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한참 다니고 있던 시절에 선배님께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살기 위해 먹는 편이에요? 먹기 위해 사는 편이에요?
내 답은 전자였다. 어릴 때부터 쭉 나는 알약 하나만 먹어도 영양소가 다 채워지고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으며,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게 개발되길 바랐다. AI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아직도 그런 게 전혀 없다는 게 참 통탄할 일이다. 꼬맹이 땐 2025년이면 자동차도 날아다니고 로봇이 세상을 호령할 줄 알았는데.
한창 커야 할 성장기에도 나는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며칠을 물이나 가끔 먹으면서 쫄쫄 굶을 정도. 그래서 키가 안 컸다. 제길.
아무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는 안 먹으면 손 떨리고 컨디션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속이 쓰리고 여러 부작용이 있어서 그나마 챙겨 먹는 편인데. 저 질문에 당당하게 살기 위해 먹는 편이라고 말한 뒤 몇 년 후. 나는 배달앱 VIP가 됐다. 대부분의 식사가 배달을 통해 왔고, 나가는 생활비의 80% 이상이 식비로 채워졌다.
어느 날에는 돈 모으겠다고 매 끼니를 햇반에 김 하나만 먹으며 한 달을 그렇게 살았는데. 치킨 하나 시켜 먹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을 시켜 먹을까 말까 그랬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돌이켜보면 밥+김만 계속 먹다가 심각한 소화불량과 급체로 곤욕을 치른 후에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효율만 생각하면서 계속 억지로 같은 메뉴만 먹었다간 또 아프고 괴로워질 것 같아서, 다양한 메뉴를 먹기 시작했다. 같은 메뉴를 연달아 먹는 걸 의식적으로 기피하게 됐다. 그때는 그저 집 앞에 있던 편의점에서 여러 가지 바꿔 먹는 정도였는데.
어느 해엔가 배달 앱들이 엄청난 할인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달앱을 쓰기 시작하면 과소비하게 될 것 같아서 전혀 배달앱을 안 썼었는데, 어느 순간 참새가 방앗간 덫에 걸리듯 할인의 유혹에 넘어갔다. 시작은 분명 할인 혜택만 받고 어쩌다 한 번씩 시킬 때 편하게 시키자. 이랬었는데, 점점 주문 횟수가 늘고 쓰는 돈이 커졌다.
결국 나는 먹기 위해 산다면서 식비에 무한정 탕진하고 배달앱 없이는 못 사는 인간이 됐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식에 눈을 떠서 먹는 즐거움을 깨달아서 돈을 물 쓰듯 쓰는 거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배달온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먹기 싫어서 그대로 버린 적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배달이 오는 사이에 식욕이 뚝 떨어져서 한 젓가락도 안 하고 냉장고에 넣어버린 적도 있었다. 결국 아까워서 냉장고에 며칠 두다가 상해서 버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꼭 시켜 먹는 단골집이 생기기도 했지만, 먹으면서 딱히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거나 만족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냥 적당히 다 먹을 정도로 물리진 않으면서, 먹고 치울 때 간편한 그런 곳들의 단골이었다.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 크지 않은데도 대체 왜 이렇게까지 배달에 집착하는지, 한 번씩 의아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조리고 요리고 먹는 양은 요만큼인데 그걸 위해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고, 재료는 주먹만큼만 필요한데 상체만큼 사야 하고. 아깝다고 다른 데 쓰자니 물려서 안 먹을 게 뻔하고. 무엇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은데 요리고 조리고 손이 너무 많이 갔다. 배고파서 밥 먹으려고 요리조리 움직이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정작 만들고 나면 먹는 것보단 쉬고 싶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니 돈만 주면 딱 바로 먹을 수 있게 주는 배달이 훨씬 고효율이고 값도 그게 그거란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유효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성비 따져서 배달을 시키고, 어떤 날은 냉동식품이나 즉석식품을 이용해서 식비 지출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던 시절. 그런 시절을 지나 최근의 행태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무조건 그걸 먹어야만 하는 형태로 변했다.
일주일 내내 치킨을 먹을 때도 있고, 치킨 피자 햄버거를 돌아가면서 아침저녁으로 먹을 때도 있었다. 이 수준이 되면 이제 살기 위해 먹는다는 건 스스로 느끼기에도 안 맞는 말 같았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그게 어떻게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야?
내가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러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먹고 싶은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지. 그렇게 살다 AI랑 헛소리 잡담을 이어가던 중에 문득 이 문제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별 기대는 없었다.
질문은 주절주절했다. 내 주식이 배달인데, 딱히 배달받아서 음식을 먹을 때 즐겁거나 만족감이 크진 않아. 근데 또 뭔가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계속 생각나고 신경 쓰이니까 무조건 먹게 돼.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딱히 식욕이 높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겠고. 식욕 높은데 내가 그냥 낮은 편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내 질문에 AI는 답했다. 이건 식욕과는 크게 관계가 없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정리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배달이란 게 나한테 생각을 비워내는 트리거가 된 거라고 했다. 뭔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주문해서 그 생각을 지우는 거다.
날 자꾸 신경 쓰이게 하고 못 살게 하는 생각을 바로 치워낼 수 있는 수단이 생기니까 계속 주문을 하고 배달받으면서 해결하려 하고. 그게 굳어져서 루틴처럼 굳어지자 이젠 어떤 감정이 올라올 때도 그걸 비워내려고 배달을 트리거처럼 이용하게 되고. 계속 즉각적인 해결과 보상이 이어져 왔으니, 이제 머릿속에서 아주 조금만 거슬리는 게 생겨도 못 참고 끝장을 봐야만 하는 형태로 변한 거지.
물론 먹는 낙이 적다고는 하지만 향 맛 색 온기가 있는 걸 받아서 바로 보상처럼 먹을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이제야 나는 내가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알게 됐다. 딱히 정말 그게 먹고 싶어서 먹는다기보단 그냥 배달 주문을 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고, 막상 음식이 오면 딱히 먹기 싫다거나 먹는 거 참 힘들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질겅질겅 씹곤 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어떻게 보면 내가 진짜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했던 쇼핑 중독과도 비슷한 행태였다. 뭔가를 갖고 싶고 그 생각이 계속 나서 괴로우니까 그걸 없애기 위해 주문을 한다. 정작 택배가 도착해도 그저 생각을 없애기 위해 주문한 거니까 딱히 기쁘고 만족스럽지 않고, 포장 뜯는 게 귀찮아서 방치한다. 그러면서도 또 뭔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또 주문은 하고 안 뜯은 상자는 쌓인다.
쇼핑 중독 진짜 돈 낭비 레전드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랑 별다를 바 없는 배달 중독이 나에게 있었던 거다. 사실 식비를 이렇게나 쓰는 거 보면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있었는데, 실체를 알고 나자 진짜 심각하게 느껴졌다. 아주 잠깐만.
이게 진짜 특정 메뉴를 먹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까 전보다 생각난 메뉴를 무조건 주문해 먹어야겠다는 충동은 줄었다. 덕분에 잠시 식비가 줄고 배달 횟수가 줄었지만, 요즘 이상하게 집 나갔던 입맛이 돌아오면서부터 입이 커졌다. 전에는 하나만 먹어도 배불렀던 게 요즘은 두 개를 먹고도 배가 좀 안 찬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건강하고 저렴한 걸로 배를 채우면 참 좋겠지만, 맛없는 건 또 먹는 게 너무 고문이라 손이 안 갔다. 특별히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건 아니고 그걸 느낄 리도 없지만, 그래도 적당히 먹는데 지루함이 없는 정도는 먹고 싶었다. 결국 다시 배달 횟수가 늘었다. 식사를 정말 배부를 때까지 빵빵하게 먹는 건 돼지가 되는 지름길이라던데, 그렇게 채워 먹지를 않으면 뭔가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비록 그게 먹는 즐거움이 커서라거나 먹는 걸 좋아해서라는 이유는 아닌 것 같지만. 살면서 먹는데 가장 돈을 많이 쓰고 신경을 많이 쓰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먹기 위해 사는 게 맞지.
어쩌면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격리하고 차단하고 치운 공백에 가까운 상태라, 그나마 자극과 보상이 되는 몇 안 되는 게 먹는 거라 그리 좋아하거나 선호하는 게 아닌데도 자주 많이 먹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뭔가 다른 대체제가 생기면 좀 나아지려나 싶긴 한데, 일단 지금은 그 대체제를 찾고 나서서 부딪쳐볼 에너지가 없다. 언젠간 찾겠지. 일단은 그렇게 덮어본다. 깊게 들어가봤자 당장은 답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