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입고 상처를 입혔다.
망가진 생활 패턴으로 인해 좋아하는 가수에 소극장 콘서트에 가지 못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은 처참히 무너졌다. 나는 쉽게 감정에 흔들리는 타입이었고 쉽게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 스스로에게 입힌 상처는 가족에게 주는 상처로 이어졌고 가족에게 상처를 돌려받았다.
내가 버텨온 6년은 죄질이 컸고 마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시위를 홀로 하다 결국은 형량이 부여받은 기분이다. 문제는 감옥조차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쌓여가는 지방층은 나를 더욱 게으른 사람으로 보이게 했고 실제로도 게을렀다. 아무리 내가 버틴 거라고 우겨봤자 열심히 살지 않은 자의 말로였다. 며칠을 누워있었다. 집에만 있었음에도 전혀 갑갑하지 않다. 어릴 적부터 난 아지트를 좋아했으니까.
결국 친구의 걱정을 샀다. 한국의 끝과 끝에 살고 있음에도 무리 없이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친구를 헛걸음시켰다. 만나면 줄 선물을 이번에도 주지 못했다. 사람은 나 스스로를 헤칠 때만 좌절하는 게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좌절한다. 오늘도 예정되어있던 콘서트는 자의로 가고 싶지 않아 졌다. 당일이라 환불조차 되지 않는 티켓. 그 티켓을 포기하고 내가 광주로 내려갈까 했다. 문제는 기차를 탈 돈도 없었다. 얼마나 무능하고 무력한가.
당장 달려 나가 입석표라도 얻어서 내려가서 사과하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카드 한도조차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돈도 능력도 없는 사람. 자초해 낸 외로움에 슬퍼하는 찌질한 사람. 왜 인생에는 리셋 버튼이 없을까. 너무나 괴로워하는 사실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탄스럽다. 나는 괴로워할 자격이 없다. 나는 상처를 입힐 줄밖에 모르는 사람이기에. 스스로에게 이 밈을 부여한다. 기죽지 마라! 그냥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