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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앞 작은 섬 '시사단'

아니, 저 섬은 뭐예요? 여기에 왜 섬이 있지요?

by 호서비 글쓰기


IE003533076_STD.jpg 도산서원 안내판. 도산 서원 앞 낙동강에 물이 가득 찼을 때 보이는 작은 섬이 '시사단'이다.

"아니, 안내판을 보면 섬이 하나 있는데, 이 섬은 대체 뭐죠?"


"도산서원에 호수가 있었어요? 섬이 왜 여기에 있나요?"


필자는 10월부터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하고 있다. 도산서원 입구 주차장 안내판을 보면서 관광객들이 내뱉는 첫 마디가 '아니, 저 섬은 뭐야?'이다.


도산서원 바로 앞에 낙동강이 흐른다. 낙동강에 섬이 있는 것이다. '이게 뭘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 한다. 이 섬은 '시사단(試士壇)'이다. 시사단은 본래 섬이 아니었는데 이젠 섬이 되었다. 낙동강 물이 불어나면 섬이 되고 줄어들면 높은 언덕만 남는다. 시사단이 이렇게 섬이 된 것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1976년 안동 댐이 완공되면서 안동시는 수몰 위기에 놓였던 '시사단'을 보존하기로 하고 시사단 자리를 10m 정도 성토해 언덕을 만든 다음 정상 부위에 시사단을 올려놓았다. 시사단은 1792년 도산서원에서 별도로 치른 과거 시험의 역사적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IE003533077_STD.jpg 도산서원 마당에서 바라본 시사단, 시사단 밑은 낙동강이다.

당시 정조 임금은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 관리를 보내 도산서원에서 과거 시험을 별도로 치르게 했다. 이때 치르진 과거 시험이 '도산 별과(陶山 別科)'이다. 정조는 정치적 목적으로 경상도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경상도 유생만 과거를 보도록 응시 자격을 제한했다. 그 결과 시험 당일에 이곳 도산서원을 찾은 유생은 7천 명이 넘었다. 유생과 그 유생을 데리고 온 하인, 말, 구경꾼, 장사치 등이 일대에 몰리면서 도산서원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를 치르기 위해 도산서원에 왔으나 답지를 제출한 유생들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결시생이 있듯이 시험 제목을 보고 포기했거나, 쓰다가 말다 해서인지 답지를 내지 않은 유생이 답지를 낸 유생보다 더 많았다. 답지를 제출한 유생은 3천 명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답지를 낸 유생 가운데 2명이 임금 앞에서 다시 대과 시험을 치는 전시 자격을 얻었다. 전시 자격을 얻었다는 것은 좋은 벼슬자리를 주기 위해 임금 앞에서 시험을 다시 본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응시생 7천여 명 가운데 단 2명이 합격해 관리가 되었다고 하니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도 힘들었지만 급제하기는 하늘의 별을 딸 정도로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사단'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이 도산서원에서 특별히 치른 과거가 정조 임금의 은덕으로 시행된 사실을 널리 알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칭송과 감사의 글을 썼고 이 글을 비석에 세웠다. 이 비석이 '시사단'인 것이다.

IE003533079_STD.jpg 시사단 비석과 비각. 당시 영의정 채제공이 도산서원에서 도산별과를 치르게 해 준 정조 임금의 은덕을 찬양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비석을 만들었다

안동댐 물은 가을, 겨울이 되면 대부분 도산서원 앞까지 가득 찬다. 장마와 태풍 등으로 물이 불어나면 다음 해 봄 농사나 갈수기 때를 위해 댐 관리단은 물을 가둔다. 이때 '시사단'은 섬이 된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부터 물이 크게 줄었다. 강원도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데다, 태풍도 오지 않아 안동댐 상류인 도산 서원 앞 낙동강은 10월 첫 주 지난 추석 연휴 전까지는 모래 바닥을 드러날 정도로 물이 적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있던 매표소 쪽 잠수교가 드러나면서 일부 관광객들은 '사시단'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추석 연휴에 비가 오고 강물이 불어나면서 잠수교 출입이 막혔다. 그래서 이젠 내년 갈수기를 기다리며 도산 서원 마당에서 눈으로만 봐야 한다. 지금은 섬이 아닌데 갈 길이 막혀 갈 수가 없다.


IE003533080_STD.jpg 전교당에 사시단의 가을 사진이 전시돼 있다.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좋은 풍광을 보여준다

안동시는 '시사단'에서 펼쳐졌던 과거 시험 '도산 별과'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10월에 '도산 별시'란 현대판 과거 시험을 개최한다. 한문, 한시 동호인들이 많이 참석해 배우고 익혔던 한시 실력을 뽐낸다. 합격하면 어사화와 관복을 입고 행진하는 영광도 누린다.


도산서원 앞 '시사단'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섬처럼 생긴 모양과 낙동강, 도산서원과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안동 도산서원은 가을이 예쁘다. 단풍 철에 도산서원을 찾아 붉게 물든 단풍과 낙동강, 호수에 잠긴 작은 섬 시사단을 보면서 퇴계 선생과 문예 부흥을 일으켰던 정조 임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실려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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