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 건설 50주년, 수몰 마을에 담긴 애환

댐 민속촌에 당시 모습을 엿보다.

by 호서비 글쓰기

“여기가 하회마을인가요? 초가집, 기와집이 이렇게 많은데 하회마을 아닌가요?”


안동 월영교 옆에 있는 야외민속촌을 보고 ‘여기가 하회마을이 아닌가?’하고 묻는 관광객이 많다. 월영교를 찾아 강을 건너면서 차가운 강바람에 정신이 번쩍 드는 요즘 안동 월영교를 찾는 관광객이 많지는 않지만 매일 수백 명이 월영교를 찾아 걷는다.


안동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면서 관광객에게 댐과 관련된 안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여기는 하회마을이 아닙니다. 민속촌입니다. 1976년 10월 안동댐이 준공되면서 물속에 잠길 뻔한 기와집이나 초가집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가옥 10여 채가 있고 정자와 연못을 마련해 여기가 마치 옛날 안동의 어느 마을을 재현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안동댐 민속촌 물레방아 뒤로 기와집이 보인다.


민속촌 남반고택: 예안면 양반가옥으로 1976년에 이전했다.


안동댐이 들어선 지 올해로 50주년이다. 당시 안동댐을 만들면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고가옥 여러 채를 이곳으로 이전시켰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가옥이지만 50년 전에는 사람이 직접 살던 곳이다. 민속촌을 만들기 위해 새로 건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던 집을 그대로 옮겼다. 이곳 가옥들은 수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가옥 중 예안 지역 양반이 살던 기와집 '남반고택'은 북부 산간의 전형적인 'ㅁ'(미음)자형 가옥이다. 진성이씨 집성촌인 예안면 의인 마을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에 따라 1976년에 이곳에 옮겨 세웠다.


초가집 가운데 까치구멍집은 경북 북부에 많이 있던 서민 가옥이다. 와룡면 가구리에 있었다. 까치구멍집이란 문간, 외양간, 부엌, 안방, 건넌방, 창고 등의 생활 공간이 한 건물 지붕 안에 집약된 구조다. 이에 따라 집 내부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환풍시설이 필요해 지붕 합각부(合閣部) 양측에 둥근 구멍을 뚫었다. 이 구멍이 '까치집'을 닮았다고 해서 까치구멍집이라 불렀다.


안동, 영양, 청송, 영덕, 울진, 봉화 등에서 집중 지어졌다. 폐쇄형 겹집 모양이어서 대문만 닫으면 외부 침입이나, 맹수 공격을 막고 겨울에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집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 지혜가 든 공간이다.


까치구멍집: 초가 지붕위에 볼록 올라온 것이 까치구멍이다.


선성현객사: 1976년 이전했다. 관리들의 지방 출장 숙소이다.


주민들이 살던 가옥뿐 아니라 '선성현객사' 등 관청 부속 건물과 보물 '석빙고'도 이곳으로 이전했다. 객사와 석빙고 등도 안동댐 수몰 지역인 예안면에 있었다.


'선성현객사'는 조선 후기 옛 예안현 관아 건물의 일부이다. 선성은 예안의 별칭으로 객사는 관리들이 지방 출장 때 묵던 숙소다. 관리들만 사용하던 국립 호텔이라 할 수 있다.


"석빙고는 영조 때 만들었습니다. 1737년 안동부사 이매신이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임금에게 바치기 위해 돌로 조성했습니다. 한겨울에 낙동강에서 얼음을 채취해 석빙고에 넣어 두었다가 여름에 은어를 잡으면 얼음의 냉기를 이용해 보관해서 임금님께 바쳤다고 합니다. 안동댐 건설로 수장될 위기에 놓이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월영교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에 석빙고 상단 부분이 보인다. 그래서 상당수 관광객이 "왕릉이에요?", "대형 고분처럼 보이는데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석빙고"라고 답하면 대부분 아니 여기에 웬 '석빙고냐'고 되물으며 신기해한다.


석빙고: 보물, 조선 영조 때 건축했고 1976년 이전했다.


월영교에는 조선판 '사랑과 영혼' 이야기의 주인공인 '원이 엄마 편지'도 있다. 관광객들에게 원이 엄마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사연을 전하고, 석빙고의 이전 이유와 안동댐이 생기면서 2만 명이 넘는 댐 상류 지역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이야기했다. 댐이 생기면 물속에 잠기는 수몰 지역이 불가피하고 이 땅을 기반으로 살던 주민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집이나 창고, 관공서 등 모든 건물이 모두 철거된다.


월영교 옆에 조성된 민속촌은 그 가운데 아주 적은 수의 건물 몇 개만 형식적으로 이전한 것이다. 안동 사람들은 안동댐으로 수몰된 마을 가운데 하회마을에 뒤지지 않는 동성마을이 5~6개 정도 더 있었다고 회고한다. 마을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월영교 옆 민속촌은 댐 수몰민들이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부 70~80대가 넘은 수몰민들은 이곳을 찾아 정든 고향의 향수를 느낀다고 했다.

안동댐, 1976년 준공. 2026년 준공 50주년이다.


2026년 10월은 안동댐이 건설된 지 50주년이 되는 시기다. 당시 10대였던 이들도 60대가 넘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당시 30대, 40대 마을 청년이던 이들은 고령의 노인이 됐다. 고향에 돌아가 보지 못하고 물속의 고향을 그리다 세상을 뜬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렇듯 월영교와 댐 주변 민속촌에는 과거 안동에 살던 사람들의 숨결이 있다.


"지금 저기 보시다시피 옛 중앙선 철교 주변이 새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KTX 중앙선이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월영교 옆에 있던 옛 중앙선 철로 구간을 이용해 새로운 휴양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쁜 카페도 들어선다고 해요. 임청각에서 와룡터널 구간에 테마화 거리가 조성되고 폐선 구간을 시민 열린 공간으로 추진한다고 합니다. 안동을 재방문해서 달라진 월영교를 구경하세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2026년 2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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