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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23. 2023

가족과 식구

열일곱 번째 글: 나는 가족일까, 식구일까?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 대전제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바로 부부가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가족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키면 될 것 같다.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공동체, 이들이 곧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입양한 구성원도 가족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혼인과 혈연 그리고 입양에 의해 맺어진 구성원들은 모두가 가족이 된다. 사실상 이 외에 가족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다.

이와는 달리 가족과 그 개념이 유사한 것으로, 식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얼핏 들으면 가족이나 식구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에게 내 아내를 가족으로 소개하든 식구로 소개하든 의미에선 별 차이 없이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식구는 엄연히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다. 앞에서 말했듯, 혼인과 혈연, 그리고 입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전제되어야 가족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반면, 식구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사전적인 정의로 본다면, 식구는 같은 집에서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또 한 단체나 기관에 속해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식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적인 예를 들어 내 친구의 아이를 형편상 일정 기간 동안 집에 데리고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얼마의 기간을 살든 내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이럴 때 우린 이 아이를 식구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간혹 특정 집단에서 구성원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강조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어떤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는 걸 보곤 한다. 또, 종종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교육정보시스템을 통해 보내는 도교육감의 서한을 보면 '존경하는 경북 교육 가족 여러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두 가지 경우 모두 잘못된 표현을 쓰고 있다. 이 경우에 제대로 된 표현을 사용하려면 가족이 아니라 식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한 학교에서 같은 밥을 먹고 생활하고 있으니 엄연히 식구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구는 그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지만, 가족은 꽤 까다로운 몇 가지 조건(혼인, 혈연, 입양)이 충족되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나는 적어도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는 식구가 되는 셈이다.


집집마다 가족이 존재한다. 어쩌면 한 집에는 최소한 하나의 가족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정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심정적으로도 집집마다 가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나는 과연 우리 집에서 다른 구성원들(아내, 아들, 딸)과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당당하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표면적으로는 가족이라 생각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가족이 아니라 식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을 잠시 빌려 표현하자면,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그런데 과연 그게 그러한가?

식구가 확장되더라도 가족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 있다면 밥을 같이 먹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혼인을 한다거나 입양을 했을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이 반대는 분명 성립하는 것 같다. 가족이었지만 식구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형태상으로 보면 분명 가족이지만, 모든 것을 따로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물론 그런 속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엄연히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모든 활동은 따로따로 한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남편은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충실하게 집안일을 한다. 혹은 맞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에게 정해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결코 상대방의 영역을 넘나들진 못한다. 이들은 모든 말과 행동을 따로 하면서도 딱 한 가지 일만 같이 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같이 식사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가족인가, 식구인가?


문득 나는 가족인지 식구인지 몹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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