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쉼, 언제까지 쉼?

by 이백구십일

브런치북은 최소 10개를 채우면 발간을 할 수 있다.

처음으로 기획한 소재로 10개의 연작을 채운 후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못할 줄 알았는데 했네!

완성! 끝!

아쉽지만 마침표 찍을 수 있을 때 찍자!


그렇게 잠시 이 브런치북과 주제에서 멀어졌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내가 이 브런치북을 왜 만들었지?

어떤 걸 쓰려고 했더라?

너무 내 얘기만 하다가 끝내지 않았나?


처음에 이 브런치북을 생각한 건 요즘 많이 보게 된 키워드 때문이었다.

그냥 쉼 청년.

뭘 배우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준비 중인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어떤 생산적인 일이나 그럴 계획 없이 그냥 쉬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정확히 현재 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부정적으로 소비될 때는 가족들에게 기생해서 부담과 짐을 늘린다고 하는데.

자취하며 온전히 내 돈으로만 생활하는 나와는 조금 동 떨어진 내용이긴 하다.


내가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쉼 상태가 아닌 사람 중 일부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그래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왜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칩거하고 격리된 채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그런 걸 적으면 이해할 수 없었던 분들에게 작은 실마리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손톱만큼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냥 요즘 하도 그냥 쉼, 그냥 쉼 하니까.

내 상태기도 해서 편하고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랐다.

그게 크다.

그래도 이쯤 됐으면 하나쯤은 조금 축약돼 있던 걸 열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내가 쓰다 보니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야 흐지부지 넘어간 게 많았으니까.

내가 왜 퇴사하고 이렇게 사는지를 요약하면, 그게 편하고 좋으니까 다.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거고.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도 참고 견디고 하는 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대부분 크든 작든 돈의 영향이 클 거다.

나도 실제로 관두기 전까지는 그 돈 때문에 다녔던 적이 많고.

마지막까지도 그 돈 때문에 고민했던 게 크다.


내가 겪었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회는 공백기와 쉼에 예민하다.

마지막 퇴사 후 내가 회복되고 일할 가치나 의미를 찾기까지 아주 오래 쉴 계획이었는데.

그런 공백기를 가진 내가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 취업하려면 매우 큰 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햇수로는 4년 차, 만 3년이 아무것도 안 한 채 흘려보낸 시간인데.

면접 가면 이때 뭐 했냐는 질문부터 나올 테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었는데요.

이러면 99.9% 확률로 탈락하겠지.

그럼에도 취업하고 싶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 아득바득 가야 할 거다.

꾸준히 사회에서 잘 살아온 사람에 비해 공백기가 있는 사람은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니까.


돈이 급하고 더 살고 싶다면 어떻게든 어디든 가서 돈을 벌어 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생각이 없다.

좋아하는 일이라고는 콘텐츠 소비 정도인데, 딱히 큰돈이 드는 영역이 아니다.

돈을 더 벌어서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당장 몇 년은 이렇게 무난히 지낼 수 있을 거고.

조금만 신경 쓰면 10년도 거뜬할 것 같다.

그래서 그 10년 후에는 어떡할 건데, 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먼 미래까지 고민하고 걱정하고 대비할 생각 자체가 없다.

정말 솔직히 고백하자면 돈 떨어지면 이쯤에서 끝나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그냥 쉼으로 분류된 사람 중에는 이미 벌 만큼 벌어서 조기 은퇴를 한 사람도 많을 거다.

나도 반쯤 이쪽 영역에 속하긴 하는데, 나머지 반쪽 영역에 대해서 보자면.

힘들게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게 없고, 힘듦을 버티고 이겨낼 교환 가치가 없다.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으니.

아득바득 돈을 벌 이유가 없고.

낙오자가 되어 먼 미래의 불안과 혼란이 찾아올 수는 있으나.

사회에서 사는 거 자체가 이미 지옥이었는데.

잠시 평화를 찾아 편하게 사는 대가 치고, 나중에 셈을 치르는 건 딱히 무섭지 않다.


그냥 쉼 상태인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나와 비슷한 마음인 사람도 많지 않을까?

내가 나라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그냥 쉬는 게 아닌데, 이유 설명하기 귀찮고 부끄러워서 그 상태로 얼버무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무튼 지난 글에도 언급된 바 있지만.

나는 그냥 쉼 상태가 하기 싫은 걸 안 하겠다고 파업한 상태로 본다.

그러면 뭘 할 건데, 의 답으로 뭔가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 모호한 상태다.


정확히는 없었던 상태였고, 최근에는 몇 가지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시도하고 있는 에세이도 있고.

하고 싶은 게 없으면 하기 싫어도 일단 돈이라도 벌어야지, 라고 할 순 있겠으나.

그 돈 버는 일이 나를 죽일 것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남들 다 참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도 참을 수 있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내 경우 나에게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이 꼭 그랬다.

이렇게 의미 없이 사느니 그냥 죽고 말지.


누군가 괴롭히지 않아도, 잘못된 게 없어도.

그런 마음과 생각이 들 수 있다.

이건 이해의 영역은 아니고.

나와 당신이 다르기 때문이며.

이걸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인데, 나에겐 그럴 마음이 없다.


틀려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없고.

이게 그냥 나고.

나는 이렇게 느끼고.

나는 이게 편하고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쉬는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찾아 시도했다.

나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고, 할 때 재밌고 즐거운 일을 찾았다.

그게 웹소설일 거라 착각했고, 덤볐지만 무참하게 깨졌다.

그렇게 표류하다 또 다른 섬을 만났고.

지금은 그 섬을 탐험 중인 상태다.


저 바다 너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좋은 대륙이 있다고 해봐야.

나에게 그곳은 숨쉬기도 힘들고 답답하고 끔찍한 곳이라 당장은 갈 생각이 없다.

물론 내 생각과 마음이 변해서 다르게 인식하고 원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선택은 모두 내 몫이라는 거다.


어떻게 살지도, 언제까지 살지도.

나에게는 나의 기준과 방식이 있다.

그게 보편적인 방식과 조금 어긋나 있지만.

그게 나의 방식이고 기준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사실은 나조차도 있을까 회의적인 일이 내 앞에 나타났으면 싶다.

아무리 해도 재밌고,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이.

힘은 좀 들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삶이라면 살아볼 만하다 싶은 그런 일을 찾을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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