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잘될 때 더 힘들었던 순간들

by 전장의서가


치킨집이 갑자기 잘될 때

장사가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사장이 되고 보니, 진짜 버거운 순간은 꼭 장사가 안 될 때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고 없이 잘될 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몰려오는 주문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치킨집을 하다 보면 가끔 예상 밖의 주문 폭주를 만난다. 그건 축복이면서 동시에 시험이다. 초보 사장이었던 내게는 특히 그랬다.

관공서 단체 주문, 감사하지만 벅찼던 오전

가게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관공서가 하나 있었다. 평소엔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날 오전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주말 근무자를 위한 단체 주문이었다. 치킨 30마리.

시간을 듣고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주문이었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혼자 근무하는 날이었고, 아직 숙련도도 한참 부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감사함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제시간에 해낼 수 있을까, 온도는 괜찮을까, 실수는 없을까.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미리 움직이는 것.

12시 납품을 맞추기 위해 오전 9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튀김기 예열부터 시작해서 닭 손질, 밑작업, 포장 순서까지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회사 다닐 때 하던 프로젝트 일정 관리가 이런 데서 쓰일 줄은 몰랐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정신없이 만들고, 포장하고, 다시 확인했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출발했고, 주문은 무사히 전달됐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큰 클레임은 없었지만, 예상대로 치킨 온도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오전 단체 주문의 한계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단체 주문 시간대와 수량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월드컵 예선전, 진짜 폭주는 이런 거였다

정말 놀랐던 건 월드컵 축구 예선전이었다.

경기 시작은 밤 10시. 경험 없는 나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8시를 넘기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주문 알림이 한 건씩 울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연속으로 울렸다. 배달 앱 화면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주문 리스트가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치킨집 대목’이구나 싶었다.

문제는 준비였다. 그날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튀김기는 풀가동 상태였고, 포장 공간은 점점 비좁아졌다.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배달 기사와의 소통도 동시에 해야 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힘든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가게가 선택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런 폭주는 늘 대가를 남긴다. 조리 속도는 떨어지고, 실수 확률은 올라간다. 그날 이후 나는 스포츠 경기 일정과 매출의 상관관계를 엑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는 결국 데이터로 버텨야 한다는 걸 그날 배웠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행사, 행복한 전쟁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행사 주문이었다.

행사 전날이나 당일 아침, 단체 주문 전화가 온다. 아이들 소풍이나 학예회 뒤풀이용 치킨이다. 양은 많고, 시간은 정해져 있다.

이 주문들은 유독 마음이 복잡하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기름 상태, 염도, 조리 시간 하나하나 더 신경 쓰게 된다.

그날은 정말 전쟁 같았다. 계속 튀기고, 계속 닦고, 계속 포장했다.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이 가게가 누군가의 작은 축제에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잘될 때 무너지는 초보 사장

이런 경험들을 겪으며 깨달았다. 초보 사장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장사가 잘될 때일지도 모른다.

잘되면 사람을 더 써야 하고, 재고를 늘려야 하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되기 시작하면, 모든 부담이 사장 혼자에게 쏟아진다.

회사에서는 일이 몰리면 팀이 나눠서 버텼다. 자영업에서는 그 팀이 바로 나였다.

그때의 나는 매출 그래프보다 체력 그래프가 더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들은 지금 생각하면 값비싼 수업료였다. 치킨집이 언제 웃고, 언제 폭주하는지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이 폭주 뒤에 찾아온 고요와 피로, 그리고 혼자 가게를 지키는 시간에 대해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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