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 파레트들의 변신

잡초와의 전쟁, 남편의 나무 데크 만들기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남편의 시골 놀이터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2022년 10월, 우리는 작은 결심 하나로 땅을 샀다. 그 땅은 전라남도 보성에 있었고, 우리는 제주에 살았다. 그래서 주말마다 배를 타고 육지로 건너가야 했다. 그에게 그 땅은 단순한 '시골 땅'이 아니었다. 망치와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돌을 옮기며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힘들어도 이상하게 이게 좋더라."


남편은 늘 그렇게 말했다. 만들 때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진다고 했다. 만드는 그 과정 자체가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과정이었고, 그에게 그곳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쉼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주에서 육지로 오가며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시골 땅과 가까운 순천으로 2023년 이사를 왔다. 이제 차로 한 시간 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련기사 : 제주의 '미친 집값'... 토박이 부부도 탈출했습니다]


잡초와의 전쟁을 벌이는 시골땅


하지만 육지 생활은 생각보다 팍팍했다. 생계를 꾸려야 했고 하루하루가 빠듯했다. 그 사이 땅은 잡초로 뒤덮였다. 풀을 베는 일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가면 그곳은 언제나 풀로 가득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남편의 키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란 잡초들. 어느새 우리의 손길이 닿지 못한 시간만큼 자라 있었다. 그 잡초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럴 때마다 고맙게도 '옆집 형님'이 포크레인을 몰고 와 도와주셨다. 이번 추석 무렵에도 그랬다.


"이거, 또 이렇게 됐네."


형님은 그렇게 말하며 잡초를 밀어냈고, 그 덕분에 한동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또 흘렀고, 풀은 다시 자라났다.


"이걸 어쩌지? 매번 와서 손질할 수도 없고..."


풀과의 싸움은 끝이 없었다. 트럭으로 왔다 갔다 하며 잡초를 죽여보기도 했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언제 또 오게 될지도 모르는 형편에 매번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기엔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턱없이 부족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남편이 내놓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무 데크를 깔자."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데크를 만들려면 꽤 많은 나무가 필요했고, 그만큼의 재료비도 만만치 않았다. 생계를 꾸려가며 그 돈을 투자하기엔 현실의 벽이 높았다. 그러던 중 남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중고거래 앱에서 종종 올라오는 '무료 파레트 나눔'.


"이거다!"


그는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말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매일같이 중고거래 앱을 열었다.


"오늘은 나오겠지. 오늘은 꼭 하나 뜨겠지?"


매일같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 날 나무 파레트(물류 현장에서 화물을 적재·운반·보관할 때 사용하는 목재 깔판)를 무료로 나눔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남편은 주저하지 않았다. 트럭 열쇠를 들고 단숨에 달려갔다. 창고 한켠에는 크고 작은 나무 파레트 더미가 쌓여 있었다. 낡은 것도 있었지만 아직 쓸 만한 것들이 훨씬 많았다.


"이걸로 해보자."


그는 그렇게 말하며 트럭 짐칸에 나무 파레트를 실었다. 오랜만에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 나무들은 대부분 공장이나 물류창고에서 버려진 것들이었다. 불태워 없애거나, 방치되어 썩어가게 될 것들. 그 버려진 나무 파레트들을 모아 새롭게 데크로 다시 살려내는 일은 남편에게 단순한 '만들기'가 아니라 일종의 '되살리기'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남편의 나무 데크 만들기


IE003540155_STD.jpg

▲나무 파레트 되살리기파레트의 나무를 다시 하나하나 떼어 내고, 박혀 있던 못을 정리하고, 다시 나무들을 이용해 짜 맞추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고 몸도 고됐다. ⓒ 이효진


파레트의 나무를 다시 하나하나 떼어 내고, 박혀 있던 못을 정리하고, 다시 나무들을 이용해 짜 맞추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고 몸도 고됐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이 나무들도 다 버려질 뻔했는데, 이렇게 다시 쓰이잖아."


남편의 그 말에 묘한 울림이 있었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한동안 자신을 잃었던 그였지만 이 나무 파레트 덕분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 파레트 한 장 한 장을 다듬고 못을 정리하는 그 손 끝에는 마치 지난 세월의 실패와 좌절을 함께 벗겨내는 힘이 있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던 시절, 그는 자주 말했다.


"나는 왜 이럴까..."


하지만 버려진 나무 파레트가 바닥 데크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조금씩 달라졌다.


"공짜라서 더 고맙다. 다 버려진 나무들이지만, 다시 쓸 수 있잖아. 나도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어."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에게 그 나무 파레트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증거,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낡고 금 간 나무처럼 깎고 다듬으면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지난 25일 다시 시골땅을 찾았다. 여전히 남편의 나무 데크 만들기는 진행 중이다.


"그거 언제 다 해?"


내 물음에 그는 웃었다.


"글쎄, 모르지. 근데... 이게 좋잖아."


그의 말투에는 이상하리만큼 여유가 묻어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는 땅을, 나무 파레트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다.


IE003540160_STD.jpg

▲파레트 데크누군가에게는 처치 곤란의 나무였지만, 남편에게는 새로운 삶의 재료였고,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폐자재였지만, 그에게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었다. ⓒ 이효진


데크가 조금씩 완성되어갔다. 나무들이 퍼즐처럼 맞춰졌고, 그 위에는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남편은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이 올라가자 댓글들이 이어졌다.


"저는 이런 파레트를 돈 주고 버렸는데, 멋지게 재탄생시키네요. 보면서 늘 배우고 갑니다."


그 한 줄 한 줄의 댓글이 남편의 피로를 녹였다. 누군가에게는 처치 곤란의 나무였지만, 남편에게는 새로운 삶의 재료였고,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폐자재였지만, 그에게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었다.


이제 시골 땅은 더 이상 잡초와의 전쟁터가 아니다. 남편은 데크가 완성되면, 불멍과 물멍이 있는 쉼터이자,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작은 놀이터로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남편이 만든 것은 단지 나무 데크가 아니라고. 그건 다시 살아가는 용기 그 자체라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생존을 위한 공간이 아닌 취향을 위한 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