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굉장히 까탈스럽고 예민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마주쳤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는 적극 동의할 거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 시절에 나는 이상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글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꽤 까탈스럽게 골라 보면서 재밌게 본 걸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곤 했는데.
대체로 재밌다며 또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인터넷에서는 내 생각과 비슷한 지적과 비평이 많았다.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는 남들보다 통찰력이 있고 직관이 있구나.
매우 오만한 생각이지만 어떤 문제나 사건, 사람을 대할 때.
그냥 직감적으로 이야기한 것들이 꽤 적중률이 높았다.
그래서 내가 통찰력이 있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품게 됐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가끔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견을 맞추는 것에 실패할 때면 나는 매우 당황했다.
어라, 당연히 맞아야 하는데 왜 틀리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 콘텐츠를 소비하며 보낸다.
웹소설, 드라마, 영화, 예능.
취향에 맞는 걸 끊임없이 찾아 떠돌며 쉼 없이 발을 담갔다가 바로 나오기도 하고 밤새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콘텐츠들에 대한 내 감상이나 의견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 거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와 다른 관점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 반례들을 마주칠 때마다 화가 났고 불편했다.
당연한 건데도 왜 불쾌감을 느꼈을까?
내 생각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다 이런 독선적인 생각을 조금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좀 쌩뚱맞지만 우리나라 영화관, 영화계 성적이 저조한 이유가 뭘까?
하는 이야기들이 우후죽순 솟아날 때였다.
뉴스에도 많이 나오고 글과 댓글도 꽤 많았다.
뉴스 기사 논조도 그렇고 사람들 반응도 푯값이 너무 올라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한때 나는 영화관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1년에 한 번도 겨우 갔던 것 같다.
이유는 푯값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영화관에 덜 가게 된 건 볼 영화가 없어서였다.
치킨도 오르고 김밥도 오르고 밀가루도 오르고 다 같이 오르기만 하는 세상에, 영화 푯값 좀 오른 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슨 푯값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를 안 보냐고.
볼 영화 있으면 다 보러 가지.
뮤지컬, 연극, 콘서트에는 십수만 원도 쓰는데.
고작 푯값 때문에 안 본다는 게 말이 돼?
그런 의견들을 냈던 것 같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잠시 신경질이 났다가 그 후로 잊었는데.
최근에 영화관 구독 패스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도 저번과 사람들 반응은 비슷했다.
푯값 부담만 좀 덜 하면 영화관에 더 자주 갈 거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푯값이 천 원이든 만 원이든 보고 싶은 영화는 볼 거고.
보고 싶지 않은 영화라면 나한테 만 원을 준다고 해도 썩 끌리지 않았으니까.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과 내 생각 사이에 간극이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답을 찾았다.
딱히 꼭 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번 시도는 해볼까?
하는 하한선이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를 만든 것 같다.
좁디좁은 내 취향 폭 안에서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 하한선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럴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아무도 안 봤을 텐데, 어쨌든 누군가는 지금도 영화관에 가고 있으니까.
나는 드라마에 독백만 나와도 끔찍하고 오글거린다며 바로 하차하는 사람이다.
드라마에 다큐 나레이션을 끼얹다니, 설명문을 그렇게 끼워 넣고 싶었으면 소설을 써야지 왜 영상 매체에서 저래?
나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영역인 그것이 최근 드라마에서는 꽤 자주 보였다.
그래서 볼 수 없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는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상업물인 드라마에 그런 시도가 많아졌다는 건 누군가는 그걸 원하고 소비한다는 거다.
혹은 최소한 나처럼 발작하고 싫어하진 않는다는 거고.
왜냐하면 상업물이라는 건 어쨌든 돈을 벌고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건데.
대부분이 원하지 않는 걸 제작한다는 건 그냥 돈만 쓰고 벌지 않겠다는 거니까.
독립 예술이라 그저 표현하고 만드는 것에만 뜻을 둔다면 모를까 상업물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말은 즉, 내 취향이 소수 취향이라는 건데.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든 것 같다.
물론 깊게 고민하지 않고 따져볼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게 우스울 만큼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취향이 무조건 절대다수가 원하는 대중 취향일 거라고 믿다니.
남들 취향이 어떤지 별 관심도 없고 알아보지도 않으면서.
게다가 그런 다수 취향에 맞춘 대부분의 콘텐츠를 별로라고 고개를 저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참 미련한 짓이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보니 세상이 조금 달리 보였다.
내 취향이 소수 취향이란 걸 인정하고.
내 취향은 아니지만 남 취향인 건 세상에 아주 많고 많다는 걸 깨닫고 보니.
내가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했던 모든 게 아, 난 별로지만 누군가는 좋아하겠구나.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좋아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로 여러 의견과 생각들을 보다 보니 다른 것도 보였다.
이전의 나처럼 자신의 취향이 소수 취향이란 걸 받아들이지 못한 여러 사람 말이다.
나와 다른 취향의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대부분 나랑 비슷한 취향이겠지.
내가 좋아했으니까 대부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내가 싫어했으니까 대부분 다른 사람도 싫어하겠지?
내 가치관과 취향, 생각은 그저 나 하나의 것일 뿐인데.
당연히 대부분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게 보이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논쟁해서 이기려고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게 보였다.
나는 이제 한 걸음 뒤에서, 내가 소수 취향인가 보다.
소수 의견인가 보네.
그러고 넘어가게 됐지만, 또 다른 생각거리가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 사람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이란 걸 안다.
근데 왜 상대가 나와 다를 때 화를 내고 서운해하고 속상해하는 사람이 많을까?
어떤 연예인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어떤 음식이 나는 별로였다고 하거나.
어떤 드라마, 영화, 예능이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거나.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반대나 어긋남이 이야기를 꺼낸 상대를 향한 게 아닐 텐데.
왜 내가 거부당한 것 같고, 네가 틀렸다고 상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걸까?
세상 사람 모두가 각자 다른 사람이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두가 나와 같은 사람이길 바라는 걸까?
아직도 왜 다름을 마주하면 왜 이렇게 불편하고 불쾌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다른 것을 마주하면 생각하고 되새긴다.
시비 걸지 말자. 싸우지 말자. 다른 거다.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만, 친구 앞에서는 자주 무력화된다.
친구와 나는 최근에도 말싸움을 했는데.
진짜 별것도 아닌 거였다.
올겨울이 평소보다 춥네, 덥네.
반대되는 얘기를 하다가 내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한다고 기상청 온도 데이터를 찾았다.
그러다 현타가 왔다.
대체 이게 맞다 틀리다 증명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검색까지 해가면서 이러고 있나.
실제 기온이 높든 낮든 사람 체감온도는 다 다른 건데.
쟨 더 추울 수도 있지.
한숨 쉬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가 또 얼마 안 가 부딪쳤다.
논쟁하기 싫어서 또 주제를 틀고 또 대화하다 부딪치고, 싸우고.
쟤랑 나는 다른 사람인데, 왜 그게 자꾸 거슬리고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