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by 징졔

3월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후 학부 강의가 한 시간 있고, 이어 대학원 석·박사 통합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풋내 나는 대학 시간강사 두 학기 째였던 나는 노련한 교수처럼 보이고 싶어 좀 쌀쌀했지만 원숙한 봄 정장을 차려입었다. 짙은 진달래 색 블라우스에 감색 투피스였다.


첫날이라 인사와 강의 소개 정도만으로 간단하게 학부 수업을 끝내고 곧장 대학원 수업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일찍 수업 장소에 가서 아무도 없을 때 눈 좀 붙이고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원 공부에 짙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슬금슬금 나를 담금질하기 시작하던 소위 ‘사회생활’에 대한 혐오로 조금씩 질식당해 가는 기분이었다.


대학원 수업 장소는 긴 테이블이 중간에 있고 양쪽으로 소파 같은 의자가 길게 놓인 곳으로 토론하기 적당했다. 수업에 참여하기 적당한 중간 자리쯤을 차지하고 앉아 고개를 젖히고 눈 좀 감고 쉬려는 순간 한 선배가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대학원에서 나의 스트레스 유발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신학기에 걸맞은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쉬기는 틀렸으니 책이나 읽자’하던 순간, 그 선배가 다짜고짜 유창하지도 않은 중국어로 ‘다음 학기에 1년간 연수 간다며?’하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그 선배 ‘너 참 어리석다. 연수 다녀오면 벌써 28살일 텐데 누가 널 데려가겠냐?’라고 비아냥거렸다. 요즘 나이로 치면 25살이지만 당시 나이 셈법으로는 그때 내 나이 27살, 소위 노처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뻔한 농지거리 비슷한 그런 식의 질문은 늘 나의 전투력을 급상승시켰다. ‘아무렴, 내 남자친구가 데려가겠지요’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그 순간 어떤 생소한 얼굴이 ‘여기 중문과 대학원 수업하는 뎁니까’하며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맞은편의 선배는 갑자기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아~ 00 씨, 이리 와요, 이리 앉아요’라며 그 생소한 얼굴을 자기 옆으로 끌어 앉힌 후 나에게 소개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다른 학교에서 온 석사반 신입생이었다. 어디선가 중국어 하는 소리가 들려서 중문과 수업인 줄 알고 찾아왔다고 했다.


나 역시 석사과정을 다른 학교에서 마쳤듯이, 공부하고 싶은 전공을 찾아 모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대학원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00 씨가 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과 대학원으로 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런저런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있던 인물이었다.


엉거주춤 간단한 목례를 마치자 맞은편의 그 선배 우리 둘을 소개하더니, ‘00 씨 참 잘 생겼죠?’라며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친근한 말투로 나의 동의를 구했다. 난 지금이나 그때나 남자 잘 생긴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호감 가는 외모이긴 했지만 딱히 잘 생겼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과 남자 분위기였다. 뭐라고 대꾸하기 어려워 그냥 웃었는데, 훗날 남편은 내가 그 순간 ‘깔깔 방자하게 웃었다’라고 기억했다.


그럭저럭 떠들썩하게 학기 초 인사말을 나누며 한 사람씩 자리에 들어와 앉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분명 자리가 밀렸을 터인데, 어째서 그 석사반 신입생 00 씨와 나는 계속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다. 교수님이 테이블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강의를 이끌어가셨고, 자연스럽게 나는 교수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테이블에 놓인 노트에 필기를 하거나 책을 뒤적거리는 자세였다. 그런데 웬걸, 교수님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그 00 씨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무시했는데 계속 반복되다 보니 너무 어색해서 나중에는 고개를 앞으로도 옆으로도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거의 두어 시간을 그렇게 긴장하다 보니 수업이 끝날 때쯤엔 어깨와 목 근육이 다 뻣뻣해져 있었고 머리도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럭저럭 수업이 끝나고 평소 친하던 사람들과 왁자지껄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갔다. 밖엔 이미 해거름이었다. 그 00 씨가 조금 떨어진 곳의 공중전화박스에 기대어 서 있었다. 왠지 안쓰러워 보였고, 토닥거려 주고 싶다는 느낌이 잠깐 스쳤다. 00 씨가 날 보더니 다가왔다. 사실 당연히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어 시간 가까이 남의 얼굴을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할 말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00 씨는 대학원 이수 학점 같은, 신입생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하고자 한 것이었다. 석사반 동기들도 있는데 왜 하필 나한테 그걸 묻고자 했는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건 대학원 교무처에 가서 알아보시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00 씨는 마치 커다란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굉장히 친숙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생소한 느낌. ‘누구지? 누구지?’하는 그런 아련한 그리움이 잔잔한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것 같은, 고통스럽기도 외롭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성에게 끌리는 감정하고는 달랐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건 혼란스러운 건 싫었고, 머리 한 번 세차게 흔들고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속한 이 답답한 환경에서 멀리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학교 어디를 가도 뒤를 돌아보면 00 씨가 있었다. 늘 농담을 걸어왔고, 틈만 나면 커피 사 달라, 밥 사 달라, 세미나 준비를 같이 하자, 중국어도 잘 못하면서 중국어 스터디에 끼워달라고 졸라댔고, 어지간한 면박엔 아랑곳하지 않는 넉살을 보여주었다. 나의 줄기찬 ‘거리 유지’ 요구에 끄덕도 하지 않던 00 씨의 그런 넉살은 그의 생애 딱 그 한 시기에만 허용된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훗날 알게 된다. 아마 평생 쓸 넉살을 그 시기에 다 써버린 것 같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두어 달 후 학교 앞 좁은 맥주 집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던 그의 애창곡 이문세의 ‘파랑새’가 나를 향한 구애송이라는 것을 눈치챌 무렵, 00 씨는 감정 고백을 해왔고 일주일 후 우리는 첫 데이트를 하게 된다. 밀당의 고수다운 비결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나는 00 씨의 뒤돌아보지 않는 직진에 자진 항복한 것이다. 그리고 1년 반 후엔 결혼을 했다. 우리의 결혼은 지금 생각해 봐도 혁명이었다. 당시는 연상연하 커플이 자연스러울 때도 아니었고, 00 씨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왜 처음 본 그날 그렇게 두 시간 동안이나 날 계속 쳐다보고 있었느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첫눈에 나한테 완전히 그렇게 빠져버렸단 말인가?’라는 설레는 짐작을 마음속 보석처럼, 나의 결혼 생활을 지켜줄 부적처럼 간직한 채 언젠가는 꼭 확인해 봐야지 했다. 그러다가 결혼 생활 25년도 넘긴 어느 날, 아마 좀 심심하고 권태로운 오후였던 것 같다. 와인 한 잔 하며 조심조심 그 이야길 꺼내봤다. 막상 그 얘길 꺼내자니 나도 좀 쑥스러웠고, 더듬거렸다.


그런데 그 얘길 들은 남편의 반응은 내 상상 저 밖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귀까지 확 붉어지더니, ‘내가? 내가 그랬다구? 설마... 설마 당신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눈길을 끌었다 해도, 다른 학교에 처음 가서 그것도 수업시간에 마주 앉은 여자 얼굴을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 쳐다본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라고 더듬더듬, 그러나 단숨에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미친놈’이라니... 남편이 평상시 쓰는 언사도 아니었고, 남편이 갑자기 낯선 남자가 되어 있었다. 듣고 보니 남편 말이 맞긴 맞았다. 만약 남편이 수업 시간 내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면 수업에 참여한 모두가 눈치챘을 것이고 누군가는 수군거리지 않았겠는가?


내 마음속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는 듯했다. 내 사랑과 연애와 결혼이 아무 근거 없는 내 상상 위에 지어진 허무맹랑한 거짓말 같았다. 아~ 이게 뭔가? 첫눈에 걷잡을 수 없이 끌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여자만을 극진하게 사랑한 그런 남자는 이제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난 일단 세상 무안한 표정으로 내 발언을 수습해야 했다.


며칠간 곰곰 생각해 봤지만 내 평생의 그 역사적 사건을 그냥 그대로 내 기억의 오류로 묻어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한적한 산책길, 남편의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틈을 타 다시 한번 슬쩍 그 이야기를 꺼냈다. 두 번째는 이야기 꺼내기가 한결 자연스러웠다.

‘그날 우리가 계속 눈이 마주쳤던 것은 맞잖아.’

‘응. 그랬지.’

‘그럼 우리가 계~속 같은 순간에, 동시에 고개를 돌리면서 서로 눈이 마주쳤던 거야? 그게 가능해?’

‘응... 그러긴 힘들겠지?’

‘그럼 내가 계속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설마?’

‘음... 그건 아니라고 봐야겠지?’

‘그럼 왜 우리가 계속 그렇게 눈이 마주쳤던 걸까?’

‘흐음... 아무래도 내가 당신을 자주 쳐다보았나 보다...’

(늙은 얼굴에 온갖 귀여움을 장착하며) ‘왜? 왜? 왜? 여보? 왜 날 그렇게 계속 자주 쳐다본 거야?’

‘글쎄... 그걸 어떻게 설명하겠어? 그냥 끌린 거겠지? 당신이 어디 보통 여자야?’

컷!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심문은 필요치 않았다. 이것으로 우리의 사랑 이야기는 내 식대로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얼마 전 결혼 37주년이었다. 꽁꽁 묻어두었던, 자신도 이해 못 할 그 마법의 순간을 들켜버리자 어색하고 민망한 나머지 일단 아니라고 벅벅 우기고 보는 수줍고 서툰 소년의 모습이 여전히 남편에게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결혼 생활은 아직 풋풋하고, 때로는 또 몹시 떫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