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이사 오는 도시가 아니다

철새와 시민이 함께 사는 정원도시 순천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순천으로 이사 온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와 꽃, 가로수로 둘러싸인 푸르른 풍경이었다. '정원도시'라는 이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이 도시에서는 일상이 증명한다.


하지만 순천의 매력은 단순히 초록이 많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자연을 장식으로 두지 않는다. 자연과 아주 가깝게, 때로는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회색 빌딩 속의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순천은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순천만국가정원이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관광지로 급부상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시를 찾는 건 사람들만이 아니다. 두루미,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 역시 해마다 순천을 찾아온다.

순천만습지 데크길.jpg


제주 역시 자연과 가까운 도시였다. 그러나 순천에 와서 새삼 느끼는 점은, 이 도시가 '자연을 품은 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천만습지의 광활한 데크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오천그린광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잔디 위를 걷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논다. 그 공간 한편에서는 청둥오리들이 유유히 노닌다. 자연과 인간이 애써 분리되지 않은 풍경이다.


오천 청둥.jpg
흑두루미.jpg


이 도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차를 몰고 조금만 벗어나면 마주하게 되는 들녘이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풍경을 쉽게 만난다. 행정구역의 경계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도시와 자연이 겹쳐지는 이 풍경이다.


오천그린광장.jpg

순천에서 보성 쪽으로 향하는 길, 드라이브 길에 창밖을 바라보면 논이 넓게 펼쳐진다. '여기가 아직도 순천일까?' 싶은 순간들이다. 제주에 살 때는 시골에서 밭과 돌담을 마주하곤 했다. 땅이 척박해 논농사가 어렵기에 볼 수 있는 제주의 풍경이었다. 순천으로 이사 오면서 바라보는 들녘의 모습, 물을 머금은 논의 풍경은 여전히 낯설고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자연스레 '논멍'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시간. 넓게 펼쳐진 논 위로 바람이 스치고, 그 풍경 속에서 다시 철새들을 만난다. 자연이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배경이자 주인공이 되는 순간들이다.


순천의 매력은 결국 '자연멍'이 가능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철새를 바라보며 잠시 멍해지고, 논과 습지를 바라보며 하루의 속도를 늦춘다, 회색 도시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일상의 중심에 놓인 자연. 그 자연이 주는 안정감과 감사함은 생각보다 크다.


정원도시 순천은 잘 가꾸어진 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연이 여전히 주인공으로 살아있는 도시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삶은 관광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오늘도 나는 이 도시에서 자연을 스쳐지나지 않고 잠시 멈춰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이전 15화제주에선 바다를, 순천에선 동천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