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정상에 오른 거 메아리 한 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평범과는 먼 사람이라는 걸. 사실 종종 상기시키는 사실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아의식 가득한 대단한 사고는 아니다. 그냥 난 평범한 걸 바랄수록 스스로에게 반항하듯이 살았다. 사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고역이다.
난 대단히 착한 사람이지도 않고 상냥한 말투를 가지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강단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왜 저렇게 살지?’의 표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25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끔찍한 면들을 열심히 숨기고 다녔다.
그나마 멀쩡한 면들조차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10대 이후로 수련회를 처음 갔다.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야호를 외칠 만큼 내 정신 건강이 정상에 오른 상황에 결국 시원하게 소리 지르고 왔다. 그러다 짧은 1박 2일의 수련회를 마치고 나눠주신 피드백 종이에 한 고백을 하게 되었다. 나의 아픔이 자랑이 되길.
어렸을 적부터 나의 취향에 줏대는 없었다. 어떤 사람은 힙합은 취향이 별로 아니라고 하면서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 하면 바로 툭 뱉었다. 그만큼 관심사라는 뜻이다.
나는 특별히 이게 제일 좋아!라는 게 없었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고 다 좋은데? 와닿지 않는 것들이 있을지라고 싫다고 거부감 드는 건 없다시피 했다. 난 힙합도 좋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도 좋아하면서 클래식 라디오를 들을 때도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런 성향이 나타난다. 사실 못 먹는 건 별로 없는 편이다. 향이 강한 고수나 향신료도 잘 먹는 편이다. 하여튼 처음 먹어보거나 오.. 이건 싫어할지라도 괜히 한 입 먹고 으. 하며 한 번 찡그리고 넘어갔다. 정말 생리적으로 삼키지 못했던 생양파, 생파 같은 것들도 매운 기를 없애는 등 타협점을 찾아냈다.
물론 여기서 함정이 있다. 딱히 찾아보지 않았다. 이거 좋다고 느끼면서도 전문성은 없는 뉘앙스만 아는 겉핥기. 그러니 누군가가 무얼 좋아하냐 물어봐도 내가 뭘 좋아하더라?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정말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평생 게임도 열심히 안 할 줄 알았는데(특히 현질) 취미 영역에 게임이 들어온 후 이것 또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어영부영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뽑거나 키운 캐릭터가 없어 메인 딜러들만 데리고 피지컬로 어떻게든 버텨온 타입인 거다. 게임 고인물들이 보면 기겁할 조합으로 다닌다.
교회 언니들이 나보고 말을 잘한다고 한 것도 깊이 아는 건 하나도 없고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만 가득한 타입이다. 빈 쭉정이는 물에서 둥둥 떠다녀 금방 걸러질 운명일 뿐이다. 하지만 안 걸러졌죠? 당연함. 숨어 다녔음.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나 이상 없어요!라는 걸 증명하듯이 살아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흑염룡을 해제할 뻔하다가 워워 진정해 막시무스 이러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제일 친한 한 분께는 고등학생 시절 미친 사람처럼 얘기했었으나 어느 순간 그 습관도 고쳤다. 상대를 더 이상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 순 없었다.
결국 홀로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스카이다이빙을 동시에 하는 삶을 살았다. 어차피 내 사고는 남들에게 이해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해받기 힘든 나이가 됐다. 네버랜드는 어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뭐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평범한 정상인에게 어필해도 소용이 없다. 나의 일상은 비정형이고 나에겐 이게 노멀 한 거고 평생에 가져온 습관이었다는 걸. 그들에게는 상식 밖이거든.
그래도 “나름” 사회화가 잘 된 편이라 들키지 않고 살아왔다. 나의 망가진 생활패턴에 들킬 때도 있지만 최대한 괴로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괴로워 울면 내가 더 바보 같아 보였으니까! 내 비정상적인 모습을 들킨 것도 괴로워서 죽고 싶은데 울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은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 없는 금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는 허송세월을 보냈다. 어떻게 보면 평생을 지옥 속에 살았다. 내 알량한 믿음이 아니었다면 난 미성년인 채 진짜 지옥을 맛보러 떠났을 거다. 아픈 걸 싫어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 성년을 앞둔 열아홉 때에도 나이들이 싫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다 기대할 때 나만 괜히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별로인 어른이 될 걸 알았나 보다.
결국 한심한 어른이 된 지금 내년에 대한 설렘은 한 방울도 없이 두려움만 쌓이기 시작했다. 난 무얼 시작하든 이미 늦었고 그 나이에 그저 그런 업적을 쌓고 있을 거다. 왜냐하면 시작이 늦었으니까.
얄팍한 희망을 가지고 나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하면서 더욱 괴로울지도 모른다. 이런 잣대는 왜 나에게만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할 때는 멋지다!라는 생각만 가지면서. 내가 할 때는 너무너무 별로다.
내가 별로인 사람이라는 것 또한 말하기 싫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남들이 들으면 아 그건 좀 하면서 뒷걸음칠 이야기들로만 내 인생을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사람인 척하겠다고 인성 논란 안 나게 숨어 다녔다.
수련회를 다녀온 후 들었던 생각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되 숨기지도 않겠다는 생각이다. 물어보지 않는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광고할 필요는 없다. 너무 솔직한 필요는 없지만 숨길 필요도 없지 않은가. 물론 인간이기에 숨기고 싶은 사실은 나도 묻어둘 거다. 그렇지만 나에게만 적용되던 잣대를 내려놓았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이상한 행동이라면 얼마든지 해야겠다 싶다.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껏 이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내가 모순적인 사람이어도 어쩔 수 없다. 모순적인 사람이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잣대가 튀어나오더라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되어보련다.
나에게 사실 이건 어려운 일일 거다. 우울 전시하지 않되 건강한 것들만 보여줄 수 있는가? 앞부분은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뒷부분은 잘 모르겠다. 난 멋들어지게 꾸며진 나만을 보여주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낯간지러운 것도 있지만 내가 잘 꾸며진 게 없어서도 있다. 보여줄 게 없어서 숨겼으니까 아무거나 보여준다는 뜻이다. 내 평생에 유난 안 부리는 척하려다가 하려니까 걱정이다. 흑역사를 안 만들겠다 주의에서 반대되는 행보를 걷겠다니. 아이고, 걱정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올리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버려보겠다. 누군가에게 고지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기록은 되겠지. 내가 세상에 회자되는 인물이 되지 않더라도 몇 년 뒤의 내가 보면서 낄낄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