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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l 14. 2024

농부가 되어 깨우치는 인생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퇴직 후 1년은 목공을 하며 목수로 살았습니다. 이듬해에는 농지를 조성하는 일로 토목공사를 하다가 3년 차부터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농부 된 지 2년,  대학생으로 치면 2학년 sophomore입니다. sophomore는 현명하다(wise)의 뜻을 가진 sopho와 바보(fool)의 뜻을 가진 more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올해 처음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신나게 가르쳐주겠지만 정작 아는 것은 없는 헛똑똑이 정도입니다.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 농지의 넓이를 알지 못해서 신나게 일을 벌였고 감당을 못해냈던 첫해를 보내고, 두 해째인 올해에도 정신을 못 차려서 더 넓게 일을 벌여놓은 sophomore입니다. 고정끈을 묶을 때를 놓쳐 이리저리 쓰러진 고춧대, 약을 쳐야 하는데 시기를 놓쳐 잎마름병으로 고사한 10 포기 오이, 잡초를 잡지 못해 풀천지가 된 지경에 친환경 농법이라며 떠는 허세. 그런 가운데 내년에는 여기에 반송 소나무를 심고 저쪽에는 손자가 좋아하는 산딸기와 오디를 심을 계획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농사의 매운맛을 못 본 게 틀림없습니다. 철이 덜 든 농부가 철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한 농사일을 어떻게 해나갈지 저도 제가 무섭습니다.


소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헷세 / 사진출처-헤르만 헤세의 일생과 그의 작품 (down-maker.com)


힘든 노동을 하면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고, 농자천하지대본(弄者天下之大本)으로 자연과 농작물을 희롱하며 친구 되어 함께 노는 것으로 유유자적합니다. 제가 흠모하는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로지 밤에만 글을 쓸 정도로 정원 일을 아꼈다고 합니다. 대작가의 삶을 흉내 내보는 것만으로도 우쭐한 기분입니다.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부지런함과 노동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성급함이나 걱정 따위는 없다. 경작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고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생명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



헷세의 말속에서 노동의 신성함과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집니다. 땅에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가꾼다는 것은 삶의 본질에 다가서는 일이자 숙연해지는 일입니다. 이럴 때에야 진정한 겸손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태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투입과 산출로 경제적 생산성을 따져보면 반타작도 못합니다. 앞으로도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저에게는 씨앗값을 버는 일이 아닙니다. 사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자 대자연(mother nature)의 품에 아들이 되어 안기는 일입니다. 자연을 통해 인생을 더 깊이 통찰할 수 있으니 인간사를 배우는 자연 학교에서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제대로 실감합니다.


미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덜 살아서인지 무슨 말일까 싶었습니다만 숲을 보자 의미가 명료해졌습니다. 제가 농사하는 주변 야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나무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2년 동안 농사하면서 삽과 호미와 낫을 들고 일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먼저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루어야 살아남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난 놈이 강한 놈이라는 사실입니다. 뿌리를 땅에 두고 있는 풀과 나무, 땅 속과 위에서 살아가는 벌레와 짐승들에게는 숲이 바로 전쟁터입니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치열한 생존경쟁의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프랑스의 작가 라 브뤼에르는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라고 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느끼는 자는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느낀 것이고, 생각하는 자는 멀리서 보기 때문에 생각 속에서만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가 뛰고 뱀이 덮칩니다. 고라니가 새싹을 잘라먹고 너구리가 땅콩을 파헤칩니다. 멧돼지가 고구마를 탐하고 옥수숫대를 쓰러뜨립니다. 내가 무찔러야 할 오랑캐가 아니라 나의 경쟁상대입니다. 자연이 나에게 가르쳐준 사실입니다. 헷세처럼 낮에는 나무와 농작물을 가꾸고 밤에는 낮 시간 노동이 준 글감으로 글을 써봅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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