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시력검사표에 적인 꼬부랑글자가 뭐야”?
시력검사를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내게 앞에 앉은 친구가 물었다. 나는 5학년이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에 영어 과목이 없었기에 알파벳도 모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음. 아는 글자인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그때 알파벳을 제대로 몰랐다.
그날 오후 하교하고 집에 온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영어를 좀 알아야겠어.’라고. 그리고 나의 외국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습지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기 시작했다. 그때는 학습지를 밀리기도 하고 영어가 갑자기 퍽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이 된 나는 영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공교롭게 당시 내가 재학 중이던 중학교가 원어민 강사 시범 교육 선정학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업 시간과 방과 후에 원어민 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국적을 불문하고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파란 눈에 금발의 원어민이 우리 학교에 있다는 건 나에게 참으로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한참 팝송에도 빠져 있던 터라 쉬는 시간이 되면 미국인 선생님을 붙잡고 팝송 가사를 물어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팝송의 가사는 아주 선정적이고 노골적이다. 하하. 그래서 아직도 나는 그 의미를 알려주려던 미국인 여자 선생님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방과 후 원어민 영어 수업에는 또 다른 미국인 여자 선생님을 만났다. 그 분은 퍽 친절하기도 하셔서 꽤 친해졌다. 우리 집에 초대해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함께 근처 진해에 있는 놀이동산에 같이 놀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를 좋아하게 되어 가며 닥치는 대로 영어와 관련된 것은 찾아서 읽고 듣고 쓰고 하며 나의 중학 시절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 처음 이메일도 만들어졌다. 보석을 뜻하는 gem을 넣어서 만들고 싶었으나 이미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어 결국 gemee가 되었는데 친구들은 내 아이디를 개미라고 놀려댔다. 나는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어로 이어지는 세상과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세상. 두 개의 멋진 신세계?
그 후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에 가게 되었다. 당시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계셨던 삼촌댁에 한 달 동안 가게 되었는데 그 또한 내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안겨주는 사건이었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2001년, 대학생이 되고는 교대에서 외국어 강의를 해주시던 션텔이라는 캐나다인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와 베프가 되어 4년 대학 생활을 함께 보냈다. 2005년 교사가 된 후에도 나의 영어와는 인연은 끊어지지 않아 줄곧 영어 전담 교사를 했다. 다양한 국적의 원어민 교사들과 수업을 많이도 했다. 그중에서도 2008년 울진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만난 재클린은 나의 인생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내가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한국을 찾아주었다. 한국인보다 더 정많은 흑인 언니였다. 그리고 작년 드디어 2023년 재클린이 출장차 서울에 오게 되었을 때, 우리는 20년 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녀는 주말이면 창원에 내려왔다. 주말마다 머물며 똥손인 나를 대신해서 내 딸들의 머리까지 땋아주는 그녀와 우리 가족은 더 깊은 연을 맺었다. 이러니 영어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어는 나를 따뜻한 사람과 더 나은 세상으로 늘 이끌어 주었다.
나는 영어 이외에도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데, 서른 즈음에 만난 친구 중 하나는 일본인 친구 나오코상 덕분이다. 2009년 나는 울진에 살고 있었다. 당시 재미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마침 나오코도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어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 한국어와 일본어를 교류했다. 그 결과 나오코는 한국어 검정시험에 통과하고 나도 JLPT 2급을 딸 수 있었다.
또 다른 나의 외국어는 아랍어이다. 아랍어권에 살았기에 아랍어를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부다비에 살며 아랍어를 배우는 사람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아이들의 학교 과목에 아랍어가 들어가 있고 일주일에 4회씩 수업을 들어야 하며 수업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어려웠기에 아이들을 도와줄 요량으로 처음에는 시작했다. 그러다가 쇼핑몰을 갈 때나 주변을 둘러보자 모든 가게의 간판에 영어와 아랍어가 동시에 적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읽을 수 있으면 아랍어를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 주변 친구 중에는 영어와 아랍어를 동시에 아주 잘 구사하는 bilingual (이중언어자)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아랍어를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랍어는 외국어 중에서 단연 최상급으로 어렵다. 아랍어의 쓰기는 영어의 필기체와 비슷하다. 알파벳들이 다른 알파벳과 결합하면서 모습을 바꾼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며 단어의 가장 앞에 올 때와 가운데에 올 때, 마지막에 올 때 모양이 다 다르다. 영어와 일본어는 한 달이면 알파벳을 외우고 읽을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랍어는 알파벳을 익히고 기초 단어를 배우는 데에만 몇 달이 걸렸다. 그렇지만 아랍어를 배우고 기초 표현을 배우고 나니 아랍어권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아부다비에 사는 것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내 친구들과의 소통과 교류도 훨씬 더 깊어졌다. 결국 지금은 아랍어를 겨우 읽고 쓸 줄 아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랍어는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언어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외국어는 중국어이다. 2023년 2월, 4년간의 아부다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와 아이들을 생각보다 오랜 부적응의 시간을 겪었다. 한국은 내 나라인데 4년 전에 아부다비로 향하며 떠났을 때 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에 어쩔 줄을 몰랐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아이들도 매일 울며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아부다비에 살며 4년 동안 현지 적응을 위해 아이들은 따로 한국어로 공부를 시키거나 책을 읽히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기 6개월 전, 토요일 한글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다. 6학년이 된 첫째 아이의 문해력은 떠날 당시 1학년에 머물러 있었고 떠날 때 만 4세였던 둘째 아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것이 한자 공부였다.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이 접하며 어렵다고 하는 단어들은 대체로 한자어였고 그 때문에 한자 문화권인 한국에서 문해력을 기르려면 한자를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한자 8급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한 급수 한 급수 올라가자 하고 생각하던 터였다. 나는 아부다비에 거주할 당시 아이들이 다니던 영국국제학교에 보조강사로 봉사활동을 2년 넘게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막 아부다비로 온 영어가 거의 안되는 아이들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고 후에는 방과 후에 국제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일본어 수업을 진행했다. 또 아랍어를 공부하게 되고서는 아랍어 기초수업에서 아랍어 알파벳과 단어들을 배우는 학급에 들어가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내가 운영하는 무료 일본어 방과 후 수업의 학생이었기에 일본어 알파벳은 할 줄 알았다. 일본어도 중급이상으로 올라가면 한자어가 섞여 있기에 한자어도 배울 요량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초 일본어를 알고 있으니 일본어 학습지를 신청해서 일본어 학습을 이어갔고, 나는 이미 일본어는 급수가 있으니 같은 문화권 언어이고 한자어로 구성된 중국어 학습지를 신청하여 학습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어를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말과 중국어의 접점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일본어 단어 중에서도 학교, 병원 등 한자어는 발음만 다를 뿐 한국어와 같은데, 중국어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한자어를 알면 중국어 학습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을 터였다. 지금 나는 HSK 2급 시험을 아이들과 함께 준비 중이다. 마음먹고 한다면 한두 달 안에도 딸 수 있는 쉬운 급수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5번째 언어인 만큼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중국어 다음에는 어떤 언어를 배우게 될까? 생각만 해도 설레는 상상이다. 나에게 외국어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같은 것이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는 편견과 두려움 또는 헛된 기대 같은 것들 그리고 설레임이 혼재되어 있다.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곳에는 나의 예상을 뒤엎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날 수 있는 길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 나와 다른 말을 하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어우러지는 문화를 만들어가며 한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나를 사로잡는다.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접하며 그 문화를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체험하는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생에 5가지의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