면적 행동과 눈으로 확인되는 표면적인 글자도장은 유아가 개인 파일에 넣는 순간부터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찍고 찍히는 도장으로 전달될 수 없는 마음과 애정을 유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교사여야 하고 그것을 전달받아야 할 존재는 유아이기에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존재가 존재에 이르기 위해서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비유했고 트로트 가수는 ‘이름표를 붙여 ♪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라고 노래했는데 나는 어떻게 교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시와 노래 모두 언어를 매개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진정한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했기에 나도 언어를 매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졌다. 언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문자언어와 음성언어, 표현언어와 수용언어, 외적 언어와 내적 언어 등이 있지만 나만이 기준을 잡은 언어는 길들이는 언어와 스며드는 언어이다. 뛰지마세요, 이거 뜯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지금 나가는 거 아니에요, 친구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등등의 말들은 내가 사용한 길들이는 언어였다. 자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며드는 언어는 무엇일까? 스며든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랑비 한 두 방울로 옷이 젖지 않는 것처럼 누적된 애정이 있어야 하고 축적된 눈빛이 있어야 한다. 점심시간, 정리할 시간을 다 되어 가는데 시금치나물을 전혀 먹지 못하고 쭈뼛쭈뼛 나의 눈치를 살피는 유아 J. 이때 내가 만약 “빨리 하나만 먹고 정리하자고요. 그거 먹는다고 죽지 않아요! 친구들 G랑, Y는 시금치 다 먹었다구요. 시금치 나물 한 줄기 먹는게 뭐가 힘들어요!”라고 길들이는 언어를 폭풍처럼 내뱉었다면 J는 시금치를 먹는 척은 했겠지만 평생 시금치를 원망하며 지낼 지도 모르는 일이다.

“J야. 억지로는 안먹었으면 좋겠어 식사시간에는 조금이라도 네가 편했으면 좋겠어 나도 가지나물 마흔살 넘어서 먹기 시작했거든.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가지나물을 보면 귀신머리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먹지 못했어. 식탁에 가지나물이 있으면 그쪽으로 쳐다보지도 않았어. 10살 넘어서는 쳐다보는 건 괜찮더라구. 20살때는 젓가락를 살짝 대기만 하고 잽싸게 뗐지. 30살때는 젓가락으로 들어올려서 입 앞까지만 가져왔다가 다시 내려놨지. 40살 때 드디어 처음 가지나물을 먹게 된거야. 선생님도 가지나물이랑 친해지게 되는 시간이 40년이나 걸렸어. 넌 이제 6년밖에 되지 않아서 시금치랑 친해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선생님은 너를 계속 기다릴거야. 기다린다는 뜻은 너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얼마 전에 본 책에서 사랑한다는 건 기다릴 수 있는 거라고 적혀있었어”

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스며드는 말의 정답안은 어디에도 없지만 귀한 존재 J에 대한 나의 귀한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쓴 건 정답 아니 해답이었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J를 보면서 해답이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달 후 점심시간에 J가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올라갔을 때나 나올 법한 표정으로 교실 앞쪽으로 뛰쳐나와 “선생님! 저 6년 만에 처음으로 시금치 먹었어요!!! 생각보다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우와~ J의 엄청난 성장 포인트를 바로 곁에서 내가 지켜보다니!!! 난 J를 끌어안고 “너무 대단하다! 선생님은 40년이 걸린 일을 넌 6년 만에 해냈구나. 내가 너한테 배워야겠어. 스스로 도전해보는 것 말이야. 정말 어려운 걸 네가 해 냈구나! 축하해! 선생님은 오늘 6월 23일 목요일을 잊지못할거야...” 라고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은 혼자 궁시렁궁시렁(그 어려운 걸 해 내다니...우와...나는 40년 걸렸는데..) 거리며 유치원 화장실에서 손씻기도 하고 놀이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유아들이 물어본다. “선생님,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소문낼 기회를 잡은 순간이다. “응~ 우리반에 J가 있거든. 근데 오늘 6년만에 시금치를 처음으로 먹은 거야. 그것도 스스로! 선생님은 40년이 걸렸는데 말이야. 이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맞다. 온 유치원에 소문내고 다닌다. 진짜 이 통소문은 마지막에 전달될 대상은 따로 있다. 3~5분의 전화통화면 족하다. “J어머니~ 오늘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J가 6년만에 시금치를 스스로 먹었습니다. 사실은 한 달 전 즈음에...” 이렇게 한 달 전에 내가 J에게 해 줬던 말부터 오늘 먹은 이야기, 유치원 곳곳을 떠돌며 소문내고 다닌 이야기까지 포함된 통소문을 J의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J엄마도 대견스럽다는 말과 함께 “오늘 케익이라도 사서 축하라도 할까요?”라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좋은 생각이셔요. 케익에 축하의 의미를 담고 싶은 생각이시잖아요? 앞으로 J는 축하할 일이 아주 많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케익을 준비하시기 어려우시니 어차피 오늘 저녁식사를 집에서 준비하신다면 J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어묵국을 했다고 전해주고 J에 대한 대견한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했다고 의미를 부여해 주시면 어떨까요? 식사 후 설거지도 엄마도 J한테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설거지했다고 말씀해 보시는 거죠. 제가 지금 원무실에 소문을 아직 못냈어요. 지금 소문내러 가야 해서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5분이면 자녀의 위대했던 성장 포인트도 알려주면서 학부모와 교사 간에 신뢰 포인트도 쌓게 된다. 아니 신뢰도 스며든다고 해도 되겠다. 이렇게 뭔가가 쌓이고 스며든 날에는 몸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 가벼워지는 느낌도 금방 길들일 것인가 스며들게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 상황에 금방 놓이게 된다. 어느 순간에 J는 화장실을 다녀오며 교실로 연결되는 공용 복도에서 전력질주를 하는 게 아닌가! 복도에서 걸어가던 다른 유아들과 부딪힐 뻔하기도 하고 복도에 있는 사물함이나 다른 구조물에도 부딪힐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이다. 전력질주, 줄넘기, 공놀이 등 활동량이 많은 대근육 활동들은 넓고 안전한 유희실이나 운동장에서 교사의 지도하에 진행하는 것이 안전한 놀이지도의 기본이다. 그래서 대부분 유치원에서는 ‘복도에서 뛰지 않아요’라는 약속을 복도헌장처럼 정해 놓고 있다. 이렇게 J처럼 복도에서 전력질주하는 유아에게 “복도에서 뛰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건 모두 정한 약속이에요! 그러다가 다치는 거 몰라요?”라고 길들이는 말로 접근하면 대부분 아이들은 길들여진 방어기제로 응답한다. 그 응답의 유형을 순위로도 매길 수 있다. 3위, 행동 선착순 집착형-‘00가 먼저 했어요’, 2위, 타인 원망형-‘나는 안하려고 했는데 계속 00가 달리자고 했어요’, 1위, 감정복잡 억울형-‘나만 달린 게 아니라구요~ 아앙~어엉엉’라고 하고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정말 아이의 안전이 염려되어 알려주고 싶다면 그 아이의 마음의 안전까지 염려하며 말해주어야 함을 잊지 않으려 했다. 즉, 실수의 상황에서도 그 아이의 위대함을 다시 떠올려주며 복도에서 뛰는 작은 실수는 그 거대한 위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J야. 복도에서 달리고 싶은데 참고 걸으려고 하니까 힘들지? 너 6월 23일 기억하고 있니? 선생님은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거야. 네가 6년 만에 시금치 먹은 날이잖아. 그 어려운 걸 해낸 J라서 선생님 마음속에 넌 늘 특별한 사람이란다. 사실은 6년 만에 시금치를 도전하고 먹어보는 게 엄청 힘든 거지 복도에서 걸어 다니는 건 어려운 거 아니거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J라면 이정도 걸어다니는 건 많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도 실수 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은 J도 잠시 아주 작은 실수한 거다. 그치?” J의 표정이 한결 편해짐을 느끼고 난 발걸음을 돌리는 척하면서 또 혼자 궁시렁궁시렁(그 어려운 걸 해 내다니...우와...나는 40년 걸렸는데..) 하며 마음속으론 ‘지금 내가 궁시렁궁시렁 하는 말을 J가 듣고 있겠지?’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스며드는 건 꾸준함이 필요하다. 이 꾸준한 스며듦이 단단해지고 켜켜이 쌓이면 한 사람의 자존감이 된다고 믿고 있다. 튼튼한 자존감은 삶의 어려움과 힘듦을 마주할 때 안전하게 잡아주는 안전벨트와도 같다. 마치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할 때 기체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터블런스 상황에서 좌석벨트 착용이 필수인 것처럼. 어쩜 모두가 매일매일 이 터블런스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번아웃되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게’ 스며드는 위로를 해 주고 싶다.

“아침에 이불을 제치고 일어난 사람이 바로 나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일어나기 전의 이불이거든!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어!”

“출근 전에 마신 커피가 정말 맛있었어! 그 덕분에 3분이 행복했어! 3분의 행복을 만들어낸 사람은 바로 나야! 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이 바로 나야”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듯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만을 위한 말을 심장에 찍어보는 거다. 아주 깊게 그리고 진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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