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관찰록 <5>

사랑은 무겁다 무무도 그러하다 미키도

by 에버데이
20230901_143502.jpg 내가 '댄싱 무무' 라고 부르는 모먼트

(글 끝에 고양이 사진 2장)


오랜만입니다. 이 브런치 글을 읽어봐주실 분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지만요.

언젠간 이어서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은 사실 조금도 없었는데, 정말 순간의 변덕으로 갑자기 창을 켰습니다.

아마도 일기라든가, 심경의 토로를 쓰고 싶어서였겠지요.


하지만 이 시리즈의 제목은 <고양이 관찰록> 이니까 지금부터 또 합니다,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사랑의 절실함에 관하여 종종 생각하곤 한다.


너무 무거운가? 그래도 상관없다. 고양이들을 사랑할 때 나는 절박하다. 어떤 점에서 절박하냐면


1. 나는 연약한 인간이다.

2. 아이들은 나와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동물이다.


이 둘로 요약이 될 것 같다.


1. 나는 연약한 인간이다


이것이 나를 가장 두렵게 한다. 내가 고양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속삭이며 그들의 턱을 쓰다듬어도 나는 한낱 인간이다. 언제나 나는 이 아이들보다 힘이 세고, 몸집이 크며, 아이들을 덜렁 품에 안아들거나 사료를 언제 줄지를/얼마나 조절해서 급여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연약한 인간이란 말은, 나는 '바뀌는' (바뀔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뜻하며 더 정확히는 내가 앞으로 변화할 나에 관하여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살면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소홀해질까봐 두렵다. 그게 나의 몸을 일으킨다.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이 사랑에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서 가끔은 눈물을 벅벅 문지르면서도 고양이에게 밝은 목소리를 내고, 신난 것처럼 억지로 텐션을 올린 채 장난감 낚시대를 휘두른다.


사람에겐 외부로든, 내부로든 사정이 생기는 일이 정말 빈번하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잘못에 대한 면피가 될 순 없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내가 누군가를 보고 반려동물에 관해 책임감이 없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애정이 없고 무심하기 그지없다며 언짢게 여길 때 나는 경각심이 든다. 나 역시도, 당장 좀 잘하고 있다고 해서 나에 관하여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모든 건 한 순간이다. 한 순간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나의 힘겨움이 말도 못하고, 소통도 안 되는 고양이들에게 짜증 한 방울로 튀어버릴까봐 언제나 조심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랑에는 낭만만이 있지 않다.


이런 태도의 차원은 그래도 좀 가벼운 주제이지만, 고양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 지속적으로 케어하는 것이 인간의 다른 사정(노골적으로 말해서 금전, 시간,정신 건강)의 위태로움과 맞물리면 안타까운 사례들도 보이고,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사건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나는 내 책임의 무거움을 느낀다. 내가 책임을 슬그머니 망각하거나, '나도 살고봐야 해. 난 연약한 인간일 뿐인데.' 라고 말하면서 변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일, 그것이 내 과한 장엄하고 무거운 사랑을 부른다. 하지만 그정도로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약한 편이기에. 그 약함에 지지 않도록 나는 조금 더 무겁게 스스로를 규제(?) 하고 있다.


2. 아이들은 나와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동물이다.


사실상 1. 에 적은 것과 비슷한 말이다. 평생 내가 미키와 '아까 난 소리는 초인종 소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아 그래? 알겠어.' 라는 대화를 나눌 일이 있겠는가? 동물에 너무 많은 인간적 감정을 투영한다고 누가 말해도 나는 상관없다. 나는 내 고양이들에게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고 모든 일이 태평하고 느긋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시늉을 해준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그저 아가들이다. 나는 동물도 사람의 감정을 어느정도는 감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 슬프다, 같은 류는 아니겠지만 '평소와는 다르다' 정도는 알아챌 거라고 본다.


내가 평소보다 잠이 많아지면 미키는 잔소리하면서 나를 깨운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엎어져있으면 무무는 내 얼굴까지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린다. 고양이들이 우다다를 하면서 신나할 줄 아는 동물인 걸 내가 몇 년간 봐와서 아는데, 그들이 시무룩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아이들을 기세등등하게 해주고 싶다. 행복하다, 신난다, 안전하다 같은 감정들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해주고 싶다. 아기들이니까.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들이니까.


그래서 그냥 슬며시 밤중에 이마에 뽀뽀를 해주기도 하고,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를 찾아가 예쁘다, 예쁘다 하고 말을 건네주고 내 책상 앞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허공에 앞발만 휘휘적대도 어? 오늘 왜 이렇게 평소보다 귀여워! 하면서 호들갑도 떠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일정하게, 늘 계속되어서 뭐 동물병원에 가야한다든가, 갑자기 내가 '그 하얀 막대기' (심장사상충 예방약 애드보킷)를 들고 다가온다든가 하는 고양이들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 에 관해서는 너무 큰 번뇌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거다. 그런 일이 가끔 있어도 그것이 일상에 속하지 않는 극히 소수인 사건임을 고양이들이 느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사랑은 늘 경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사랑은 그렇다.


20231017_165156.jpg 미키
20230903_180432.jpg 나를 보고 있는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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