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글짓기와 거짓말

by 징졔


1967년 3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운동장에서 진행한 며칠의 적응기간 마지막 날, 끝까지 자기소개를 하지 못해 훌쩍거린 우리 반의 유일한 아이가 나였다. 생일이 11월이라 또래들보다 좀 늦되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나의 경상도 사투리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국민학교 입학 직전까지 남부의 M시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울며 떼만 쓰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알았던 어리숙한 아이였다. 담임 선생님은 꽤나 골치 아픈 아이 하나가 자기 반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내 기억에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일요일에도 출근하시던 아빠가 유일하게 맘 편하게 회사에 가지 않거나 늦게 가신 날이었다. 며칠간 계속 동생 둘(당시 막내 동생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을 업고 걸리고 하면서 학교에 따라 오셨던 엄마와 함께 처음 학교에 오신 아빠께 보여드린 내 선물이 바로 그 장면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아빠는 내 딸이라면 그럴 리 없다고 혼잣말을 하셨다. 어깨 위로 내리쬐는 햇볕은 겨울 겉옷을 거추장스럽게 했고, 발밑의 울퉁불퉁 언 땅이 조금씩 녹아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시작한 공부는 재미있었다. 하교하면 점심도 먹기 전에 엎드려 숙제부터 했다. 그때의 숙제는 선긋기, 동그라미·세모·네모 같은 도형 그리기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글자를 익히면서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말 읽고 쓰기를 배우면서 공부에 눈을 뜬 것이다. 처음 100점을 받았을 때 담임 선생님은 너무 감격하셔서 반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게 하셨고, 나는 창피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싫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짧은 글짓기 숙제 같은 것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내가 쓴 동시가 지방의 작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은 가끔 내 일기나 짧은 글짓기 숙제를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차츰 원고지에 긴 글짓기를 시작했다. 5학년 때는 글짓기 특별활동 반에 들었고, 글짓기 반 선생님은 나의 재능을 알아주셨다. 내 장래 희망이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선생님은 살짝 실망하기도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즈음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반항으로 꽉 차 있는 내 마음을, 이유 없이 아득하고 슬프고 꼭 죽고 싶기만 했던 그 마음을 꼭꼭 닫고 있었다.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가 다 읽게 되는 그런 학교 글짓기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져갔으며, 숙제로 제출해야 하는 일기는 틀에 박힌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멍하게 공상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내 마음 속 깊이 지어진 글들은 세상 밖에 나오지 못했다.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첫 글짓기 특활반 수업에서 선생님은 여름방학 때 있었던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글짓기를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난 그해 여름방학 동안 기억에 남길만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가족과의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친구를 찾지도 않았으며, 방학 숙제도 대충 해치워 버린 채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공상을 하거나 집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치웠다. 아빠가 1학기 성적 포상으로 사주신 계몽사 문학전집 50권과 심지어 2학기 교과서까지 말이다.


글짓기 숙제를 하기 위해 원고지를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글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짓을 꾸며대기로 한다. 여름방학 기간 부모님께서 작은아버지 내외분과 할머니를 모시고 속리산에 다녀오셨는데, 거기에 내가 동행한 것으로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속리산 다녀오신 이야기는 익히 들었고 사진도 보았으니 이야기 꾸미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아 글이 제대로 엮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선생님께서는 내 글짓기 숙제를 대대적으로 칭찬하시면서 심지어 몇 군데 손 좀 보면 정말 좋은 글이 될 것이라고 흥분까지 하셨다.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더 쌓여갔다. 내가 거짓을 지어낸다는 것에 그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결벽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그때였던 것 같다. 심장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고, 세상에서 격리되어 어디론가 꺼져버리고 싶은 암울한 기분에 죽고 싶었다. 난 엉뚱하게도 사람 좋게 생긴 그 순진한 글짓기 특활반 선생님이 싫어지기 시작했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온갖 핑계를 대면서 글짓기 반 활동을 그만두었다.


만약 내가 그때 ‘사실 내 글짓기는 나의 솔직한 경험이 아니라 내가 상상해 지어낸 이야기였다’고 선생님께 고백했더라면 어땠을까? 선생님은 상상으로 이야기를 지어낸 어린아이의 글 솜씨를 칭찬하셨을까? 아니면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쓰라는 글짓기 숙제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실망하고 질책하셨을까?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로 억지로 하는 학교 숙제가 아니면 글을 지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고, 남몰래 쓰는 낙서 같은 일기는 족족 없애버렸다. 마음을 짓는 일과 글을 짓는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 하고 싶었던 역사 공부에 아침저녁으로 매달리게 된다. 하루는 아들 녀석이 ‘엄마는 역사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때?’하고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마 흰머리 성성한 늙은 나이에 새롭게 공부하느라 끙끙거리는 엄마가 안쓰럽고 기특해 나름 고민하고 배려해서 생각해낸 것이리라.


역사 소설? 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장르인가? 난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는 어른들 틈에 턱 받치고 앉아서 집안 이야기 듣는 것이 좋았고, 글을 익히고 나서부터는 만화책, 동화책, 성인잡지, 고전 문학작품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읽어치웠고, 드라마나 영화 보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아깝지 않았다. 스스로 스토리 홀릭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좋아하는 역사에, 좋아하는 이야기. 그래, 바로 이거야. 내 인생 후반기에 미칠 듯이 몰두할 수 있는 필생의 작업이 여기 있었구나 하고 환호성을 울리던 그 순간 나는 바로 절망에 빠져들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허구, 즉 사실이 아닌 거짓을 꾸민다는 것 아닌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 또한 빈곤하기 짝이 없다는 비참한 현실은 차치하고, 난 무엇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 위에 얹어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주가 없었다. 이야기를 짓는 재주는 타고 태어나는 재능 같은 것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과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지어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그 환상적인 공간은 내 것일 수 없었다.


‘엄마는 그런 구라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네요’라고 아들에게 아주 쿨하게 한 마디 던지고 바로 단념했다. 드라마를 보며 뒤에 이어질 스토리를 정확하게 예상하고, 또 나름 비평도 해대는 나에게 ‘당신 드라마 작가해도 되겠네’라고 감탄 아닌 감탄을 하는 남편을 진하게 째려보는 것으로 사소한 속 풀이를 하면서 말이다. 스토리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도 스토리는 전혀 지어내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맹목적인 스토리 소비자일 뿐인 것이다.


역사 공부를 하고 공부한 것을 정리해 천천히 글로 엮어가면서 몇 년 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엮으면서도 백과사전류, 예를 들면 지식백과, 위키피디아, 중국 바이두 백과에 나온 객관적 사실까지도 때론 크로스 체크하지 않으면 뭔가 개운하지 않는 등 강박증에 시달릴 때가 많다. 무슨 학술적인 논문도 아닌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겠다면서 글의 재미를 위한 양념도 칠 줄 모른다. 그러니 글이 별로 재미가 없다. 글짓기엔 영 젬병인 것이다.


그럭저럭 몇 년 간 역사 글쓰기 작업을 하다 보니 글쓰기에 조금 유연해진 면도 있고, 블로그 이웃들에게 댓글을 달고, 또 브런치 같은 글쓰기 통로도 알게 되면서 뭔가 나도 신변 이야기를 재미있게 글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내 경험이나 내 마음의 파동을 철저히 내 비밀영역에만 꽁꽁 가둬두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신변 이야기는 거짓을 지어낼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살면서 저절로 지어진 내 마음이 이제 너무 무거워 살짝 그 문을 열어놓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무렵 남편이 은근슬쩍 부탁인지 제안인지 ‘여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지 글로 한 번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 한 마디 툭 던졌다. 남편은 스윗한 분위기엔 서툴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농담 아닐까 싶어, ‘왜? 당신이 한 번 써보지 그래’라고 되돌려 주었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이 쓴 걸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그래. 우리가 그때 어땠는지…’라고 진심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난 남편과 나의 사랑을 특별한 서사가 없는 너무 평범한 삶의 일부분처럼 여겨왔기 때문에 쓸 만한 것이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좀 해서 부탁이나 요구를 하지 않는 남편의 제안인지라 며칠 끙끙거리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글로 재현해 보았고, ‘처음 만난 날 39주년 기념일’에 남편에게 선물로 주었다.


글을 쓰면서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흑백으로 침전되어 있던 내 과거와 추억에 생동감이란 색이 입혀지는 것이 아닌가? 그냥 아득한 기억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고 말 삶의 단편 하나하나를 꺼내 글로 펼쳐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래서이다. 꾸미지 않고 부풀리지 않고 지어내지 않은 진솔한 나의 이야기를 가장 평이한 일상의 언어로 담담하게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