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광경
사백 쉰여덟 번째 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요.
제가 애타게 찾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어디를 뒤져 봐도 품절에, 심지어 절판까지 뜨니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인터넷 서점을 뒤져 봅니다. 없을 거라는 걸 익히 알고 있지만, 미련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볼 일이 있어서 동성로에 갈 때면 알라딘 중고 서점 대구동성로점에 들르곤 합니다.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는 우주점과 일반 회원들이 직접 거래하는 중고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주점은 많이 이용해 봤지만, 일반 회원 직거래 중고 매장은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책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주점은 최신간을 기준으로 정가의 70% 선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일반 회원 직거래 중고 매장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특히 저처럼 찾는 책이 절판까지 되어 버리면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가장 심한 경우엔 3만 원짜리 책이 15만 원에 거래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절판이라는 상황을 악용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가끔 제가 찾는 책이 우주점엔 없어도 회원 직거래 매장에 올라와 있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일반 회원 직거래 중고 매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원가보다 더 비싸거나 족히 두 배가 넘는 그 돈을 주고 살 바엔 차라리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책 전체를 복사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속는 셈 치고 알라딘 중고 매장 대구동성로점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 책이 당연히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오프라인 중고 매장인 우주점에 입고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도 헛걸음을 했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일단 발간 연도가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긴 하나, 책마다 중고매매가가 다른 일반적인 책들과는 달리 2천 원이란 균일가에 판매하는 책들이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한 권당 2천 원에 살 수 있다면 으레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저자들, 그리고 역시 금시초문인 책 제목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리 헐값이고, 거저나 다름없다고 해도 몇 권을 뒤적거려 보니 솔직히 그냥 준다고 해도 가져갈까 말까 한 책들 뿐이었습니다.
역시 턱없이 싼 건 이유가 있구나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책들이 제 발길을 붙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제발 한 번만 더 보고 가라며 애원의 눈길을 보내는 듯했습니다. 순간, 저 싸구려에도 팔리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흉물이나 다름없는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마음이 아팠다는 표현이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책들의 작가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들도 분명히 큰 뜻을 품고 출간했을 게 분명합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출판사의 안목과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한때는 충분히 가치가 있던 책이었을 겁니다. 속칭 대박 나기를 간절히 바랐을 테고, 저 책들의 출간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위치로 도약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실상이 저러했습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한 번 쓱 보고는 그냥 지나칩니다. 매장 내에서 가장 한산한 코너가 되어 버린 저 서가에서 수많은 작가들의 꿈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군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개, 출간이 그들의 일종의 로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제가 그 언젠가 출간을 했는데, 저렇게 흉물로 전락한 채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가기를 바라는 책이 되고 만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도 미래의 제 모습이 겹쳐진 나머지 마음이 아팠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