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패배감이었다.
결국 또 도망쳤구나.
또 또 포기했구나.
그런 생각들로 아직도 한 번씩 한숨이 나온다.
마지막 회사를 관두기까지 나는 여러 회사를 거쳤다.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1년쯤 되면 회의감이 강하게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평생 이 일을 하며 이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
업무시간이 그저 버티고 흘려내는 너무나도 소모적인 시간 같다.
이렇게 내 삶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 없는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그렇게 그게 싫고 못 버티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 회사에서만큼은 경력 3년쯤 쌓아서 경력 이직해야지.
굳게 다짐했는데, 결국 또 도돌이표였다.
그게 자꾸 마음에 돌처럼 얹혔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래 놓고도.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
이러고 싶지 않았던 욕심.
누구 앞에도 당당히 설 수 없는 내 상태.
그런 것들이 뒤범벅이 된 채 숨만 겨우 쉬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IIII 성향이다.
친하든 아니든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집에 있을 때 가장 평온하고 그나마 에너지 보존이 된다.
이 말은 즉, 퇴사 후 내가 바깥에 나간 일이 손에 꼽는다는 말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긴 연휴가 있으면 나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단 한 걸음도 안 나갔다.
황금연휴라 거의 열흘 가까이 쉬게 됐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쉰 후 출근할 때, 오랜만에 햇볕을 받으며 생각했다.
아, 이런 게 감옥에 갇혔다가 출소한 사람의 심정인가?
법적으로 지은 죄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지은 죄는 많았던 나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아무도 감금하지 않았는데 나가지 않았다.
때때로 친구와 약속이 잡힐 뻔하기도 했으나 친구와의 만남조차 그리 즐겁지 않고 피곤하게만 느껴져 나중으로 미뤘다.
코앞에 미용실이 있는데도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를 자르러 가기보다 스스로 가위질을 했다.
들쭉날쭉 괴상한 꼴이 됐지만 어차피 보여줄 사람도 없고 길어서 귀찮던 게 반감됐으므로 그럭저럭 만족했다.
한 달에 한 번쯤 모인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긴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남이 보면 극단적인 고립 은둔 청년, 방구석 폐인인데.
나는 가끔 행복했다.
먹고 싶을 때만 먹고.
자고 싶을 때만 자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진 완전한 자유였으니까.
퇴사하면 내 꼴이 될 거라고 예상한 모습이었다.
안락하고 평온한 동굴 생활.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빈 시간을 채우느라 발버둥 쳐야 했다.
시간 재벌이 됐는데, 그 시간을 써서 하고 싶은 건 딱히 없었으니까.
퇴사 무렵 그런 생각을 했었다.
회사에서 의미도 없이 그저 버티는 시간을 제거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만 쓸 수 있다면 더 밀도 있는 삶이 아닐까?
회사 다니며 빈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과 퇴사 후 온전히 내 시간을 쓰는 걸 비교하면, 퇴사 후 삶이 몇 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거구나.
근데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무한한 시간을 얻자, 내가 원하는 게 아주 빠르게 소모돼 사라졌다.
퇴사 후에도 떨어진 내 에너지를 채워주는 건 없었다.
나를 소모시키는 것도 극단적으로 적어졌지만, 채워주는 게 없어서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결국 악의 축이라 생각했던 회사를 관두고도 나는 버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퇴사하면 일단 푹 쉬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는 계획이 있었다.
때때로 패배감과 회의감, 죄책감, 자괴감 때문에 괴로웠지만.
어쨌든 쉬는 건 진절머리 날만큼 했다.
이제 뭐든 하긴 해야 할 텐데, 딱히 그럴 기력이 없었다.
굳이 그걸 왜? 안 하고 그냥 이렇게 있는 게 더 편한데.
그래도 뭔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이렇게 멍하니 시간을 죽이기만 한다고?
그래서 뭐, 그게 아니면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는데? 꼭 해야만 하는 게 있어?
답 없는 질문이 돌고 돌았다.
방향도 목표도 의욕도 없었다.
잃어버렸다고 해야겠지만, 사실은 버렸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렇게 요령 없이 쉬면서 버티기만 한 1년.
나는 왜 쉬었는데 쉰 것 같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퇴사한 그때에서 고작 눈곱만큼만 회복됐단 사실이 의아했다.
그렇다고 다시 사회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