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땅에 울린 '단종애사'

1,500만 백성이 드리는 569년만의 단종 제례, 2천만 가자!

by 호서비 글쓰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봤어요?"

"영월 청령포 다녀왔어요? 표 사는 줄이 5리(2km), 배 타는 줄이 5리.

아이고 얼마나 많이 몰리던지, 간다면 아침 일찍 가야 합니다."


요즘 영화 <왕사남> 신드롬이 대단하다. 1500만 관객을 돌파하고도 아직 승승장구 중이라고 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나같은 사람까지 다 본다면 2000만 관객을 기대할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지가 오래돼 영화관 가는 길을 잊었다. 언젠가 국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온 적이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였지만 크게 실망한 탓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다 나왔다. 그리고 '후~' 하고 한숨을 쉬고 그 다음부터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인터넷을 열거나 유튜브에 수없이 올라오는 숏 영상이 다채롭다. 특히 영화에는 OST가 없는데도 수많은 영화 음악이 만들어져 올라온다. 애절하고 구구절절한 가사가 단종과 얽혀 있다. '이제라도 <왕사남>을 봐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 정도이다.


영화를 봤다거나 영월 청령포를 다녀왔다는 이웃들이 많다.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 그리고 단종이나 엄흥도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지역은 다 뜨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영주 순흥 금성대군 신단이 그러하고 영월 엄씨 집성촌 문경시 산북면 우마이 마을이 그렇다.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한 금성대군은 세종의 아들로 세조의 동생이다. 1456년 사육신의 1차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면서 금성대군은 경상도 순흥에 유배됐다. 그는 이곳에서 1457년 또다시 2차 복위 운동을 도모하다 발각돼 세조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시신마저 수습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었다.


금성대군과 함께 세조는 순흥부 30리 안의 백성을 모두 죽였다. 순흥부 백성들은 유배당한 금성대군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집단 학살당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관군으로 들어와 순흥백성을 집단으로 학살한 사람은 안동부사 한명진으로 그는 한명회의 6촌 아우였다. 한명회는 순흥에서 금성대군 등이 역모를 일으킬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아우를 안동부사로 보내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든다.


'역모의 땅'이라는 이유로 백성들은 순흥 청다리 밑에 끌려와 목이 잘렸다. 그 피가 죽계천을 따라 흐르다가 멈췄다고 해서 이곳을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 훗날 1638년 숙종 때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해 '금성대군신단'이 건립됐다.


금성대군신단 앞에 있는 동쪽 단은 금성대군과 함께 복위 운동에 동참했던 순흥부사 이보흠을 모신 단이며, 서쪽 단은 함께 순절한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단이다.

영주 순흥면 금성대군신단단종복위운동 성지로 사적 제491호로 지정돼 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에 있다 ⓒ 영주시 공식 블로그

금성대군신단은 소수서원 앞에 있다. 아시다시피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이곳에 배향된 안향 선생은 고려 때 성리학을 도입한 대유학자이다. 성리학을 배운 선비는 충과 의를 위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다. 이곳으로 유배된 금성대군도 선비답게 충과 의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종애사는 안동에도 있다. 퇴계의 할아버지인 '노송정 이계양'선생이 그러하다. 노송정을 퇴계 태실이 있는 안동시 도산면 진성이씨 종택이다.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퇴계의 할아버지 이계양은 종택에서 4km 떨어진 온혜리 국망봉에 단을 쌓고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매달 '망배(望拜, 그리운 대상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하는 절)를 올리며 단종을 기렸다고 한다. 이 국망봉에는 지금도 국망봉단비가 남아있다.


당시 이 사실이 발각됐으면 순흥백성들을 집단 학살한 것처럼 이계양 집안도 멸문지화를 당해 퇴계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송정 이계양의 절개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에게로 맥이 이어졌다.


▲안동시 도산면 노송정 종택퇴계 할아버지 노송정 이계양의 종택이다. 퇴계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또 단종의 이종사촌 형인 송호 김한철 선생은 퇴계 아버지인 이식의 장인이다. 이식의 첫째 부인은 의성 김씨로 아들 둘을 낳고 별세했다. 퇴계를 낳은 춘천 박씨는 이식의 둘째 부인이다. 이식의 첫째 부인 의성 김씨는 결혼할 때 아버지 송호 김한철로부터 재산 대신 서책을 받았다. 그 양이 무려 마소가 끄는 수레 10대 분량이었고 송호의 서책은 훗날 퇴계가 공부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송호 선생도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동조했다. 1456년 사육신이 1차 단종 복위 운동 때 혐의를 받고 투옥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안동 묵계로 귀향했다. 그리고 순흥에 유배된 금성대군에게 격문과 무매시無寐詩를 보내는 등 금성대군의 2차 단종 복위운동을 함께했다.


하지만 2차 복위운동은 순흥부사 이보흠의 종이 관아에 밀고하면서 실패로 돌아갔고 금성대군이 연명부를 불태움으로써 송호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송호 선생은 숙종 24년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격상될 때 장릉절사莊陵節士로 추존되었다. 퇴계는 자신이 읽은 서책이 송호 김한철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선비정경부인의성김씨묘갈명先妣貞敬夫人義城金氏墓碣銘'에 밝혔다.

▲도산서원 전교당퇴계 선생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체험객들이 전교당에서 유복을 입고 선비 체험을 하고 있다.

영화 <왕사남>을 계기로 단종애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국에서 번지고 있다. 모두 충정과 절개, 우국충정을 노래하고 있다. 영화 한 편에 많은 국민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모처럼 지역 문화유적지에 관광객이 찾고 지역 경제도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2천만 명이 되기 전에 나도 영화 <왕사남>을 봐야겠다. 그리고 영주 순흥면 금성대군 신단과 피끝마을, 소수서원 등도 다시 찾아서 '단종애사'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왕사남'은 569년 만에 1,500만 백성이 드리는 단종 제례이다. 2천 만 명이 기대된다.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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