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의 기억이 선명하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별거 아닌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1년 넘게 퇴사를 고민하며 혼자 걸어 다녔던 회사 근처 공원이라든가.
차라리 잘라줬으면 하고 엉망으로 다녔던 근태.
그럼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죄책감을 가지게 됐던 마음 같은 것.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고 스스로가 또라이가 아니었나 싶지만.
내가 한참을 고민하던 퇴사를 냅다 질렀던 건, 연봉 협상을 하고 얼마 안 된 후였다.
인상된 연봉은 예상 범위 내였고,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게 더 많은 연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니길 바랐다.
늦게 가고 일찍 나오며, 업무시간 내내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뭔가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고 하기보다는 그냥 그런 일이 어디선가 뚝 떨어지길 바랐다.
도둑놈 심보가 분명했지.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돈을 받으면서 할 게 아니라 주면서 해야 할 텐데.
내가 느끼기에도 내가 참 말도 안 되는 배부른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끔찍할 정도로 무의미했다.
그게 나를 점점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힘든 일도 없었지만, 나는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다.
일이 아닌 다른 것에서라도 즐거움을 찾고 나를 채웠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회사에 오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치고 힘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내 상태를 자각하고, 연차 등의 휴식으로도 도저히 회복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미 퇴사하기로 결정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퇴사하고 싶다는 강력한 생각을 한 후로도 나는 스스로를 달래고 말렸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퇴사하면 뭐 할 건데?
아무것도 안 할 거잖아.
그렇게 그냥 무작정 쉬느니 월급이라도 받으면서 있는 게 나은 거 아니야?
이 나이에 아직 경력도 시원찮은데 관두면 또 중고 신입 행인데.
그러다 덜컥 시간만 흐르면 공백기만 늘고, 누가 채용을 하겠어?
현실적인 생각으로 말리고 버텨봤지만 결국 그것도 소용없어졌을 때.
진짜 이상한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나를 평가할 때, 연봉만큼 냉정하고 명확한 평가 지표가 없다.
과연 회사에서는 나를 어느 정도 가치로 보고 있을까?
곧 해를 넘어가 연봉 협상을 할 시기라, 일단 그 결과가 나오길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지점은, 관둘 회사의 평가 지표가 왜 궁금한지 이해가 안 되고.
예상보다 더 받는다고 회사에 남을 생각도 아니었다.
큰 의미도 없는 그걸 왜 자꾸 생각하고 기다렸던 건지 모르겠다.
두 번째가 사실 첫 번째보다 더 강력한 트리거이고 결단한 이유인데.
그맘때쯤 회사에 관두는 분이 생겼다.
대표님이 퇴사 관련 면담을 진행하시는 걸 보면서, 앗! 내가 먼저 해야 하는데.
한발 늦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오래 고민했는데도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고.
계속 더 관둘 생각만 강해지는 걸 보면 관두는 게 맞겠단 생각이 들었고.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에 퇴사하겠다는 말을 차일피일 미루던 게, 다른 분이 퇴사 절차를 밟는 걸 보면서 이참에 나도! 하게 됐다.
그때 퇴사 이유를 뭐라고 했더라?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잘 기억이 안 난다.
대표님께서는 조금 당황하신 것 같았고.
프리랜서 등 좋은 제안을 해주셨지만, 그저 일을 안 하고 싶었던 거라서 거절했다.
아마도 대표님께서는 연봉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간 거로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일 안 하고 쉬고 싶다는 게 딱히 이해될 이유는 아니니까.
오해하실 것 같긴 했지만 딱히 정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퇴사가 결정되고,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뭔가 이렇게 그만두고 동굴에 들어가서 안 나올 것 같아요. 안 그럴거죠?”
“그럼요. 한 번씩 저 꺼내주는 친구도 있는걸요.”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어떻게 아셨지?
촉이 좋으신 분이셨나?
그렇게 나도 남도 예상한 칩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