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디 이란 등 6개국 추가… 탈달러는 언제쯤?
‘앙숙’ 사우디-이란 중재 이어 브릭스 품 안에
‘사우디 변심’ 바이든 뺨 때리기 3탄
푸틴 ‘대환영’…인도-브라질 ‘정치 중립’ 강조
IMF, WB 견제…’탈달러’ 계산기 분주
#. 장면 1 : 시진핑이 웃었다.
시진핑 주석은 잘 웃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다.
표정, 손짓, 패션 하나하나가 메시지가 되는 외교 무대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정 관리다. 외교 현장에서 쉽게 관찰되는 ‘영혼 없는 미소’가 그 중 하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9년 북한에 의해 납치된 여성 기자들을 구하러 갈 때 ‘절대 웃지 말라’는 얘기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다. 그는 정치인 DNA를 잠시 내려놔야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미소와 대비되면서 참으로 어색한 역사의 한 컷이 나왔다. )
하지만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시진핑은 비교적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러시아 푸틴이나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 사우디 왕자 정도 만났을 때 비로소 밝게 웃는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 웃었다.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8.22-24,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방국들을 견제하는 정치 블럭으로 보이길 극도로 꺼리는 인도와 브라질의 회의적 반응으로 회원 확대를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시진핑의 정치적 승리로 마무리 됐다. 브릭스는 현재 5개국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인구의 42%와 국내총생산(GDP)의 23%, 교역량의 18%를 차지한다. 개도국 혹은 ‘글로벌 사우스’의 결집을 통해 G7, IMF, WB 등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서방 중심의 제도를 넘어서고자 하는 중국의 오랜 희망에 한 발 더 다가서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미국이 G7,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협정), 쿼드(Quad)에 이어 미-유럽 군사동맹 체제인 나토까지 중국 고립에 끌어들이자, 중국은 북·중·러 협력 강화는 물론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SCO), 중국+중앙아시아5개국 모임(2023.5월 최초 대면 정상회의) 등의 확대 및 강화로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국제 정치, 경제를 논의하는 광범위한 장으로 브릭스를 택한 시진핑은 연설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데 집착하는 몇몇 나라가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들을 마비시키려 한다”며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의 세계 영향력 확대를 위해 오늘 시작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모든 동료에게 확신시키고 싶다"며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 장면2 : 서방의 위선 그리고 헤징
개도국 단합의 8할은 서방국 위선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의 개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따르면 브릭스 가입을 공식 요청한 국가는 22개국, 비공식 국가까지 합하면 40여 개국에 달한다. 주로 중남미,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 국가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다. 이들은 왜 중국이 이끄는 블럭에 참여를 원할까? 중국이라는 국가의 폐쇄적 특성, 일대일로에서 보이는 ‘공산당의 자본 패권’ 등을 보면서도 ….
분명한 것은 선진국들의 위선과 이중잣대 그리고 헤징 전략 때문이다.
[이중잣대&위선] 미국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의 가치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도국들이 목격해온 건 미국의 이중잣대와 위선이다. 일례로 프리덤하우스가 ‘독재’ 국가로 분류한 50개국 가운데 35개국은 2021년 미국 정부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았다. 이른바 국제 규율을 어기고 핵무기을 개발한 인도에는 ‘평화로운 핵 이용’을 용인했지만, 북한에는 그렇지 않았다(2006). 코로나19가 세계를 멈춰 세울 때 백신은 미국 등 부자 국가들이 독차지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달갑지만은 않듯이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 서유럽 국가 역시 달갑지 않은 존재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열린 긴급 안보리 회의(2022.3)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기권’한 국가 총 35개 중 절반인 17개국이 아프리카였고 다른 아프리카 8개국은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갈증과 불만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개도국의 형님’들은 8월24일 브릭스-아프리카 아웃리치와 브릭스 플러스 대화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 50여 명 모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영원한 주변부로 취급받아온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준 것이다.(대규모 국제 행사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헤징] 강대국이 아닌 국가들은 어느 한편에 올인해 발을 묶어두기 보다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특정 상황에 ‘유연하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름 아닌 국익을 위해서다(외교의 본질이 국익이 아닌 동맹 추종이라 맹신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이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비판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무기지원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브릭스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바이든, 푸틴, 시진핑, 젤렌스키를 모두 만난 몇 안되는 정상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도 중국도 필요하다. 역으로 미중 역시 마찬가지다.
#. 장면 3 : 씬스틸러 사우디-이란
압도적인 장면은 역시 이란과 사우디의 ‘동시 등장’이다.
새로운 회원국이 된 6개국 가운데 3개국이 중동 국가라는 점보다 오랜 앙숙이던 이란과 사우디가 동시에 가입했다는 것은 국제정치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바이든 대통령 ‘뺨 때리기 시리즈’ 3탄 쯤으로 묘사될 장면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바이든은 공개 비난해오던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기 위해 직접 사우디를 찾았다. 원하는 것은 고유가 잡기였지만, 빈 살만은 푸틴과 손잡고 ‘석유 감산’을 합의하며 바이든의 뺨을 때렸다(격노한 바이든은 사우디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올해 3월 중국은 물과 기름 관계인 이란-사우디 관계정상화에 ‘중재자’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우디와 오랜 동맹 관계였던 미국은 오바마의 ‘Pivot to Asia’ 정책 이후 중동을 (슬금슬금)떠나 중국 견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사우디는 떠나가는 미국에 배신감을 차곡차곡 쌓고 있던 참이었다. 중국을 중재자로 택한 이유다. 바이든 뺨 때리기 2탄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란과 함께 중국의 품으로 안겼다. 3탄쯤으로 기록될 수 있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 2위의 가스 매장량과 중동 석유 매장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이란으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장면 4 : 달러와 이별할 결심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를 지키며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해 '소그룹'과 '소집단'에 반대해야 한다… 신개발은행(NDB)의 역할을 발휘해 국제 금융·통화 시스템을 개혁하고 개발도상국들의 대표성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
주어(브릭스)만 빼고 들으면 공산당 시진핑이 아닌, 민주당 바이든의 발언으로 착각할 만하다. 최근 몇 년간 다자주의, 국제헙력, WTO를 강조하는 이는 바이든이 아닌 시진핑이었다.
진정한 아이러니다.
브릭스 회원국들은 역내 통화를 적극 활용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심적 탈달러’ 상황을 현실로 만들고자 한다. 이것은 단지 중국만의 이슈가 아니다.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절대적 달러 의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시진핑은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 올해 들어 러시아, 사우디, 브라질 등과의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는 탈달러화 또한 이번 정상회의의 초점이었다고 보도했고, 남아공 라마포사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 지도자들이 각국 재무부·중앙은행에 자국 통화 기반 결제 수단 및 플랫폼의 출시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브릭스가 운영하는 신개발은행(NDB, 2015년)의 역할이 늘어나면 WB, IMF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는 복안이다.
<ING>는 최근 보고서(8/17)에서 “브릭스 그룹이 확장되면 브릭스 블록이 달러권 밖의 상업 및 금융 시스템을 채택하는 속도가 결정될 수 있다”면서도 “대체 통화의 사용 증가는 달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과 자본 흐름의 분절화 속에서 지역 통화 간의 경쟁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달러의 독보적인 위치는 견고하다고 전망했다.
#. 장면 5: 미국 ‘안 볼란다’
가장 가슴이 아픈 건 미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브릭스의 확장을 평가절하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릭스는 매우 다양한 국가로 구성돼 있어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의 지정학적 라이벌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무부 매튜 밀러 대변인은 "공동의 번영을 강화하고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양자, 다자, 지역 포럼에서 파트너 및 동맹국들과 계속해서 협력해겠다”고 밝혔다.
실제 브릭스의 잠재력을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의지는 있어도 각국의 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 대표적으로 정치 중립의 지존을 자처하는 인도와 브라질 등은 어느 한 쪽에 발을 담그길 원치 않는다. ‘비동맹' 인도네시아(GDP, 세계15위)가 가입 의향서를 제출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우디 역시 “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강한 신념을 공유한다(외무장관)”며 선을 그었다.(사우디는 미국을 놓치 않았다.)
무엇보다 인도와 중국의 불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국경 분쟁으로 유혈사태까지 종종 발생하는 두 국가는 사실 조우하기 어려운 ‘이웃'이다. 인도가 이번에 일부 국가의 가입에 조건부 찬성을 한 것도 6개국 가운데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5개국은 모두 인도와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그래서 우리는…?
외교에서 ‘변수’가 안되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현재 한국처럼. 반대로 어느 정도의 힘과 자기 목소리가 있을 때 양쪽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균형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을 때 나의 공간은 확대된다.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뜻이다.
2023년 여름,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아무도 없는 길의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이와, 적과도 손잡고 세력을 확장해가는 두 명의 정치인을 보고 있다.
호불호를 떠나 안타깝게도 승자는 정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