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증명했다

천천히 스며드는 이야기의 힘, 나는 그 힘을 믿는다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영화는 증명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4월, 뒤늦게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화제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이미 수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그 열풍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끌어올렸을까?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영화는 조선시대 어린 왕 단종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를 떠난 그는 강원도 영월의 낯선 유배지, 청령포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 영화는 유배지에서의 소소한 일상, 그 안에서 오가는 마음에 집중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밥상'이었다. 왕은 처음에 밥을 거부한다. 삶을 놓아버린 듯, 스스로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식사를 거부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각자의 형편 속에서 재료를 구해오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왕에게 내어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은 좀 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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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밥상’이었다. ⓒ (주)쇼박스관련사진보기


이 장면은 단순한 식사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한 끼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한 끼일 수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몫을 내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촌장의 아들 태산이가 왕에게 건네는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속에서도 서로를 살피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왕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항준 감독이 출연한 인터뷰 영상들 내용을 찾아보면서 알게 됐는데, 감독은 처음 이 작품의 연출 제안을 고사했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 OTT 중심으로 재편된 환경 속에서 극장 산업은 이미 위축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결말이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시나리오에는 계유정난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빠져 있었다. 대신 유배지에서의 잔잔한 일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된 이야기였다.


"이걸로 과연 사람들이 극장을 찾을까?"


그의 고민은 현실적이었다.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에 익숙해진 시대에서 소소한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영화로 다시 극장을 살려봅시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이 영화는 수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극장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임을 증명해냈다. OTT가 일상이 된 시대에도, 이 영화는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모았다. 큰 화면과 깊은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영화를 경험하는 그 공간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그 이유가 오히려 영화의 스토리가 '자극보다는 우리 삶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후반부에는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단종의 왕위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등장하며 긴장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중심은 끝까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삶의 결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히 자극적인 이야기에 지쳐 있는지도 모른다. 빠르고 강한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놓치고 있었던 것,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가 보여준 것은 결국 '관계'였다. 왕과 촌장, 왕과 백성이라는 신분을 넘어, 서로를 살피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웃음과 온기. 그것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난 4월에 출간된 내가 쓴 동화 『찍혔어, 내 양심』 역시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인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한 아이, 그리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진심으로 사과하려 애쓰는 과정.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어쩌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사실 이 이야기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더해져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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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사실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자극적이고 강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런 잔잔한 이야기는 잘 팔리지 않는다"


아이들을 향한 동화마저도,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는 잔잔한 이야기에는 손을 잡아주는 곳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이야기에 목말라 있을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관련 글을 <오마이뉴스> 기사에 올렸을 때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동화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영화가 극장을 살려냈듯, 나는 이야기의 힘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자극적인 이야기만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남는 것은,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위해 차려낸 밥상,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것을 증명해냈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본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영상이 중심이 되는 시대 속에서 영상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자극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끝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지금, 책은 여전히 '넘겨야' 하고, '머물러야' 하고, '생각해야' 하는 매체다. 그래서 더 번거롭고, 그래서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다시 극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듯, 출판 역시 사람의 마음을 채울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 방식은 이전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의 출판 시장은 어쩌면 또 하나의 공식에 기대고 있다. 내가 쓰고 있는 동화만 해도 그렇다. 아이들이 좋아할 이야기라면, 판타지여야 하고, 특별한 세계여야 하고,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등장해야 한다는 공식. 물론 그런 이야기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틈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을 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활동화. 아이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 학교에서 친구와 부딪히고, 가족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이야기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동화 속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조금 더 특별한 설정, 조금 더 자극적인 이야기에 주목해왔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나는 그것을 현실 동화라고 부르고 싶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그 현실, 그 안에서 아이가 겪는 감정과 선택, 그리고 관계의 이야기.


동화 속 아이의 이야기가 어느 날 내 이야기가 되고, 내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때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남는다. 나는 그런 동화를 쓰고 싶다. 아이들이 잠깐 빠져들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자신의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


현실은 때로는 판타지보다 더 깊고,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앞으로 더 많은 '현실을 담은 동화'들이 아이들뿐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어른들에게도 오래 사랑받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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