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평범하게 자라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를 유난히 잘했던 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꿈이 분명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은 ‘미국 지사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성장기는 그 단어와 꽤 거리가 멀었다.
나는 늘
조금 늦게 이해하는 쪽이었고,
한 번에 답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을 보며 천천히 따라가는 편이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건 성적표보다
교실의 분위기다.
누군가 한마디를 던지면
공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선생님의 말투 하나에
아이들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때는 그게
‘관찰’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사람을 보는 게 익숙한 아이였을 뿐이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했다.
“엄청난 강점은 없지만, 크게 문제도 없는 사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겸손도, 자만도 아니었다.
그냥
나 자신을 잘 몰랐던 상태였다.
첫 직장에 들어가며
막연히 기대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누군가는 방향을 알려줄 거라고.
하지만 회사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선택의 결과만 조용히 쌓아두는 곳이었다.
선배들을 보면,
누구는 빨리 승진을 하거나
좋은 기회를 얻고,
누구는 제자리에 머물거나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갔다.
그 차이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결국은 내가 스스로 알아내고 각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구나.”
그 깨달음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당장 뭔가를 바꾸지도 못했다.
다만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조금 더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잘되는 사람의 말투와 행동,
무엇이 저 사람을 보직자 또는 임원이 되게하고,
또 무엇이 저 사람이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게 하는가?
화려한 창립기념일의 수상 행사와,
어두운 주제로 진행된 회의 끝의 침묵,
다양한 회사의 면면을 지켜보며,
조금씩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길을 찾아가던 과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성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몰랐다.
그게 나중에
선배들이 달달 외우게 했던 제품에 대한 지식이나,
대학교 내내 공부했던 전공에 대한 지식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를 오가며 일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큰 자산이 될 줄은.
나는 처음부터
글로벌 인재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리더도 아니었다.
다만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습관,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조금 일찍 배웠을 뿐이다.
혹시 지금
자신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껴진다면,
아직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 늦는 것 같아 불안하다면.
적어도 이건 말해주고 싶다.
평범하게 시작했다고 해서
평범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 한가운데에 있다.
어느덧 40대가 된 내가, 20대 초반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고,
잘 하고 있으며,
잘 해나갈 것이라고,
변함 없어 보이는 저 커다란 나무도,
잘 보이지도 않는 새싹을 지나,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작은 나무로 성장하며,
갖은 풍파와 세월의 양분을 통해
기어코 지금의 모습이 되었노라고.
어둡고 차가운 과정 속에 뿌리를 내려야만,
포근하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