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TV 드라마가 생겼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방영했던 드라마입니다. 아마 종영된 지도 무려 32년쯤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선 누가 봐도 질색인 나이 많고 키까지 작은 데다 추남인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드디어 백 번째 선을 본 날, 감히 그가 올려다볼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납니다. 네, 맞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는 그 절세 미녀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백 번째의 그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던 그녀가 백 한 번째의 프로포즈를 한 셈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프로포즈하기 전 눈물을 글썽이며, 어떻게 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그 특유의 못생긴 얼굴에 자글자글한 눈가의 주름을 짓고는 흰 이까지 드러내며 말합니다. 당신이니까요,라고 말입니다.
원래 이런저런 이유들이 많으면 그 진정성이 훼손되기 마련입니다. 왜 나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당신이니까,라고 말한다면 그걸로 족한 것입니다.
글이라는 게 절세 미녀나 미남이 아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누군가가 제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단 한 마디의 답변만 있으면 되는 것이아닐까 생각됩니다.
왜, 글을 쓰세요? 좋으니까요.
이것 외에 구구절절한 그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이유가 거창하다고 해서 우리가 더 나은 글을 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 글을 쓰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거나 더 끈기 있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글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한때는 저도 누군가가 물으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그땐 분명히 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사뭇 진지하게 말입니다.
왜, 글을 쓰세요? 글을 통해 우선은 저를 치유하고, 그다음은 제 글을 읽은 누군가가 치유받았으면 해서요.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라고 말입니다.오히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겠다는 이유가 거창할수록 글쓰기를 오래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우린 뭔가 그럴싸한 해결책을 찾지만, 의외로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해답인 경우가 많습니다.마찬가지의 논리로 글을 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저 좋기 때문'이라야 합니다. 그것 하나면 충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