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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l 23. 2024

수탉 찬양론

친척 중에 농장을 가꾸면서 청계 종의 닭을 사육하는 분이 있습니다. 친환경적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끔찍한 마인드로 키우는 닭이라 사흘 이상 여행도 가시지 못합니다. 배설물 처리와 닭장 밖에서 맘껏 동물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친척에게서 들은 닭 특히 수탉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습니다.


암탉이 모성본능이 발동해 알을 품고 싶어 하는 때에는 둥지를 만들어 알을 넣어줍니다. 정확히 스물 하룻만에 삐약삐약~ 소리를 들으면 경건해지기까지 합니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도 보이지 않는 이런 질서와 진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세상은 살아갈 만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문제는 태어나는 병아리의 암수비율입니다. 사람처럼 사회적 계약에 의해 일부일처로 맺어지는 문화가 없으니 수탉이 많으면 자기네끼리 암탉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져 죽음도 불사하는 전쟁터가 됩니다. 시장에서 병아리를 사 온다면 암평아리만 사 오겠지만 농장에서 그냥 부화시키니 암수개체 조절이 어려웠습니다.


수탉들이 서로 싸우다 보니 성정이 사나워지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애먼 암탉을 공격하는 일도 많이 발생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나보다 왜 딴 놈을 더 좋아하니~ 어제 너 딴 놈 만나는 거 내 봤어. 오늘 혼쭐을 내겠어~~  하는 마음인가 봅니다. 수탉끼리 싸움을 통해 서열이 정해졌지만 닭장 안의 분위기가 화목하지 못해 한 마리 수탉만 남기고 나머지 수탉은 처분하였습니다. 목적은 닭고기가 아니라 계란이었으므로 수탉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고기도 질기고 계란도 생산하지 못하는 놈이니 유정란 계란을 생산할 때만 필요하지 아무 쓸모가 없는 수탉입니다. 예수님은 첫닭 울기 전에 제자 베드로가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한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단식투쟁으로 정권에 항거하면서 자신이 수탉임을 자처했습니다. 아무리 내 목을 죄어도 민주주의 새 시대의 날을 여는 새벽은 올 것이라고. 그러나 시계가 없는 시절에 쩌렁한 소리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던 꼬끼오~ 소리도 이제는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수탉을 처분하고 서열 1번 한 마리만 남겼더니 농장 분위기가 참 좋아졌습니다. 수탉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열다섯 마리 암탉 하나하나를 자상하게 보살피는 1부 15처 가장이 된 것입니다. 암탉 한 마리가 꼬꼬~ 하고 울어대면 무슨 일인지 후다닭이 됩니다. 쫓아가서는 무슨 일인지 살펴봅니다. 부리로 흙을 쪼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수탉은 자신이 먹지 않고 암탉을 부릅니다. 수탉의 먹이 신호를 들은 암탉이 부리나케 쫓아와 먹습니다. 수탉의 부리에 달린 먹잇감을 채가는 암탉도 있지만 수탉은 너그럽습니다.


외적이 쳐들어왔으면 목깃을 세우고 사납게 덤벼들었을 것입니다. 간혹 길 잃은 나그네 뱀이 기어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수탉의 위엄찬 날갯짓과 벌처럼 쏘아대는 부리공격에 뱀은 목숨을 잃거나 줄행랑을 칩니다. 파닭파닭한 수탉의 용맹함에서 비롯하는 부리와 발톱공격에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암탉을 공격하여 목주위의 깃털을 부리로 물어뜯어 암탉의 목 깃털이 빠지는 폭행을 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폭행이 아니라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암수가 교미할 때 암탉 위에 올라탄 수탉이 균형을 잡기 위해 부리로 암탉의 목덜미를 뭅니다. 밑에 깔린 암탉이 수탉에게서 도망치려는 듯 날개를 퍼득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수탉이 암탉을 무도하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닭장 안에 수탉 개체수가 많거나, 수탉이 한 마리뿐이지만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무시로 암탉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생긴 걸로 치면 수탉만큼 머리에서 발끝까지 위풍당당한 동물이 따로 없습니다. 머리에 이고 있는 붉은 벼슬을 보면 왕들의 왕관도 수탉의 벼슬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눈은 부리부리하여 눈을 내리깔거나 기에 눌려 눈을 돌리는 것도 없습니다. 압권은 목입니다. 머리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두툼하니 깃털에 싸인 목은 수탉의 위엄의 상징입니다. 레슬러 출신 배우인 드웨인 존슨의 목덜미를 연상시킵니다. 조류 중에 수탉처럼 고개가 뻣뻣한 놈들이 더러 있긴 합니다. 타조, 백조, 거위 등이 있습니다만 타조는 몸통에 비해 목이 초라하고, 백조나 거위 등은 물에서 먹이활동을 하므로 목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간사스러워보일 때가 있습니다. 꼬끼오~하고 홰를 치며 우렁찬 목청을 뽑아내는 것도 곧은 직선의 '드웨인 존슨 스타일'의 목덜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둔해 보일 만큼 길지 않고 그렇다고 방정맞은 만큼 짧지 않은 몸통은 목과 조화를 이루어 절대 황금비율을 이루고 있습니다. 머리와 목과 몸통의 비율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몸매가 되고 말 것인데 '닭프로디테'의 '팔등신' 몸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몸입니다. 공작새의 꼬리 깃털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꼬리 때문에 천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러나 수탉의 꼬리깃털은 머리에서 이어져 내려온 유려함이 마무리되는 부분입니다. 날렵함과 우아함을 훼손하지 않는 절제미가 완벽한 유종의 미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긴 다리가 있어서 답답하지 않고 온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발이 있어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단거리 육상선수의 보폭으로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우아한 몸매. 전광석화의 순발력. 홰를 치며 목청을 뽑을 때 넘쳐나는 역발산기개세의 기운. 어디 하나 나물랄 데가 없습니다.



가끔 머리 나쁘고 아둔한 사람을 일컬어 '닭대가리'라고 말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실제로 닭은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고 합니다. 평생 계란과 고기로 알보시 육보시 하고 일생을 마감하는 동물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 닭똥은 동물 배설물 거름 중에는 으뜸입니다. 먹이를 이빨로 씹어 삼키지 않고 닭똥집(근위, 모래주머니)이 음식을 부수어 소화시키는 탓에 소화되지 않은 영양분이 닭똥 속에 많아서 거름으로는 최고입니다. '닭똥 같은 눈물'은 닭똥에 대한 모욕입니다.


닭은 우리에게 속담표현으로도 우리 언어 표현에 보시를 하고 있는 동물입니다. 거의 다가 닭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이어서 불만이 사무칩니다.

꿩 대신 닭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닭의 갈비 먹을 것 없다

닭 머리가 될지언정 소 꼬리는 되지 말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다

닮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닭똥 같은 눈물

초저녁에 닭이 운다

촌 닭이 관청 닭 눈 빼먹는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

닭이 소 보듯 소가 닭 보듯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이 표현들이 없다면 문장이 얼마나 길어지고 구질할까요.

이렇게 잘들 드시면서 말입니다.

작년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을 무게로 따지면 정육(뼈를 제외한 고기) 기준으로 15.7㎏다.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970년만 해도 1.4㎏에 불과했다. 2003년 7.8㎏에서 2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경제 성장에 따라 닭고기를 포함한 육류 소비가 계속 늘고 있지만 닭고기 소비 증가세는 과거보다 둔화됐다. 2018년부터 5년간 1인당 닭고기 소비량 연평균 증가율은 2%로 그 직전 5년간(4.3%)의 절반도 안 된다. 닭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시기는 여름이다. 특히 7월은 도축 마릿수가 1억 마리를 살짝 웃돈다.

‘K-치킨’이 해외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닭고기를 중심으로 한 가금류 1인당 소비량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소비 추정량이 17.6㎏으로 세계 평균(14.6㎏) 보다 많았으나 1위인 미국(49.3㎏)이나 유럽연합(EU)(23.1㎏)에는 한참 못 미친다.

아시아에서 가장 닭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는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말레이시아로, 1인당 가금류 소비량은 47.4㎏에 달한다. 일본과 중국의 1인당 가금류 소비량은 각각 13.4㎏과 14.1㎏으로 한국보다 적다. 인도는 2.2㎏에 불과하다.

지난해 국내 3대 육류 1인당 소비량은 60.6㎏으로 쌀 소비량(56.4㎏) 보다 많다. 돼지고기(30.1㎏)가 가장 많았고 닭고기(15.7㎏), 소고기(14.8㎏) 순이었다.

                                                                                                - 2024.07.21.  조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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