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민들과 가까이에 있는 동천
제주에 살 때, 주말의 낙은 늘 제주 한 바퀴를 도는 일이었다. 집이 있는 시내뿐 아니라 서귀포, 애월, 대정, 성산, 표선까지. 구석구석을 돌며 풍경을 보고, 시골에 새로 생긴 카페에 들르고, 바다를 보고, 그냥 달리는 시간이 좋았다.
제주도는 어느 지역이 됐든 내 삶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늘 가까이에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조금만 나가면 바다였고, 일을 하다가도 10분만 차를 몰면 해안도로에 닿을 수 있었다. 차 안에 책 한 권을 가져 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몇 장을 읽고, 커피 한 잔으로 숨을 고른 뒤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삶. 그 일상이 꽤 마음에 들었다.
순천으로 오면서 이런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정원 도시'라는 이름답게 순천에서의 삶 역시 자연을 품은 로망이 늘 내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풍경은 전혀 달랐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제주에서 바다를 봤다면, 이곳에서는 강을 본다.
넓게 흐르는 동천.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동천 강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짧고 선명한 바다가 아니라, 천천히 이어지는 흐름 같은 풍경이다.
동천을 알게 된 건 아이 덕분이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강을 조금씩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동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순천에서 정말 좋은 곳을 찾았어. 아이들이랑 자전거 라이딩하기 딱 좋은 곳이야."
순천 구석구석을 다니며 일을 해 온 남편의 눈을 가장 사로잡은 건 동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었다.
정원 도시로 유명한 순천. 순천만국가정원은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대표 공간이지만, 순천 시민들에게는 일상 가까이에 있는 동천이 더 정감 가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동천은 순천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하천이다. 하지만 순천 사람들은 이 물길을 그저 '하천'이라 부르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강처럼 살아가는 공간이다.
동천은 시민들 곁에서 가장 가까이에 함께 흐르는 순천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서도 쉽게 닿을 수 있고, 차량 통행이 제한된 구간에서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탄다. 금연구역으로 관리되고, 반려견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가끔은 멍하니 서서 상상 속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멀리 산이 보이고, 자연 사이로 동천이 흐르는 이 자리에서 풍류를 즐기던 옛사람들의 모습. 시를 읊고, 음악 소리가 흐르던 개발되지 않은 옛 풍경이 겹쳐 보인다. 아마도 이런 점이 동천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제주에 살 때 나는 늘 한강을 동경했다. 뉴스와 드라마 속 한강, 도시락을 먹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바다를 곁에 두고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시의 강을 조금 부러워했던 셈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동천이 있다. 걸어서 갈 수 있고, 자전거로 함께할 수 있는 강. 도시락을 싸 들고 가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다.
제주에서는 해안도로를 찾았다면, 순천에서는 자연스럽게 동천으로 향한다.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 하는 사람들, 러닝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잠시 걷다가 강을 바라본다.
각자의 속도로, 같은 풍경을 공유한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공간의 가치가 있다. 제주가 그랬고, 지금의 순천, 그리고 동천도 그렇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