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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Nov 20. 2024

Montmartre 몽마르트르 - 예술과 순교의 언덕

나의 몸이 짐이 되는 곳이 지구입니다.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을 오르자면 숨이 차고 땀이 납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고개, 재, 령(嶺)이 많습니다. 몸으로 겪기 힘들었던 기억은 마음이 힘들 때 '고개'라는 심리적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나는 바위고개, 굶어 죽을 만큼 힘든 보릿고개.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추풍령,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함께 울어주던 비 내리는 고모령. 천등산의 울고 넘는 박달재, 서정주 시인의 고향땅 질마재, 조선 조(朝) 세조와 얽힌 고사를 가진 속리산의 말티재 등. 우리 귀에 익은 곳들입니다.


산을 보기 힘든 지형에서는 하찮은 언덕이라도 높은 곳이 되어 뭇시선을 끌게 됩니다. 랑스 파리 외곽의 18 구역에 속한 몽마르트르는 높이가 183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파리 시내에서 유일하게 높은 곳이어서 단연 주목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지금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파리적인 곳 중에 하나가 되었지만 몽마르트르 역시 고개와 재가 품은 한이 서린 곳이었습니다. 이곳도 우리와 은 하늘 아래 력이 힘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몽마르뜨르 예술가거리의 화가

몽마르트르 언덕은 바람이 불고 오르내리기 힘들어 사람들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Wuthering Heights(폭풍의 언덕)>처럼 바람에 의해 언덕의  모든 나무들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언덕이었을 것입니다. 몽마르트르의 사람들도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처럼 모질고 질긴 삶을 산 수많은 히스클리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언덕에 풍차를 지어 그 힘으로 가죽의 무두질이나 빨래공장을 했던 곳이었다는 사실은 이곳의 바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빨래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 중에는 남부 이태리 출신의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따뜻한 남쪽에 살았던 이 여인들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살았던 탓에 어려운 생활고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화가들의 누드모델이 되는데 거부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구하기 쉬운 누드모델을 찾아  몽마르트르로 화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한때 파리 시내가 아니었던 몽마르트르에는 와인공장이 많았는데 여기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파리 시내로 반입할 때에는 세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세금이 붙지 않은 와인을 값싸게 마실 수 있는 곳이 몽마르트르였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값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누드모델을 구하기 쉽고 와인을 마시기 좋은  조건이 입소문으로 알려지자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화가의 거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신문물이 들어오고 현대문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문학가들이 다방을 아지트 삼아 모여서 담소담론을 하며 문학의 열정으로 의기투합하여 동인지를 펴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곤 했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동류의식이 발동하면 무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고 동물세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언덕이라는 곳은 평지보다 높아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기도 하지만 우뚝해서 시선을 모으기에도 좋습니다. 십자가를 세워 예수님을 처형한 곳은 골고다 언덕이었고, 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은 한강 변 언덕 잠두봉(蠶頭峰)이었습니다. 잘려나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머리 때문에 천주교신자들에게는 절두산(切頭山) 성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모두 높은 언덕인 이유는 높은 곳에서의 사건은 이후에도 언덕을 볼 때마다 사건을 회상시키고자 하는 숨은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파리의 초대 주교였던 생드니(St. Denis) 몽마르트르 바로 이 언덕에서 절두의 교를 였습니다. 몽마르트르(Montmartre)는 프랑스어 mont(산)과 martyr(순교)를 합성한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몽마르트르 언덕 정상 생드니 주교가 순교한 성지에는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ecoeur de Montmartre 예수성심성당)이 서 있습니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랑꼴리에 빠진 프랑스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가톨릭의 숭고한(사크레 sacred) 신앙심(쾨르 heart)을 호소할 목적으로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 이처럼 높디높은(?) 곳에 우뚝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당의 앞에는 백년전쟁에서 영국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성녀 잔다르크의 기마 聖者 루이 9세 왕의 기마상이 서 있습니다. 구국의 기상을 잔다르크에게서, 왕으로서 성인으로서 추앙받는 생루이(聖 Louis 왕)게서 뻗어 나오는 신앙심을 기리고자 청동기마상을 세워 놓았습니다. 언덕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석조건물이 두드러지고 또다시 하얀 석조건물을 배경으로 청동기마상이 당당하게 서있어서 언덕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절묘한 성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언덕을 올려다볼 때 네 번이나 반복되는 두드러짐이 한눈에 한꺼번에 느껴질 때의 현란함에 현기증이 납니다.


중력의 제약을 받는 열악한 덕과 그로 인한 생활고 그리고 그 언덕에 불어닥치는 거센 바람이 생존을 위한 풍차를 만들었고 서 파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명물 <물랭루주(Moulin Rouge 빨간 풍차)>와 물랭루주 무희들의 캉캉춤이 유래했다는 사실이 이 세상은 역설로 가득 찬 곳임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중력의 법칙에 순종하는 고개(嶺 령)가 고개 좌우를 가릅니다. 분수령이라고 부릅니다. 평지 위에 건설된 파리의 귀족적인 번성과 찬란한 영화의 뒤에는 몽마르트르가 분수령이 되어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잔다르크와 생루이의 구국혼(魂)과 신앙심이 그리고 대중문화의 살이 센강에 흘러들어 파리를 촉촉이 적십니다. 에펠탑에서 바라본 몽마르트르 언덕, 언덕 아래에서 바라본 사크라쾨르 대성당,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파리. 눈으로 본 것으로 오감이 발동하는 이런 경험이 내 생에 또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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