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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Oct 26. 2023

그들의 방식


 ​얼마 전 남편과 결혼 30주년을 맞아 패키지로 7박 9일간의 미국 서부를 여행했다. 여기저기를 탐방하고 체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동 시간이 변수로 작용했다. 드넓은 평야를 버스로 끝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미국은 진짜 넓었다. 넓고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에 싸움을 거듭해온 나라. 오죽하면 땅따먹기의 진수인 ‘미식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일까 싶다. 땅에 대한 집착은 많은 희생 또한 치렀다. 오랜 세월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원주민, 인디언들이 떠올랐다.

 

과거 영국에서 온 청교도들은 힘든 항해 끝에 미개척지인 동부 해안에 자리를 잡았다. 미숙했던 그들에게 인디언들은 식량을 나누어주며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생존에 필요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었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첫 수학을 얻었다하여 기념하여 만든 것이 ‘추수감사절’이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인디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신앙과 문화를 강요했고 말을 듣지 않자 토지를 몰수했다. 청교도들은 ‘땅’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했다면 인디언들은 ‘땅’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필요한 만큼 자연에서 빌려 사용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결국 피의 살육전이 벌어졌고 인디언의 피쿼드 부족은 전멸하였다.

 

1830년에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에 의해 인디언 추방법이 만들어졌다. 체로키족 마을에서 금이 발견되자 쫓아낼 구실을 찾게 된 그들은 ‘인디언은 백인과 공생할 수 없는 열등한 민족이다’는 이유를 갖다 붙인다. 일찌감치 미국인의 문명을 받아들인 체로키 부족 이었지만 법률에 따라 서부의 황폐한 땅으로 쫓겨나는 최후를 맞이한다. 전염병과 추위와 굶주림 속에 1,900KM의 거리를 걸어야 했던 체로키 부족은 이주 기간 4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잔인하고 끔찍했던 여로는 먼 훗날 ‘Trail of Tears’로 국립역사의 길로 기록된다.

 

가이드가 음악을 틀어주었다. 체로키족 버전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이 노래는 인디언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명복을 빌어주고 살아남은 이들을 달래주는 진혼곡이다. 우리나라의 ‘창’과도 비슷했다. 구슬프고 처량한 읊조림에 눈물이 차올랐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는 한 칸 한 칸의 땅값을 계산했다. 저건 얼마짜리 이건 얼마짜리. 속물처럼 보일까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의 머릿속에 탑재된 아파트 시세는 부의 척도다. 문명의 고도한 발달로 편리하고 세련된 삶은 유지하지만, 반면 놓치고 사는 건 무엇인지 머물러보았다.

 

인디언들은 진짜로 열등한 민족이라서 당하고만 산 것일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자연과 생명,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은 참으로 놀라웠다. 아기가 태어나면 언덕으로 데려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인사를 시키고 대지어머니께 발을 닿게 하고 해와 물, 불, 보름달과 별에게 소개한다. 짐승을 사냥하고 나서도 마음을 다한다.

”내 사랑하는 친구여. 그대는 진정으로 날쌔고 강인하며 민첩하였다. 고맙다. 머지않아 내가 죽을 것이고 그 땅에 풀이 날것이다. 너의 자손들이 그 풀을 뜯고 먹고 살기를 바란다.“

땅을 품고 그 품에 묻혀 흙이 되고 바람이 되고 나무가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자연이 내재된 영적인 삶을 살았던 인디언들이야말로 한 차원 더 원숙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그들의 시선과 방식을 따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의 집에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너의 가죽신이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항상 너의 어깨에 닿기를.’  -체로키족의 기도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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