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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7시간전

인연이라면 함께 하겠지요

아, 인연이라는 건 함께 보낸 시간이나 노력 따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저는 지금 치앙마이로 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의 비행은 다섯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이 걸린다고 하는데요. 이륙한 지 막 20분 정도 된 것 같아요. 돈은 없고 가진 건 몸뿐인 20대 특성상, 물도 돈 주고 사 마셔야 하는 저가 항공의 할인 좌석을 예매했기 때문에 슬슬 엉덩이가 배겨옵니다. 허리가 찌릿한 걸 보니 아무래도 조만간 몸 건강도 잃게 생겼네요. 찌릿찌릿함을 애써 무시하며 여러분께 드릴 편지를 끄적여 봅니다.


 이번 여행의 동행자는 퇴사한 전 직장의 타 팀 동료입니다. 그와는 겨우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 근무했는데요. 그는 인사팀, 저는 마케팅팀이라 딱히 접점은 없었습니다. 오가며 눈인사를 나누었고, 종종 둘 중 한 명이라도 표정이 안 좋을 때면 회사 뒤편의 Wake Up이라는 카페에서 우롱차 라떼를 마시곤 했어요. 서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고, 라떼를 다 마시면 괜찮다는 듯 표정을 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난 침묵으로 위로를 대신하는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꼭 말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또 라떼를 마시다가 물 흐르듯 치앙마이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래 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말이지요. 그 자연스러움에 문득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자주 만나는 지인이라고 해도 단둘이 해외를 나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와는 집 앞에서 통닭에 생맥주 한잔하자고 하는 것 마냥 참 쉬웠습니다. 여행지를 치앙마이로 고른 것은 그저 비행기표가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언니도 저도 치앙마이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것도 한몫했습니다. 라떼를 다 마시고, 비행기를 예매하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 인연이라는 건 함께 보낸 시간이나 노력 따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더니 말이에요. 과거에는요, 억지로라도 접점을 만들고 인연을 맺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케미가 맞지 않는 사람도, 나와 핏이 맞지 않는 직장도, 흥미 없는 취미도 억지로 잡고 있다 보면 내 것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꼬옥 붙잡고 놓지 않았었는데, 결국에는 모두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리고 말더라고요. 대단한 운명이라기보다는 어쩌면 타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이제 억지로 애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만큼 했다 싶으면 놓아주려고요. 애쓰는 것과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집착과 사랑이 같지 않은 것처럼요. 내 것이 아닌 인연을 내 것처럼 다룬다면 서로를 갉아먹을 뿐입니다. 사실은요, 어제 비행기를 타기 전에 가고 싶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왔어요. 졸음을 참으며 밤새 이력서를 작성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합격이 너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어요. 진짜 내 모습이 아닌 회사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합격해 봤자, 그 인연은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을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잘 담아낸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력서를 잘 냈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인연이라면 함께 하겠지요.’ 하고 장난스레 대답했습니다. 인연과 타이밍에 답을 맡기고 저는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여러분,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우린 참으로 인연이겠지요. 이름도 얼굴도 몰라도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겠지요. 모든 것을 억지로 붙잡고 계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세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는 대신, ‘나와 잘 맞는 것’과 ‘나와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보셔요. 본인과 잘 맞는 사람, 직장, 취미를 곁에 두시길 감히 권해봅니다. 덜 애쓰고 더 행복합시다. 우린 인연이니까, 당신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여전히 엉덩이가 배기고 허리가 찌릿해요. 그러나 치앙마이에서 만날 새로운 인연이 기대돼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인연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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