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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Feb 16. 2023

사그라다파밀리아 방문기

일명-가우디 성당

사그라다파밀리아 방문기(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


 어제 몬세라트에서 본 종적 둥근 바위를 가우디가 어떻게 건축물로 형상화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날이다. 간단하게 생각할 일은 아닌듯하다. 가이드의 단순한 설명과 평소에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 내 생각의 뼈대를 만들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살과 뼈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신경조직을 만들고, 피를 돌게 해야  하는 일이다.


  나 스스로도 너무 거창한 계획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을 먼저 다녀온 딸 부부가 나의 이번 여행지를 스페인으로 결정하는데 결정적이었다. 사그라다파밀리아 앞에 섰을 때 일순간 숨이 멎었다는 딸,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위의 말이,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늘 건축에 관심이 많은 내가 이번에 거창한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은 '만남'이라는 컨셉으로 사그라다파밀리아를 만날 것이다.    

 

만남

운명적 만남을 씨줄 날줄로 엮으며 내 나름의 비단 한 폭을 짜보기로 한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카탈루냐 자치주의 주도이다. 스페인에서 경제력이 가장 좋아 돈이 많은 지역인데 그 돈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있는 카스티야 주 마드리드에 뺏긴다는(?)는 생각에 독립을 요구하는 곳이다.  이베리아 반도 중에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가장 가까워서 반도 중에서 가장 먼저 로마의 지배를 로마의 문물을 접한 곳이다. 당연히 문명이 발달하고 물자가 풍부했을 것이다.


 돈이 많으면 생활양식이 달라지는 법이다. 우라 나라의 호남지방이 그랬던 것처럼.... 동고서저 지형의  한반도에서 그것도 강물이 남쪽으로 흐르는 지형의 한반도에서 호남은 물이 많고 들이 넓어 곡창지대이었고 남해바다와 서해바다를 끼고 있어 먹거리가 많았으니 양반님네의 삶이 술과 시와 풍악 자체였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을 낳고 서편제의 본향이 될 수 있었음은 당연지사이다.  로마의 선진 문물 특히 건축기술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고 돈이 많은 지역이었으니 사그라다파밀리아라는 걸작 건축물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지어졌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여건만으로 위대한 건축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필이면 가우디가 카탈루냐에서 태어났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고 무엇보다도 거기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니 그곳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그라다파밀리아가 지어질 수 있었다. 가우디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했고 류머티즈 관절염을 앓아서 나돌아 다니기보다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그 손 끝에서 상상의 집과 환상의 궁전과 천상의 성당과 에덴과 같은 정원이 지어졌을 것이다.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가우디는 결코 사그라다파밀리아의 설계도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딕양식의 교회 첨탑은 끝이 잔인하게 뾰족하다. 아무리 하나님이시지만 온 지구의 교회들이 신앙의 보상으로 간구의 송곳을 들이대면 얼마나 힘드실까. 사그라다파밀리아도 첨탑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네 개씩이나. 하나님이 부담스러워할 송곳 탑이 아니다. 정말 다행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수직 바위들에서 가우디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운명이란 만남의 다른 이름이다. 때가 맞지 않고 장소가  맞지 않으면 만남이 없다. 운명적인 만남도 없다. 시저를 만나서 로마가 가능했고, 테무친을 만나서 몽고 초원은 대제국이 될 수 있었고  나폴레옹이 있었기에  프랑스가 있었다. 서로의 연인들은 하필이면 바로 그때 그곳에 '나만의 그대'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번개는 공중에서 진로를 순간적으로 바꿔가며 땅으로 내리 꽂힌다. 반드시 그때 그곳에 바로 그 두 사람이 있어야 온몸과 온 마음이 재가되는 불꽃같은 운명의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사그라다파밀리아는 운명적 만남의 산물이다. 로마와 카탈루냐의 만남, 카탈루냐와 가우디의 만남, 가우디와 류머티즘의 만남. 무엇보다도 가우디의 열정과 사그라다파밀리아와의 만남.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공자님의 말씀이다.

공사를 맡았을 당시 가우디는 31세였다. 죽는 순간까지 43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사그라다파밀리아와 가우디는 동의어이다. 사그라다파밀리아가 가우디성당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열정은 즐김을 낳고 즐김은 즐김으로 끝나지 않고 늘 고통을 수반한다. 고흐는 미술을 즐기다가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되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도 소리 창조의 고통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우리 같은 범인의 소견으로는 열정이란 것도 함부로 가질 일은 아닌 듯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사그라다파밀리아만을  사랑한 가우디. 죽는 순간에도 노숙자로 오인되어 치료도 제때 받지 못할 만큼 남루했다는 가우디. 그의 정열과 혼이 남긴 위대한 건축물 사그라다파밀리아. 그 앞에 서는 이. 그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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