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서 하는 노력을 시작하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울고 싶어 졌고 이유 없이 도망치고 싶어졌다. 몸이 떨리는 기분이다.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나의 불안함은 어디서로부터 오는 걸까. 못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힘든 걸까. 잘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가 냉정한 게 아니고 냉혈한 거라고. 또한 본인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하는 부분이 우울증 환자의 증상이었다고 하는 글까지 보았다.
요즘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잘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감정들을 증상으로 보려 하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지 판단하려 하는 것도 증상이랜다. 오엠지다 진짜. 나의 습관으로 치부하던 것들이 증상임을 알게 되었을 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 들었듯이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걸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욱 가혹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냉정한 것이 아닌 냉혈한 판단이라는 이유가 있다. 나의 미숙한 점들은 너무 구려 보인다. 지금도 그렇다. 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잣대들이 나에게는 가감 없이 적용되고 있다.
남이 미숙하고 그 상황에서 노력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는 대단하고 멋져 보인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노력할 때는 하등 쓸모없어 보이고 너무나도 구리다. 비참해 보이고 밝은 미래가 상상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점은 너무나도 높았고 나는 늘 패배자가 됐다.
나의 불안함은 불안정한 것에서 오기도 한다. 나를 지지하는 기반이 없으니 늘 불안한 거다. 분명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내가 중점으로 두는 것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니 다른 곳에서 성취감을 얻어도 내 자존감은 늘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고 심각한 사항이다.
신앙적으로 해결이 되어다가도 회복하지 못 한 생활패턴에 내가 미워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습관처럼 나타난다. 그로 인해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너무나 싫고 떳떳하진 못한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어디서 운둔 고수가 되어 지내다가 나타나는 것만이 나에게 용납할 수 있는 부분인 거다.
노력에 재능이 없는 나는 늘 실패자였고 수치스러웠다. 감내하는 것을 죽기보다 못했고 이렇게 단언하는 것도 싫었다. 머리로는 너무 쉬운 문제였다. 그냥 하는 거. 그 쉬운 걸 못하니 자괴감에 채찍질을 했다.
남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했다. 너무 심연으로 들어가는 말들 뿐이었다. 설명하니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이 되었고 상대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반응이 어색한 건지 거북한 건지 모호한 경계선에 웃으며 돌려 얘기했다. '난 그렇더라고. 별 건 아냐.'라고 하면서.
또한 털어놓는 순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시킨다. 나 스스로 내가 패배자라고 발표하는 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의사가 진단명을 얘기하듯이 상황을 설명한다. 그래서 듣는 이야기가 나를 객관적으로 잘 본다는 거였다. 물론 스스로에게 가혹한 평가가 동반되니 나는 돌팔이 의사렸다. 하지만 내 현재 상황과 위치는 누구보다 잘 아니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은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셈이니까.
죽을 때까지 이러한 문제로 싸우고 있을 거 생각하니 벌써 질린다. 나아져도 어느 순간이라는 걸 지금까지의 나라는 데이터베이스로 인해 알고 있다. 또다시 무너지는 모습에 나는 한탄할 거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너무나도 적합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나아지고 싶은 생각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충돌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나아지고 싶은 자신과 우울감에 아무런 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극명하게 갈린다. 그 자아충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어 예민하고 게으르고 최소한의 것만 해결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 좋아 보이게 생활하는 건 정말 쉬운 문제다. 체질적으로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사랑이 부족하니 옆 사람에게 나오는 건 한계가 있는 거다. 내가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야 베풀 텐데 아직 나에게는 먼 문제다. 유쾌할 수는 있으나 다정할 수 없다는 건 조금 슬프다. 따라서 나는 그냥 행동할 뿐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좀 얌전하게 할 수는 없겠니.
나이는 갈수록 먹는데 다진 기반이 없으니 아직도 불안감이 가득하다. 남들의 시선부터 나 자신의 시선까지. 세상은 냉정하고 나는 아직 가진 게 없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취해서 괜한 희망고문을 받는다. 이 악순환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