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큰 어른 두봉 주교를 TV에서 만났다.
"가장 어려운 사람이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난 성직자로서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10월 24일 밤 안동 MBC 창사특집에 참으로 반가운 어르신의 이야기가 방송됐다. 이방인이지만 한국인인 그 사람. 바로 천주교 초대 안동 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다.
올해는 안동교구가 설정된 지 55주년, 두봉 주교가 안동을 찾은 지도 55년이다. 그는 안동 사람보다 더 안동을 사랑하고 안동을 위해 헌신했다.
1954년 한국 전쟁 후 프랑스에서 한국 땅에 부임한 두봉 주교는 1969년 안동교구가 대구교구로부터 독립하면서 초대 교구장에 취임했다. 두봉 주교는 그해 안동에 전문학교를 세웠다. 지금의 안동 가톨릭상지대학교이다. 이 학교를 통해 안동과 영주, 봉화, 의성, 청송, 영양 등 북부 지역민들은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농사 만으로 생업을 잇던 곳에서 젊은이들이 기술을 익혀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열악한 지역 문화 예술을 위해 안동문화회관을 건립했다. 당시 안동에서 6층 빌딩이 세워진 것은 처음이었다. 건물이 만들어지면서 지역민들의 모임과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강당에서는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졌다. 특히 안동문화회관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첫 고층 건물으로 지역민들은 한번 가봐야 할 명소로 여겼다.
두봉 주교는 또 가톨릭 농민회를 만들어 농민들의 참된 삶을 위해 노력했다. 1978년 유명한 오원춘 사건으로 추방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썩은 감자를 보급한 사실을 항의하던 의성 농민 오원춘 씨가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문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두봉 주교는 가톨릭 농민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항의와 집회를 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외국인이 정치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내려진 추방 명령.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이 일어나 정국이 혼란해지면서 그는 추방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오원춘 씨는 46년 만에 처음으로 언론에 나와 당시 혹독했던 참상을 증언했다. 그의 가족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면 난 거절 안 합니다. 남들에게 힘을 주고 싶고요. 제 신념, 제 믿음, 제 인생관은 남을 위해서 좋게 일하면 그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거에요."
필자도 2019년, 안동교구 설정 50주년이던 해에 의성군 봉양면 주교관에서 두봉 주교를 만났다. 두봉 주교는 자신을 찾은 이들이 누구든 간에 "헐헐헐~" 웃으면서 매우 반겼다. 오랜만에 그의 웃음소리를 TV에서 들었다. 그를 아는 신자와 주민들의 바람은 단 한 가지다. '조금만 더 우리와 함께 있어 달라'는 것이다. 올해 95세, 저 멀리 프랑스에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한국 땅에 왔다는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봉양 두 씨' 시조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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