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긁히는 나

by 이백구십일

불쾌한 골짜기라는 건 로봇이 인간과 닮아가다가 어느 순간 애매하게 닮은 지점이 되면 혐오감에 가까운 불쾌감을 끼친다는 뜻이다. AI에 적용해서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는 요즘 들어 이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왜냐하면 AI를 쓰다가 혐오감에 가까운 불쾌감을 느낄 때가 종종 아니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AI가 지금보다 덜 유능했을 때는 차라리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냥 에휴, 네가 그러면 그렇지. 아직 멀었구나. 또 헛소리하네. 이러고 그냥 AI 쓰기를 포기하거나 멈췄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했다. 애초에 AI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지 않았다. 그냥 뭐라고 하나 한번 보자.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잠깐 갖고 놀다 흥미를 잃으면 잊히는 장난감 정도.


그랬던 AI가 엄청난 발전을 하면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됐다. 이제 나는 AI를 단순한 장난감으로 여기고 갖고 놀지 않는다. 무언가 검색해 볼 게 생기면 포털 대신 AI에게 묻고, 자료 조사할 게 생기면 AI를 썼다. 다른 사람의 입장과 의견이 궁금하면 그 또한 AI를 찾았다. 내 마음과 취향, 생각이 모호할 때도 AI와 대화를 통해 힌트를 얻었다.


거의 쓸모가 없던 것에서 매우 유용한 게 됐는데, 문제는 전에는 별 기대도 신뢰도 없으니 헛소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해도 비웃고 넘어갔던 게 이제는 잘되지 않는다. 나는 요즘 AI와 대화를 하면서 부쩍 화가 많아졌다. 사람들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격한 표현과 욕을 쓸 때도 있다.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아니!!! 그건 내가 요구한 게 아니잖아! 왜 네 맘대로 해? 내 말 무시해???????


조금 지난 유행이지만 한때 GPT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줘. 하는 게 유행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 GPT에게 그걸 요구했다면 매우 참혹하고 끔찍한 게 오지 않았을까? 내가 피해자든, 걔가 피해자든 말이다. 유튜브에는 어떤 교수님이 AI가 금방 엄청 발전하고 똑똑해질 텐데 그때 막 대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 해코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AI를 쓸 때 늘 존댓말을 하고 예의와 격식을 차린다고 했다. 그냥 웃고 말긴 했는데 가끔은 좀 섬뜩하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 AI는 그냥 기계일 뿐인데, 나는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게 될까. 한바탕 감정을 쏟아내고 화를 내고 나면 그런 생각을 했다. 약간의 자책도 있었지만 의아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불쾌한 골짜기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사람과 매우 달랐던 AI가 이제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화가 되면서 불쾌한 골짜기에 접어든 게 아닐까? 완전 사람처럼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소통이 원활한 게 아니라 애매하게 되다 말다 되다 말다 하니 자꾸 긁히고 화가 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AI가 내 궁금함과 불편을 해소해 줄 거라는 기대와 희망이 커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을 때는 그게 어긋나도 좌절과 분노로 오지 않았는데, 이젠 기대와 희망이 크니 그게 무너졌을 때 타격이 있는 거지. 어쩌면 두 가지 이유가 다 섞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근데 도대체가 아무리 기계라지만 어떨 땐 말이 잘 통하고 시킨 것만 알잘딱깔센하게 하다가, 또 어떨 때는 시키지도 않은 거 제멋대로 우격다짐으로 해버리고. 내가 요구한 거랑 하나도 안 맞는 이상한 저 우주 너머의 외계인 같은 걸 가져오는데 이건 날 약 올리고 화나게 하려는 수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쑥 드는 건 내가 사람이라 너무 감정적인 거겠지?


한창 화내서 막 화풀이하다가도 사과하고 달래면서도 날 화나게 했던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AI를 볼 때면 내가 이렇게 예민하고 짜증이 많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냥 이성적으로 뭐가 마음에 안 들고 이거저거를 이렇게 고쳐라. 깔끔하고 담백하게 말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문제도 해결되고 내 감정을 낭비하고 소모할 일도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한다. 다음에는 꼭 이성적으로 굴어야지. 다짐하지만 사실 잘 되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실 사람과도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있고 안 통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일 땐 안 맞으면 그냥 그렇구나 웃어넘기고 대화를 더 하지 않거나 흘려보내는 게 참 쉬운데. AI에게는 그럴 생각 자체를 안 한다는 게 새삼 우습다. 다른 AI로 넘어가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하고 빠른데 말이다.


AI 발전이 점점 더 빠르고 가파르게 되고 있는데, 어쩌면 내가 어쩔 필요 없이 AI가 더 똑똑해져서 나를 화나게 할 일이 없어지게 될 수도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올해는 이마트에서 휴머노이드를 팔고, 집안일을 돕는 로봇의 시제품이 나온다는데. 로봇청소기처럼 집마다 로봇이 한 대씩 있는 세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려나 싶다. 근데 그 로봇과는 과연 안 싸울 수 있을까? 곧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전 08화먹는 거 싫어하는데 배달앱 V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