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서의 탈출 - 최악의 상황을 기회로 전환
골프장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 중에 하나가 벙커입니다. 벙커샷을 그렇게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가능하면 피해서 코스를 공략합니다. 싫어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저는 벙커에 들어가면, 항상 선행 플레이어들이 벙커를 정리하다 빠뜨린 부분, 발자국 같은 곳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이상하게 저한테만. 동반자들이 옮겨서 하라고 하지만, 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을 안해요. 골프는 원칙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샷을 하는 것이라, 저는 그대로 플레이합니다. 그래서 별별 천지창조 샷이 나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잘 빠져나와서 파를 해야겠지요. 아주 가끔 바로 홀컵으로 집어넣기도 하지만, 그런 건 정말 재수라고 생각합니다. 제 기준입니다.
리더들 중에, 최악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가회롤 바꾸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인 앤 아웃(In-N-Out Burger)
한번씩은 들어보셨죠? 미국 서부지역에 간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전설의 버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해리 스나이더(Harry Snyder)와 그의 아내 에스더(Esther)는 캘리포니아 볼드윈 파크에 아주 작은 버거 스탠드를 열었습니다. 당시 식당은 가로세로 약 3미터(10피트) 정도의 아주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주차 공간도 거의 없었죠. 해리는 매일 새벽 2시에 직접 시장에 나가 가장 신선한 고기와 채소를 골라왔습니다. 에스더는 집에서 직접 만든 특제 소스를 준비했습니다.
인앤아웃이 처음 시작한 방식이 이때부터인데요. 당시 미국에는 이미 '드라이브인(Drive-in)' 식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차를 세우고 기다리면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나오는 방식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죠.
해리는 차 안에서 바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 가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차고에서 직접 '양방향 인터콤 스피커(Two-way speaker box)'를 조립했습니다. 손님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스피커에 대고 주문한 뒤, 바로 음식을 받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패스트푸드점의 표준인 '드라이브 스루(Drive-thru)'의 시작입니다. 가게 이름인 'In-N-Out(들어왔다 바로 나간다)'도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인앤아웃의 창업 스토리에서 유명한 것은 '냉동고, 전자레인지, 열등(Heat lamp)'이 매장에 없다는 점입니다. 해리는 고기를 얼리면 맛이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배송되는 생고기 패티만 사용했죠. 감자튀김 역시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생감자를 통째로 썰어 튀겼습니다.
이 철학 때문에 인앤아웃은 물류 센터(생고기가 신선하게 배송 가능한 거리)를 중심으로만 매장을 낼 수 있었습니다. 수익보다는 품질을 택한 이 결정이 인앤아웃을 최고의 버거 맛집으로 만든 경영철학이 되었습니다.
(인앤아웃 매장 앞에는 항상 교차된 두 그루의 야자수가 심겨 있습니다. 이는 창업주 해리가 좋아했던 영화 *매드 매드 대소동*에서 보물을 묻어둔 장소를 뜻합니다.)
인앤아웃의 가장 큰 위기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비극이었습니다.
창업주 해리 스나이더가 사망한 후, 회사를 이끌던 아들 리치(비행기 사고)와 가이(약물 중독)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0년, 창업주의 유일한 손녀인 린지 스나이더(Lynsi Snyder)가 20대의 어린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게 됩니다. 당시 월가와 대형 프랜차이즈 업계는 "경험 없는 어린 여성이 회사를 망치거나, 결국 사모펀드에 매각할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린지는 개인적으로도 두 번의 납치 위협과 세 번의 이혼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든 본질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현장 경영에 뛰어들었습니다.
2020년부터 시작된 팬데믹은 외식업계에 최악의 상황을 접하게 만듭니다. 특히 2021년 캘리포니아주의 '실내 취식 백신 접종 확인 행정 명령'은 인앤아웃에게 엄청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인앤아웃 매장에 고객의 백신 카드를 일일이 확인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린지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고객을 차별하거나 건강 정보를 검열하는 경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매장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결단이 단기적으로는 매출 손실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자유 가치를 지키는 브랜드라는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앤아웃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은 "냉동 패티와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에 발생하는 지리적 한계였습니다. 물류 센터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곳에는 매장을 내지 않는 원칙 때문에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죠.
또한, 캘리포니아의 가혹한 규제와 치솟는 임대료는 인앤아웃의 경영을 압박했습니다.
린지는 75년 만에 테네시주에 동부 허브를 구축하기로 발표하며 이 한계를 정면 돌파했습니다. 단순히 매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물류 시스템 자체를 새로 구축하여 동부 시장으로 진출하는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이는 규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서부에 국한되었던 브랜드의 영향력을 미국 전역으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린지 스나이더는 위기 때마다 비용 절감 대신 '직원 처우 개선'을 실시했습니다. 인앤아웃의 매니저 연봉은 평균 16만 달러(약 2억 원)에 달하며, 이는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퇴사율이 극도로 낮은 숙련된 직원들은 팬데믹 시기에도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했고, 이는 경쟁사들이 구인난으로 허덕일 때 인앤아웃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인앤아웃의 메뉴판은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햄버거, 치즈버거, 더블더블, 그리고 감자튀김과 음료수). 이렇게 이게 다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애니멀 스타일' 같은 비밀 메뉴를 먹을까요? 이게 아주 정말 신기한 아이디어입니다. 1960년대, 메뉴판에 없는 조합을 원하는 단골 손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리는 이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일일이 만들어주었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크릿 메뉴'라는 독특한 팬덤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광고 없이 고객의 입소문만으로 메뉴가 만들어지고 시그니처가 된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없겠지요.
오늘도 여러분의 굿샷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