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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Feb 16. 2023

몬세라트수도원 방문기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수도원

   

몬세라트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해발 1,23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바위산인데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검은 마리아상’을 보관하고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도원이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말이 중턱이지 중턱이 해발 725m나 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 이후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이다. 선택관광 상품으로 선택한 케이블카는 보수 중이라 탈 수 없고 대신 산악열차를 이용하였다. 신비스러운 대자연과 성스러운 수도원의 품에 기계문명이 낳은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서 안긴다는 것은 불경죄 중에 고강도의 불경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간이 더 걸리는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보겠다는 마음에 시간이 덜 걸린다는 산악열차를 타기로 했다.     


 한국인 현지 가이드를 이곳에서 만났다. 보풀이 일어난 연보라색의 코트에 니트 머플러를 느슨하게 드리우고 있다.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라고 가수 최백호가 옆구리 찌르며 가르쳐 준다. 그는 남자다. 임씨 성을 가졌다는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고 이곳까지 흘러 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기묘하게 머리를 흔들면서 거기에 맞추어 추임새를 넣는 듯이 말하는 가이드의 동작이 특이하다. 제스처와 말이 서로 주객이 바뀐 것 같은 묘한 방법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스페인 가톨릭의 최고의 성지인 만큼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은 장소답게 트래킹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1025년 성모 마리아께서 모습을 나타내신 곳에 수도원이 지어졌다고 한다.  

    

‘마담에게 던지는 실없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내가 할 일은 가이드에 대한 실없는 평가를 그만두고 그의 설명을 짙은 색소폰 소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뭣이라 !!!     

수많은 사람들이 몬세라트의 수도원을 찾는 이유가 ‘검은 마리아상’을 보려고 온다고 하고서는 마리아상이 왜 검은색이냐? 그 이유를 설명하는 가이드가 어이없다. 마리아상이 보관되어 있던 방에 촛불 그을음이 앉아서 그렇다는 설과 원래 그런 색깔의 나무로 만들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단다. 여기에 무슨 ‘說’이라는 단어까지 써야 하는지 어이가 없다. ‘說’이 되려면 적어도 아들 예수의 죽음을 맞은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이 표현된 것이라든지 아니면 나무 색깔의 목상이지만 그 고통이 목상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라든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이드의 말이 짙은 색소폰 소리가 아니라 ‘실없는 농담’이지 않은가? 가이드 말에 현혹되지 말고 나에게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이자.              

                                                                                                                                            

 전날부터 우리가 산을 찾기 1시간 전까지 비가 내렸단다. 대자연과 인간의 신앙심이 연출해 낸 곳에 안개로 그 신비의 도를 더하니 정말 운이 좋다. 현지인들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지만 지구의 반을 돌아온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오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 말고 이런 때에 어울리는 뭔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몬세라트 산에 피어오르는 안개.      

BTS 공연 무대에 쏘는 포그와 화학적 성분은 같으나 어찌 둘을 비할 수 있겠는가? 안개의 피고 사라짐이 고양이 같다고 한 시인 T. S. Eliot의 직유가 절묘하다. 없었던 것이 부지불식간에 곁에 와있고, 있던 곳을 다시 보면 어느샌가 가고 없는 놈이 고양이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적 가운데 반복되는 안개의 드리움과 사라짐이 보는 이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한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바위산과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베네딕토회의 수도원이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숨기려 함이 더 잘 드러냄이라는 역설과 모순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결혼하는 신부의 면사포나 두바이에서 만난 무스림 여인들의 히잡이나 모두 신비의 도를 더하려는 것이리라. 기묘한 바위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와와~~ 탄성을 지르며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여행객들이 참 사랑스러워 보인다.
 
  한국의 바위산은 둥글되 횡적이지만, 이곳의 바위는 곡선적인 것은 비슷하나 종적이라는 데에 우리의 바위산과 큰 차이가 있다. 우리네 바위산도 종적인 것이 더러 있으나 칼날 같고 뾰족하다.
  대자연을 병풍처럼 둘러치려는 의도는 동서양이 같다. 그러나 품에 안기려는 우리네 절집과는 달리 몬세라트의 수도원은 신에 대한 복종과 경건함을 표한다면서 신이 빚은 MOTHER NATURE 를 넘어서려는 오만불손함을 보인다. 세로로 쭉쭉 뻗은 거대한 바위산과 키재기를 해보려는 수도원이 그러하다.
 
  어쨌건 험준한 산속에 이 정도의 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동방의 작은 나라 백성의 눈에는 경이 그 자체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원주민 약탈이 가져다준 부의 산물이겠거니 했으나 콜럼버스의 항해보다 500년 전에 지어진 것이란다. 아마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을 두고서 이슬람 세력과 싸우면서 가톨릭 세력은 신의 힘이 필요했으리라. 신이 팔을 들어 이슬람을 내리쳐주기를 바랐으리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초들의 고난을 신심으로 달래고 창과 칼을 기꺼이 잡고 나서도록 하려는 정치적 속셈도 있었으리라. 그 정치적 '꿍꿍이'를 실현시켜 주기에 몬세라트 산 만한 입지적 조건을 갖춘 곳은 없었을 것이다.
 
  몬세라트를 보고 나서 사그라다파밀리아를 보도록 한 여행사의 계획이 딱 좋다. 이번 여행에서 여행사가 맘에 들기 처음이다. 직선적 이슬람 건축물을 혐오하는 마음이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 추상적 곡선형 수도원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려는 가톨릭의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미운 존재는 모든 것이 다 미워 보인다. 이슬람 건축물의 직선도 미웠을 것이다. 이를 위해 총대를 멘 자가 가우디가 아니었을까 싶다.
 
  둥근 세로본능의 바위산은 몬세라트를 찾은 소년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다. 종교적 영감이 아니라 직선 거부의 영감을. 반도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이슬람 잔존 세력이 남긴 알람브라궁전의 붉은 직선이 나에게 더 매력적인 것은 아직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아를. 구엘공원을 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몇 시간 뒤에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가우디가 나의 직선 취향을 사정없이 깨뜨려 줄까? 안달루시아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과 론다의 절벽도시를 보려고 스페인을 찾았다는 내 마음이 사라질까? 아직은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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