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점' 을 꼭 알아야 문해력이 높나요?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어른들의 말부터 순화하자!
한글날을 며칠 앞두고 언론에 요즘 초•중•고등학생들이 '시발점'을 모른다며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떠오르고 많은 언론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학생 가운데 '시발점'을 '*발'이란 욕설로 이해하고 선생님께 "왜, 욕을 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시발점'을 찾아봤다.
■ 시발-점(始發點): 명사
1. 첫 출발하는 지점
" 서울서 올 때는 시발점이라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었으나 지금은 만원이어서 사람들 틈에 끼어 선 채로 있어야 했다." <<황순원, 움직이는 성>>
2. 일이 처음 시작되는 계기.
· 혁명의 시발점
· 사소한 말다툼이 시발점이 되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시발점'은 첫 출발점이란 말이다. 반대말은 아마 '종착점'이 될 것이다. 철도에서 '시발역'이란 단어도 쓴다. '종착역'이 반대가 될 것이다. '시발택시'도 썼다. 1950년대에 운행되던, 지프차를 개조한 택시이다.
'시발'이란 단어를 붙여서 여러 형태로 쓰고 있다. 하지만 '시발'은 처음이란 한자어 '시(始)' 자와 피다, 쏘다의 한자어 '발(發)'을 합한 단어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니다. 결국 학생들이 이 단어를 배우지 않았거나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다.
'시발점'이라 하지 않고 '첫 출발점'으로 풀어썼다면 학생들이 알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출발점이란 단어는 자주 쓰는 용어이다. 종착점보다 도착점도 더 사용되는 용어다.
또 '두발 자유화'를 토론하는데 '두발'을 일부 학생들은 '두 다리'라고 이해했다고 한다. '금일'을 '금요일'로, '중식'을 '자장면'으로 착각한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두발'은 한자 두발(頭髮)로 '머리에 난 털'이다. '금일'은 한자(今日)로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날'이다. '중식'은 한자 중식(中食)으로 '점심에 끼니로 먹는 밥'이라고 설명한다.
'금일'은 '오늘'로, '중식'은 '점심'으로, 두발은 '머리카락'으로 설명하면 더 쉽지 않을까 한다.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해야 문해력이 높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우리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말의 상당수 70~80%는 한자어로 구성돼 있어서 한자를 떼고 얘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쓴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한자어로 된 용어를 말하고 쓴다. 학생들의 가정 연락망에도 그렇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자가 든 말을 써야 자신이 더 높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대화하는 말 속에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써야지 더 돋보인다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쓰는 용어 상당수가 '조선시대 사대부'가 쓰던 말이다. 유학의 영향으로 한자로 구성된 말이 그대로 우리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조신(操身)하게 하여라', '일익(一翼)을 맡다.', '병통(病통)이다.' 등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 '중요한 일을 맡다', '결점이나 잘못이다.' 고 바꿀 수 있다. 이 용어는 모두 현재 세대보다 윗대 어르신들이 쓴 말이다. 사실상 조선시대 말을 우리가 사용했고 또 지금의 어린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배우라고 하고있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어른들이 쓰는 용어가 너무 어렵지 않나 생각해보자. 그리고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뒤이어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우리말 자체가 한자어로 되어 있으니 한자를 배우면 문해력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도 정자체를 포기하고 간체를 쓰고 있는 마당에 모든 국민이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여기서 한글을 고수하고 한자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른들이 요구하는 문해력 수준에 아이들을 맞추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른들도 어려운 우리말을 줄이자고 얘기하고 싶다.
그런데 '문해력'이란 말도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