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 이름은 단지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일 뿐,
내 안에서 살아있는 ‘진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주변의 기대에 맞추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틀 안에 나를 맞추며 살았다.
그러던 중 한 시인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는 원래 ‘르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기에 부족했다. ‘르네’는 프랑스풍의 단어로 부드럽고 연약한 이미지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고독한 시간을 지내며 자신의 내면 세계를 깊게 탐구하던 그에게 이름을 다시 부르기로 한 것은 단순한 개명을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평소 그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던 그의 연인이자 정신적 멘토 루 살로메는 말했다.
“너는 소년에서 시인이 되어야 해. 이름도, 언어도, 삶도 새롭게 선택해야 해.”
그녀의 조언에 따라 그는 이름을 ‘라이너’로 바꾸었다. ‘라이너(Rainer)’는 독일식 이름으로, ‘르네’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자기 확신이 깃든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위대한 시인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순간이었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히 부르는 소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발견한 자아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릴케는 ‘라이너’라는 이름을 통해 이제는 타인의 그림자가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로 고독과 예술을 감당하는 삶을 선언한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내 안의 ‘진짜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마주하는 일이야말로, 내 이름을 새롭게 부르는 일이라는 것을...
릴케는 그의 시에서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들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들’이란 아마도 그의 존재를 마주하며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 나아가 자아 속 어둠과 불완전함까지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재창조의 시간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이제 세상에 흩뿌려진 내 삶의 조각들을 모아 내 안에 있는 진실한 나를 알아가고자 한다.
내가 걸어온 삶 속에는 밝음, 건강함, 아름다움, 사랑 뿐만 아니라 지극히 어둡고, 침울한 조각들이 공존한다.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예쁜 조각들만 모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내 회피하고 싶었던 나의 그림자마저 담담히, 그러나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내 존재의 어두운 시간들을 사랑하는’ 릴케의 심정으로 내 안의 어둠과 불완전함까지도 인정하며 나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시간을 마주할 것이다.
이제 내 이름은 더 이상 단순한 부름이 아니다.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소리이며, 내가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