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일을 대신하면, 내 가치는 뭘까?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현실화된 시기에 필요한 강점은?

DeNA가 보여준 AI 도입의 진짜 결말

AI가 내 일을 도와주면 나는 조금 덜 힘들어질까. 많은 직장인이 그렇게 기대한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게 계산한다. AI가 한 사람의 업무 시간을 줄여주면, 기업은 그 시간을 휴식으로 돌리지 않는다. 다른 일을 더 맡기거나,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다시 배분한다. AI는 업무를 도와주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인력을 다시 배치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일본 기업 DeNA다. 2025년 DeNA는 창업자이자 대표이사 회장인 남바 도모코의 선언 아래 'AI 올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2026년 3월 6일 열린 'DeNA × AI Day 2026'에서 그 성과를 공개했고, 3월 19일에는 발표 전문이 공개됐다. 숫자는 충격적이었다.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AI가 업무의 95%를 처리했고, 생산성은 최대 20배까지 뛰었다. 법무, QA, 서비스 심사 같은 비개발 업무도 AI를 전제로 다시 설계했다. QA는 절반 수준의 인원으로 같은 결과를 냈고, 심사 업무는 60% 줄었다.


생산성 20배보다 더 무서운 장면

대부분은 여기서 박수를 친다. 드디어 기술이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봐야 할 대목은 그다음이었다. 생산성이 높아졌는데도 사람들은 한가해지지 않았다. 절감된 시간을 신사업에 돌리기보다, 기존 업무를 더 많이 하고 더 촘촘하게 채우는 쪽으로 흘렀다. 현장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익숙한 일을 더 잘하는 편이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이 원한 것은 '같은 일의 고도화'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같은 인원으로 다른 일을 해내는 조직'이었다.

그래서 DeNA는 제도까지 바꿨다. 관리자 평가 항목에 '인재 배출'을 넣었다. 지금 조직의 인원을 잘 지키는 관리자가 아니라, 기존 사업의 잉여 인력을 빼내 신사업으로 보내는 관리자를 높게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표현은 건조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로 시간이 절약됐다면, 그 시간만큼 사람도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남는 시간을 돌려주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직장인은 불편해진다. AI가 내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 회사생활의 조건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 8시간 걸리던 일을 2시간에 끝낼 수 있게 되면 회사는 남은 6시간을 선물처럼 돌려주지 않는다. 새 업무를 얹고, 다른 기능을 요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부서로 옮기고, 필요하면 전혀 다른 과업의 성과까지 요구한다. 기업의 계산법은 언제나 비용 최적화와 성장 기회 쪽으로 기운다. AI는 그래서 생산성 도구인 동시에 조직 재편의 도구이다.

일본 기업은 종신고용의 가치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런 변화를 인원 재배치, 인원 교체, 사업 전환 같은 표현을 쓴다. 그러나 그 말이 뜻하는 바가 가볍다고 보긴 어렵다. 지금 하던 일에서 밀려나 다른 자리에서 다시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직함은 남아도 역할은 사라질 수 있고, 소속은 유지돼도 커리어의 중심은 이동할 수 있다.


AI 사용자는 빠르게 평범해진다

문제는 많은 직장인이 아직도 AI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데서 멈춘다는 점이다. 회의록을 빨리 정리하고, 보고서 초안을 뽑고, 메일 문장을 다듬는 일은 분명 편하다. 하지만 이런 편의는 너무 빨리 보급된다. 한때 소수만 쓰던 기능은 대형 AI 서비스의 기본 옵션이 되고, 곧 엑셀처럼 누구나 쓰는 도구가 된다. 모두가 쓸 수 있는 도구는 오래지 않아 누구의 경쟁력도 되지 못한다.

앞으로 회사가 찾는 사람은 AI 사용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AI를 기준으로 업무 순서를 바꾸고, 협업 방식을 고치고, 팀의 생산성 공식을 새로 쓰는 사람이다. 질문을 더 정확히 던지고, 결과를 검증하고, 현장 데이터와 고객 맥락을 붙여 실제 성과로 바꾸는 사람이다. 자기 전문성에 AI를 결합해 조직의 속도를 바꾸는 사람만이 중심 인재가 된다.


살아남는 사람은 AI 설계자다

DeNA가 던진 또 하나의 메시지도 중요하다. 범용 AI 모델과 정면 승부하지 말고, 그들이 쉽게 침범하지 못할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얕은 보고서 정리, 반복적 커뮤니케이션, 상투적인 기획 문서는 먼저 잠식된다. 반면 고객을 오래 만나 쌓은 감각, 특정 산업의 규제와 관행을 읽는 힘, 조직 안팎의 데이터를 엮어 판단하는 능력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생존선은 '내 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 일에 얼마나 깊이가 있느냐'에서 갈린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AI가 내 업무를 대체하느냐가 아니다. 이미 대체는 시작됐다. 더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해 내 업무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느냐다. 그 능력이 없으면 인원 재배치와 인원 교체라는 이름 아래, 내가 해오던 일과는 다른 자리에서 다시 시험받게 된다. 반대로 그 능력이 있으면 AI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된다. AI 시대에 자리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업무용 도구의 최종 사용자가 아니라, 자기 업무를 먼저 AI화하는 설계자가 되는 것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m61ybjm61ybjm61y.png


#AI #LLM #AI에이전트 #AX #AI전환 #업무자동화 #직장인 #커리어 #생산성 #조직개편 #DeNA #일본기업


매거진의 이전글AI가 먼저 간 곳은 직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