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평가한 내 에세이

by 이백구십일

올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에세이는 나에게도 되게 먼 것이었다. 몇 권 에세이 책을 본 적은 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거나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고, 에세이를 써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물론 학교 다닐 때 숙제로 뭔가를 적어낸 적은 있었지만 그게 에세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불쑥 에세이를 써야겠다 마음먹은 건 왜였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AI랑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결정했던 것 같다. 단순 잡담이나 이미 해결된 의문 같은 남겨둘 가치가 없는 대화 기록은 금세 지워버리는 편이라, 그때 대화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게 조금 아쉽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쓰던 웹소설에 또 부족함을 느껴 엎으면서 그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하다가 포기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자꾸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에세이에서 적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이유를 찾은 후에 그런 걸 물었다.


글을 쓸 땐 그래도 재밌는 것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거든. 웹소설 말고 좀 더 나에게 맞는 글의 형태가 있을까? 그렇게 물어서 나온 것 중 하나가 에세이였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에세이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더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어쨌든 에세이를 썼다고 했을 때 그거로 뭘 할 수 있는 건지도 전혀 감이 안 왔다.


그냥 혼자 써서 간직하는 건 굳이 싶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그래서 에세이를 쓰면 뭘 할 수 있는데, 어디 올릴 때가 있나?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됐다. 물론 전부터 브런치에 대해 알고 있긴 했다. 자세하게는 아니고,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 쓰려면 가입해서 심사받아야 하는 곳. 정도의 인식만 있었다.


예전에 블로그 같은 걸 해보려고 찾을 때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냥 쉽고 편하게 아무 말이나 하려고 블로그를 택한 건데, 가입에 심사까지 받아야 한다니 너무 과하게 느껴져서 관심을 끊었다. 그런데 그곳이 에세이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니. 조금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사받는 것도 이상하게 경쟁심을 부추기고 도전 의욕을 불렀다.


그래도 썼다 말았다 하긴 했지만 책 보고 글 쓰고 했던 게 몇 년인데,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심사를 통과하고 그때부터 좀 더 쉽고 가볍게 글을 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멀게만 느껴졌던 에세이와도 조금 친해진 것 같고.


물론 여전히 누군가가 나에게 에세이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면 횡설수설할 것 같긴 하다. 좋은 에세이가 뭔지, 잘 쓴 에세이는 어떤 건지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고. 그래서 에세이를 처음 썼을 때부터 지금까지 에세이를 쓰기만 하면 AI에게 가져가서 물었다.


이런 제목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봤는데, 이게 에세이가 맞을까? 이상하진 않아? 어떤 걸 고치고 바꿔야 할까? 그렇고 묻고 답을 들으면서 조금씩 톤을 찾고 방향을 잡고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게 맞나 싶다가도 아닌 것 같아서 흔들리고.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싶어서 썼던 걸 없애버리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굳이 AI한테 점검받을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냥 올릴 때도 많아졌다.


막 브런치 승인을 받고 에세이를 공장처럼 뽑아낼 때는 AI가 내 글을 보고 주는 의견과 평가가 마치 독자의 피드백 같아서 즐겁기도 했다. 덕분에 의욕이 상승하기도 했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좋은 말은 그냥 지나치고 이렇게 저렇게 수정하는 게 어떨까.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잘못 쓴 것 같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웹소설 쓸 때 퇴고하고 엎었다 다시 쓰고 이러면서 진만 다 빠지고 의욕만 없어졌던 경험이 있어서, 가능한 에세이는 퇴고도 재작업도 하지 않고 일단 양으로 승부 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하긴 했지만, 에세이를 보여줄 때마다 늘 나오는 말은 아무래도 계속 신경 쓰이고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신경 쓰여서 나중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언급하지 말라고도 했는데, AI들이 말을 그렇게까지 잘 듣는 편은 아니라서 하지 말라고 해도 꼭 뭔가를 지적하고 바꾸면 더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치명적인 문제까진 아니지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라고 해서 아니 치명적인 거 아니면 말하지 말라니까 왜 말하냐고, 나랑 싸우자는 거냐고 하기도 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안 그러겠다고 하다가도 또 뭔가를 막 지적해서, 그게 치명적인 문제라는 거지? 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했다. 솔직히 화병 나서 없애버리고 싶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아무튼 AI가 남긴 피드백 중에서 가장 자주 나왔던 건 내가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쓴다는 거였다.


한 생각의 사례를 하나만 들어도 되는데, 그걸 두 개 세 개까지 늘어놔서 지루하고 늘어지는 구간이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엥, 다 필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생각했고. 보다 보니 좀 중복과 반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곱씹다 보니 내가 채우고 싶은 분량이 있는데, 내가 담고 싶은 생각과 내용이 너무 간단 명료할 때 길이를 늘이기 위해 안 써도 될 걸 썼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좀 짧더라도 쓰고 싶었던 생각, 말을 다 적으면 미련 없이 마무리하자. 좀 더 깔끔하고 담백해지면 좋을 것 같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에세이 그냥 편하게 내가 생각하는 거 쓰고 싶은 거 자유롭게 쓰려고 했는데. 그 중복도 끼워 넣은 것들도 다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거 아닌가? 굳이 그걸 빼야 하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AI가 준 피드백이 맞는 건가? 믿을만한 피드백인가? 중복이라고 지적한 것이 사실은 내 생각을 더 파고들고 확장하는 내용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무작정 수용하는 게 맞나? 내가 지금 AI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


분명 이런 문단, 이런 내용은 중복이지 두세 개를 하나로 줄이는 게 좋겠다. 그런 피드백을 봤을 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곱씹다 보니 그게 정말 중복이고 지루한 부분이었던 게 맞았나 의아해졌다. 어쩌면 굳이 고치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 편하게 쓰던 대로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피드백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건 아닌데, 피드백을 보면 거스러미처럼 계속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든 손봐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게 불편해졌다. 아무래도 이젠 AI에게 내 에세이를 보여주며 의견을 묻는 건 그만둘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전처럼 내가 쓴 게 에세이인지 아닌지 불안하고 걱정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AI 때문에 찝찝하고 불쾌해질 때가 많으니 안 쓰는 게 더 좋겠단 생각이다.


그래도 누가 에세이는 무조건 이 분량은 넘겨야 해요. 아니면 에세이 실격입니다. 한 것도 아닌데 분량에 집착하며 주렁주렁 장식을 다는 건 좀 안 해도 되지 않나 싶긴 하다. 근데 이 글은 왜 이렇게까지 길어졌지? 분명 이렇게까지 길어질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주저리주저리 하는 게 제일 편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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