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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n 29. 2024

배움의 꽃, 여뀌

난, 여뀌라고 해. 습한 냇가에서 가는 줄기 끝에 이삭모양의 붉은 꽃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마을에서 막 싹을 내밀었지. 가만히 둘러보니 내 곁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찼어. 그들 중 하나가 연약한 줄기에 다닥다닥 맺은 열매를 흔들며 나에게 말했어. "아이야! 반가워. 우린 지금 마을에 들어오려는 양미역취를 막아냈어. 그치들에게 제대로 매운맛을 보여준 거지. 우릴 맵쟁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거야." 궁금한 것이 많은 나는 "사이좋게 받아들이지. 왜 싸우는 거야?" 묻자 그 말에 어이가 없는지 "그놈들이 들어오면 너보다 훌쩍 커져 해를 가려버린다고. 그놈 옆에선 아무도 살 수 없어!. 우린 누굴 밀어내고 그러진 않았어. 하지만, 꽃 하나에 수만 개의 씨앗을 뿌려 저만 살려하고 해서 싸움이 시작된 거지" 그 말에 덧붙여 다른 여뀌가 말했어 "양미역취는 이 땅에 없던 식물이야. 사람들이 오가며 들어선 거지. 과거에 우린 그냥 여기에 살면 그만이었어. 가까이 사는 환삼덩굴이 가끔 괴롭히긴 했지만, 그럭저럭 볕을 나눠 썼지. 그런데 양미역취는 여러 해 동안 우리 마을을 파괴하니 어쩔 수 없이 힘을 모을 수밖에 없어" "어떻게 싸웠어?" 하고 묻자 "물속까지 뻗는 붉고 얇은 뿌리는 약하지만 뿌리끼리 촘촘하게 모이면 밖에서 들어올 수 없고 매운 줄기와 잎은 독이 있어서 다른 생명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고 있지"

여뀌 

내 머리 위에서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우리 이야기를 듣던 버드나무가 말했어. "너희는 나와 잎도 닮고 오염된 물을 맑게 한다고 버들여뀌라고도 불러. 내 이름을 닮은 너흰 친근해. 예부터 집 앞에 너희를 심어서 귀신도 쫓고 역귀를 막았다고 하지.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귀찮아하긴 했지만, 너희는 약과 음식 재료 그리고 푸른색 염료로 자신을 내어주었고 아이들은 냇가에서 너희 잎으로 물고기를 잡고 놀던 추억을 주었지. 모두가 어울리며 평화롭던 시절이었지." 버드나무 이야기를 심각하게 바라보던 다른 여뀌가 말했어 "네 말대로 과거에는 그랬어. 하지만 고민이 있어. 얼마 전 비가 제법 내렸을 때 뿌리째 뽑힌 친구들이 윗마을에서 떠내려왔어. 그들의 이야길 들어보니 서로 배척하고 남처럼 떨어져 있었다지. 비가 내리자 연약한 뿌리가 견디지 못해 뿔뿔이 냇물에 쓸려버렸데. 밖에서 들어오려는 양미역취가 우리를 위협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우린 처지를 제대로 알고 서로를 지켜야 해!" 그 말을 듣고 힘이 없는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들기 시작했어. 두려운 눈빛을 보았는지 나처럼 어린 여뀌가 웃으며 말했어 "걱정하지 마!. 우리처럼 어린 여뀌는 냇물에 쓸려내려가지 않게 옆에서 뿌리를 잡아주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함께라면 의지할 수 있을 거 같았어. 그래서 "나도 함께 하고 싶어!"라고 말하자, 어린 여뀌가 으스대며 "잘 생각했어! 우린 지난 물난리도 함께 견뎌냈거든. 나만 믿어!". 그때까지 조용하던 어느 여뀌가 내 뿌리를 잡아주며 “네가 잘 자라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해.  앞가림할 수 있을 때까지 울타리가 되어줄게.”하고 빙긋 웃었다. 그의 강한 뿌리가 내 뿌리를 포근하게 감싸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뭔가 모를 고마움이 밀려들었어.

그가 말하길 "우린 어린 네가 이웃과 어울려 모둠살이를 배우고, 나중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참살이를 가르쳐주면 좋겠어!" 이 말을 듣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너 홀로 살아가라 했으면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외롭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몰랐을 거야. 그런데 함께 있다 치더라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하기 싫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저 어린 여뀌가 말한 것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자 한다면 그건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누가 시킨 숙제가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돌봄이지. 지금은 내가 돌봄을 받겠지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게 된다면 자랑스러울 것 같아. 사람들이 우릴 보고 '학업의 마침'이래.  하지만, 배움은 끝이 없을 것 같아. 이제 내 배움은 시작되었어. 난 배우려고 애쓰는 여뀌, 그 배움으로 친구들과 어깨 나란히 서서 굳건하게 지금 이 자리를 지킬 거야! 어때? 나랑 엮여 볼래?


우리 주변 국가들만 위협일까?

뉴스조차 보고 싶지 않은 요즘, 서로 싸우고 상처 주고 어린아이들은 무얼 배우고 살아갈지... 

여뀌는 종류도 다양하다. 개여뀌, 털여뀌, 이삭여뀌, 장대여뀌, 바보여뀌 등등. 마치  사람 사는 지구촌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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