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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Feb 16. 2023

스페인 들판에 서서

사라고사에서 똘레도로 가는 길목의 단상

   

 사람 눈에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칼라가 있다. 생동감을 주는 색깔은 대부분 연하다. 연한 색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진한 색으로 짙어지는 걸 아는 경우에 연한 색에 대하여 생동감을 느낀다. 연둣빛이 바로 그 색깔이다. 풀과 나뭇잎 색깔이어서다. yellow green이 green으로 바뀌는 걸 계절 변화를 통해 알기 때문에 연두색에서 생명의 시작을 느낀다.     


 이 계절의 스페인 들판은 연두 중에 짙은 연두이다. 한국의 1월 달은 온통 brown 인데 이곳은 한국 4월의 칼라이다. 이방인의 눈에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스페인의 낮은 구릉에 맞닿은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그 아래 짙은 연둣빛 풀잎.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GLADIATOR'. 다섯 번을 볼만큼 멋졌다.      


 로마가 세계이고 세계가 로마이던 시절. 게르마니아를 정복하고 영웅이 되어 개선한 로마 북부군사령관 막시무스. 황제 아우렐리우스에 대한 충성심에 찬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된 코모두스에게 거역하다 가족을 살해당한 비운의 장군이었다. 코모두스는 자신의 명을 거역한 막시무스를 잔인하게 응징한다. 스페인 밀밭 한가운데에 위치한 그의 집은 불타버렸고 사랑하는 어린 아들은 로마군의 말발굽에 짓밟혀 죽고 아내는 능욕을 당한후 십자가 위에 달려 죽음을 당한다. 


 코모두스의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의 번영기라 할 수 있는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다. 다섯명의 위대한 왕 중 트라야누스황제와 하드리아누스황제 역시 스페인 출신이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개방성과 유연성을 꼽고 있다. 영화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자신의 후계자로 스페인출신의 유능한 장군 막시무스를 지목한다는 대목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지금 지나고 있는 스페인 낮은 구릉의 밀밭이 영화속의 수확기의 황금빛 밀밭과 교차되어 뇌리를 스친다. 복수의 칼을 갈며 동료 검투사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자신이 스페인 출신임을 암시하는 ‘spaniard 스패냐드’ 라고 불리며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그가 바로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런 구릉에서 농사를 짓던 로마의 정복지 스페인의 농부였었다는 사실이 지금 이시간 스페인 들판을 지나는 나에게는 예사롭지가 않다.

     

  산일래야 도저히 산일 수 없는 나즈막한 구릉이 보는 이의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구릉과 맞닿은 하늘이 그려낸 선이 안단테와 라르고를 반복하며 유장하게 이어진다. 그 선의 한 쪽 끝은 지중해로 또 한 쪽 끝은 미끈한 꼬리를 가진 거대한 물고기의 몸짓으로 대서양 바다로 미끌어지듯 들어갈 것이다. 마치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의 등이 꿈틀대는 듯이 말이다.     


 들판의 생김은 이렇게 2D에 가깝게 평온감을 주는데 이곳 사람들의 생김은 그렇지가 않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몸과 얼굴은 들고 남이 강하여 현란한 3차원이다. 머리는 주먹만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작은데 이목구비는 너무나 선명하다. 이것도 부족해서 여자들은 짙은 화장으로 남자들은 수염으로 음영처리를 더하여 더욱 입체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의 산야는 선명한 3D이지만 우리 한민족의 생김은 전혀 아니다, 신께서 산야와 사람의 얼굴로 직소퍼즐 조각을 맞추려 드신다면 지형과 사람의 짝을 잘못지었다는 실수를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얼굴만이 아니다. 체형도 그렇다. 서양인들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세상을 다니며 여기저기에 자기네 깃발을 꽂았다. 다리가 길어서 세상을 휘젓고 다녔을까, 아니면 다니느라 긴 다리로 진화했을까? 팔등신이라는 몸매 황금률도 지기네의 체형을 기준으로 지어낸 게 아닌가. 잘난 기준을 자기네게로 맞추다보니 못나지 않은 우리가 못난 종족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졌다. 우리가 못나서가 아니라 부러워하고 있으니 진 것이다.   

 

 몇일을 다니면서 유심히 살펴봐도 들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지  못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만 있을 뿐.... 우리의 4월같은 1월을 여유롭게 보내는 이의 여유가 한없는 부러움을 자아낸다. 이런 여유로움이 엘리베이터에 문닫힘 버튼을 달아놓을 필요가 없게 했겠지.  사실 스페인의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닫힘 버튼이 없다. 느긋이 기다리면 문이 닫히듯이 느긋이 기다리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릴 것이니까. 너른 땅. 온화한 기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의 운명이 참으로 아름답다. 부러워하지 않겠다는 악착스러움은 더한 부러움을 부르고 만다. 솔직히 너무 부럽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몇일 뒤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향한다. 스페인에서 맛본 부러움을 그곳에서 덜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러움도, 억울함도, 뽐냄도 세상사 만사 남에게 비교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지만 득도자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내가 마음 다스리기가 어디 쉽겠는가.     

 접어두고 일단 눈에 담는 일에 열중해야 나중에 득도할 거리가 생기리라. 잠시 가졌던 부러움과 억울함의 심정이 이 아름다운 여행을 망치게 해서는 안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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