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 "야! 저기 제비꽃 씨앗이야!" 개미가 날 보더니 개미굴로 데려가더라고. 왜 날 이리로 끌고 왔을까? 개미 여럿이 내 옷을 벗기려고 한참을 낑낑대더니 떼어낸 옷을 자기들끼리 먹더라고. 난 발가 벗겨져서 개미굴 밖 작은 모래언덕에 버려졌지.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하며 별일 아닌 듯 이야기했던 엄마가 떠올라. 황당했지만 거추장 한 옷은 내겐 필요가 없었고 개미 덕분에 꼬불꼬불 미로 같은 개미집도 구경했어. 꼬투리에서 튕겨져 나온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왔어. '왜 난 이렇게 엄마와 떨어진 곳에 와야 했을까?' 그 답은 뿌리를 내면서 알게 되었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으면 영양분을 도무지 빨아들일 수가 없었어. 나 혼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엄마 곁에 형제들 모두 함께 살기는 힘들었을 거야. 내 옷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지.
'그런데 왜 다들 봄을 기다리는 걸까?'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도 아닌데, 내가 꽃을 피웠다고 제비꽃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것도 웃기단 말이야. 겨우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알 수가 없었어. 이른 봄날, 움을 트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크게 솟은 오리나무 아저씨야. "반가워요 아저씨!" 내 인사말을 들은 그는 시큰둥 불만스럽게 말했어. "얘야! 난, 꽃 필 때 예민해. 바람 따라 씨앗이 맺히기 때문이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래요! 이른 봄엔 꽃이 별로 없어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만, 더워지면 여기저기 크고 꿀이 많은 꽃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거예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옛날엔 사람들이 날 5리(五里, 2km)마다 심고 돌봐주었는데, 요즘은 꽃가루가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어쩐다 찬밥 신세가 돼버렸지 뭐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 "억울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오랑캐가 쳐들어 올 때 핀다고 오랑캐꽃이라고 불렀다고요" 처지가 비슷하다 싶었는지 아저씨는 봇물 터지듯 여러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계속 대꾸하진 않았어. 불만을 듣다 보니 그와 난 처지가 달랐지. 난 앉은뱅이꽃이라서 오리나무처럼 바람의 힘을 빌릴 수 없어. 게다가 사람이 좋아하든 말든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키울 수 없거든.
생각을 고쳐먹었어. 보기 좋게 보라색 꽃을 여럿 피워서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봄이 가기 전에 씨앗을 맺자. 그리고 아이들을 개미들에게 맡기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우연히 잘 될 거라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지. 오리나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누구나 맞이하는 봄이라며 기다리고 따라가기보다 제대로 보내기로 한 거야. 나 스스로 찾아가는 봄 여행, 멋지지? 모두가 춥거나 덥다고 해도 내가 견뎌낼 수 있고 꽃을 피우면 난, 봄이 되는 거지. 머지않은 곳에 양지꽃이 예쁘게 꽃을 피웠어. 씨앗 꼬투리가 벌어질 때 잠깐 보았던 저 아름다운 꽃이 생각나. 그녀는 여름을 좋아하는 장미를 닮은 노란 꽃이지. '그녀처럼 여름을 잘 견디면 행복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내 행복이란 오리나무 아저씨의 불만과 지금 아름답게 핀 양지꽃의 중간 어디쯤 있는 것이 아닐까?' 불만에서 멀어져 행복으로 가는 거지.
이제부터 난 봄을 맞이하는 꽃이 아니야. 봄을 보내는 꽃이지. 내가 봄을 보내야 봄은 떠날 수 있어. 엄마는 우리가 여름이나 가을 심지어는 겨울에도 가끔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 이야길 해주셨어. 난 봄을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고 보낼 수 있는 거야. 그것이 행복이라면, 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제대로 하면 되는 거지. 아이들을 꼬투리에서 떠나보낼 시간이 되었어. 내가 꽃을 피워냈을 때의 기쁨처럼 이별도 같아. 나도 그랬듯 떠나는 아이들이 뭐든 궁금해하고 그 답을 찾는 여행이 되길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