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AI를 상담 상대로 생각한다.
2025년 말, 한국 SNS에서 신년운세 프롬프트가 유행처럼 번졌다. AI로 사주와 운세를 묻는 방식이었는데,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보기엔 참여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AI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언어모델은 역술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걸 물었을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HBR에 최근 실린 기사가 그 답에 가깝다. 연구자 마크 자오-샌더스(Marc Zao-Sanders)는 수백 개의 Reddit 스레드와 온라인 포럼을 분석해 2025년 현재 사람들이 생성형 AI를 어떻게 쓰는지 정리했다. 연구 방법이 커뮤니티를 확인한 것이라 신뢰성이 높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결과는 기술 업계의 예상과 달랐다.
1위는 치료·동반자(Therapy/companionship)였다. 2위는 '내 삶 정리하기', 3위는 '삶의 목적 찾기'였다. 상위 세 항목이 모두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활용이다. 사람들이 AI에게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은 코드 디버깅 요청이 아니었다. "나 요즘 좀 힘들어"에 더 가까웠다.
전년도 조사에서 가장 컸던 항목은 '기술 지원 및 문제 해결'이었다. 1년 만에 '개인 및 전문적 지원' 범주가 그것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AI는 기술 도구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은 AI를 심리적 동반자로 먼저 붙잡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Reddit 사용자가 남긴 글이 이 흐름을 압축한다. 인구 10만 명당 심리상담사가 1명인 나라에서, 언어모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썼다. AI는 진짜 상담사가 아니다. 그러나 접근성이 전무한 곳에서 접근 가능한 무언가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쓴다. 그 단순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신년운세 유행도 같은 맥락이다. 정확한 예측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새해를 앞두고 막연한 불안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AI는 판단하지 않는다. 24시간 응답한다. 말하기 민망한 질문도 받아준다. 이 특성이 개인적 용도에 먼저 맞아떨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물론 순위 전체가 개인적 활용만은 아니다. 코딩 보조, 코드 검수, 창의적 글쓰기, 업무 자동화 같은 생산성 관련 사용도 꾸준히 순위를 올리고 있다. 100개 사용 사례 중 38개가 전년도에 없던 새 항목이었다. 이 영역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널리 쓰인다'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좋은 결과를 내려면 좋은 프롬프트가 필요하고, 좋은 프롬프트를 쓰려면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조기 수용자(early adopter) 단계에 가깝다.
한편 기술 업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드 생성, 업무 자동화 기능을 상품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ChatGPT와 Claude 같은 주요 플랫폼도 이 기능들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메모리 기능 강화, 대화 맥락 유지, 맞춤형 페르소나 설정이 빠르게 기본 기능으로 편입되는 중이다. 플랫폼이 직접 이 영역을 가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회는 없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의 AI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범용 도구다. ChatGPT든 Claude든, 어떤 질문에도 답하도록 설계된 일반 목적의 플랫폼이다. 바꿔 말하면, 특정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번아웃 직장인의 저녁, 이혼 후 혼자 육아하는 사람의 아침, 은퇴 후 방향을 잃은 사람의 오후—이런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 밀착한 애플리케이션이라면 범용 플랫폼이 채우지 못하는 자리를 노릴 수 있다. 특정 상황에 최적화된 AI 서비스는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AI를 처음 켤 때 업무 지시서를 들고 오지 않는다. 내 삶에 관한 질문을 먼저 꺼낸다. 업무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은 이미 조직이 강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반면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는 아직 시장이 얇다. 그쪽을 겨냥한 비즈니스를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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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Marc Zao-Sanders, "How People Are Really Using Gen AI in 2025", Harvard Business Review,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