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시선과 아이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살아온 나에게 드디어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다. 동화작가.
드디어 책이 나왔고 내 이름 앞에는 '동화작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타이틀 하나를 얻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하고, 그 이후에는 출판사의 수많은 과정들이 이어졌다. 그림작가를 섭외하고, 디자인을 하고, 교정과 교열을 거치는 시간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야 온전히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그 과정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었다. 방송작가로 살아오던 나는 늘 바깥을 향해 있었다. 뉴스를 챙겨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장을 돌아다니고, 영화관을 찾고,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뒤적이고, SNS를 살피며 사람들의 흐름을 읽는 삶. 그것이 나의 일이었고, 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동화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나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순간에 멈추는지,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 놓인 텀블러를 보면서도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너는 하루 종일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니?"
동화 속 주인공들은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을 나눌 때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로 할까?"
사람이 아닌 존재들. 말하지 않는 것들.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운영하는 무인 가게 안에서 CCTV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늘 켜져 있는 카메라.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존재.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카메라가 말을 한다면?"
"저 카메라가 생각을 한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응원한다면?"
그 순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무인 가게라는 공간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양심이 시험에 들기 쉬운 곳이다.
"설마 들키겠어?" 이 한마디가 아이들을, 그리고 어른들을 순간의 선택으로 이끌기도 한다. 나는 그 공간을 카메라라는 존재와 연결 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가게 안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리며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어 나갔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글이어서인지 글은 생각보다 빠르게 써 내려갔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 이야기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획이 참신합니다. 카메라가 말을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그 말은 참 반가웠다. 하지만 이어진 피드백은 더 값졌다.
"사건이 조금 단조로운데, 캐릭터를 한 명 더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더 깊게 만들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 '승익'이였다. 민수와 함께 등장하지만, 민수와는 다른 결을 가진 아이. 훔칠 마음은 없었지만 친구의 행동에 이끌려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아이. 이 인물은 책 안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누군가의 행동에 이끌려 그저 따라가 버리는 순간들. 그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이야기 속에 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 한 인물의 추가는 이야기의 깊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좋은 피드백은 작가를 성장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그 제안을 해주신 편집자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아쉽게도 그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긴 여정 끝에 정인출판사를 통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 내가 지었던 제목은 <카메라야, 카메라야, 누가 양심을 훔쳤니?> 였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조금 더 간결하고 직관적인 제목을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목이 <찍혔어, 내 양심>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종종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양심을 놓치곤 한다. 특히 무인 가게처럼 누군가의 시선이 없는 공간에서는 그 유혹이 더 커진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나는 동화를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보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카메라만이 아니다. 길가의 나무, 흘러가는 구름, 횡단보도 앞의 신호등. 나는 가끔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카메라다. 누구도 끌 수 없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카메라. 바로 '양심'이다.
나는 아이들이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보지 않아도, 들키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리 안의 카메라는 늘 켜져 있다는 것. 그 카메라는 우리의 선택을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작은 기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