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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Mar 22. 2024

평화의 역설

어떤 나라든지 자살로 밖에는 망하지 않는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군 삼성그룹의 故 이병철 회장은 상남도 의령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게 됩니다. 부친에게서 논을 받아서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평범한 농사보다는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였습니다.


당시의 농법으로는 논 한 마지기에서 쌀 두 가마니가 생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가을이 오면 사람들이 추어탕을 많이 먹는 것에 착안하여 시험 삼아 논 한 마지기에는 벼를 재배하고, 또 다른 한 마지기 논에는 미꾸라지를 길렀습니다. 두 논에 같은 비용 투자를 하여 벼를 재배한 데서는 쌀 두 가마, 미꾸라지를 기른 데서는 쌀 네 가마니 가격의 돈을 벌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벼농사를 그만두고 한 논에는 미꾸라지만을, 또 다른 논에는 미꾸라지와 미꾸라지를 잡아먹고사는 메기를 몇 마리 넣고 함께 길렀습니다. 메기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느라 더 많은 운동을 하고 더 많은 먹이를 먹어서, 더 건강하고 더 많은 미꾸라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메기와 함께 미꾸라지를 기른 논에서는 미꾸라지도 두 배, 메기도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마지기 논에다가 벼농사만 지었다면 쌀 네 가마니를 생산해냈겠지만, 미꾸라지 농사를 지어서 거의 쌀 열두 가마니에 해당하는 돈을 벌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병철 회장의 아들 되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직원들에게 자주 들려주던 선친의 농사이야기입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대도시 횟집으로 운반할 때 수조 안에 횟감으로 쓸 물고기와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천적 물고기 한 마리를 함께 넣어두면 운반하는 동안 건강하고 싱싱한 상태로 운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미꾸라지 이야기로 보아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한 국가 또는 제국의 운명에도 안정과 평화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경쟁관계, 역경 등이 존재해야 발전은 물론이고 항구적인 평화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로마제국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 Rome in Peace)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B.C. 27~A.D. 14)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161~180)까지 지중해 세계가 비교적 안정을 누렸던 200여 년간의 시 말합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 시기에 싹이 튼 여러 가지 원인들이  향후 200여 년 간 로마를 쇠퇴하게 만들었습니다. 를 들자면, 주변 이민족들을 평정하고  식민지들을 정복하여 국경을 확장한 후에는 군비를 축소하는가 하면, 빈부의 격차가 심하여졌고, 황제정이 정착되어 권력이 황제 1인에게로 집중되어 황제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견제 세력이 없는 단 한 명의 일인자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할 때에는 그가 통치하는 영역 전반에 대혼란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몸이 쇠약한 때에는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에는 아부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 등으로 통치능력이 마비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로마 제정 시대 가운데 가장 성한 시기인 96년에서 180년 까지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제국을 통치한 이른바 오현제(五賢帝) 시대입니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야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등 다섯 황제 치세의 로마는 선임 황제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닌 능력 있는 자를 자신의 양자로 들여서 황제 자리를 잇게 하였으나 오현제 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무능한 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음으로써 제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무능한 황제는 권력을 탐하기만 하였고, 권력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여 대제국 로마는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헨리 4세>에서 '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bear the crown.(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로 권력의 속성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 바 있습니다. 


그렇게 정상의 자리에서 로마제국은 물살 거센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동서제국으로 분열된 뒤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에게, 동로마제국은 오스만튀르크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외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속이 썩은 나라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최고의 건축물로 콜로세움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은 사치와 오락적 자극에 중독되어 썩어가는 로마제국의 치명적 환부였습니다. 또 다른 위대한 건축물 수도교(水道橋)는 로마제국 내의 수도 없이 많은 대중목욕탕에 물을 끌어다대던 수도시설이었습니다. 수도교에서 물을 공급받은 대중목욕탕의 따뜻한 물은 로마제국의 환부의 감염을 더욱 키웠습니다. 대적할 나라가 없는 가운데 수백 년간 이어진 평화의 시대는 강인하고 억센 로마의 근육을 여위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청나라 시대에도 고대 로마제국의 '팍스 로마나'와 비슷한 '팍스 차이나'가 있었습니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삼현제(三賢帝)의 시대입니다. 이른바'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입니다. 이 시기의 청나라는 영토가 넓어지고 문화, 예술이 부흥하는 등 나라가 내외로 모두 안정되었습니다. 130년이 넘게 지속된 중국역사상 가장 오랜 태평성대였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중국이 평화와 안정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을 때 서양세계에서는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미국독립선언,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등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건륭제 말기에는 황제 자신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니오호루 허션(鈕祜祿 和珅)이라는 부패한 관리로 인해 온 국가가 도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재산은 청나라 14년간의 세금 총수입과 맞먹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의 난에 이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여 굴욕적인 난징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릅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생물은 진화를 해나갑니다. 인류역사 이래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정치 체제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때로는 혁명으로 때로는 반란과 폭동으로 이어진 인류문명은 오늘의 현대민주주의라는 모습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구상의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존재하는 온대지역입니다. 특별히 농사하지 않아도 쉽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열대와 아열대의 기후지역에서는 자연과 맞서서 굳이 애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에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를 만들어내야 했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이 지내기 위해 온돌 난방, 보일러, 히터 등을 발명해 내며 자연의 도전에 응전을 해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고행과 단식을 통한 수도승의 수련은 타락과 나태를 멀리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며, 우리 몸의 근육과 뼈도 운동과 노동을 통해 몸에 가해지는 무게를 견뎌내도록 자극함으로써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방학은 학교를 안 간다는 뜻이지 학업에서 해방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창 시절에 방학기간 동안 등하교하지 않고 집에서 자유롭게 지내면서 긴 시간들을 보람 없이 그냥 보내버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등하교 시간을 지켜가며 숙제를 해내면서 숨을 헐떡거린 체육시간들이 이병철 회장 논의 메기처럼 우리들을 살찌우고 단련시킨 도전이었으며 이에 맞서 응전해 낸 우리들은 강인해졌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초강대국들의 틈에 끼인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메기들이라 여기고 강해지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위기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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