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서 23년간 ‘이규태 코너’를 연재한 이규태는, 컴퓨터가 귀하던 시절에도 이미 자기만의 검색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읽는 사람인 동시에, 그 자료를 다시 꺼낼 수 있게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진짜 재능은 박학이 아니라 색인이었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정보를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게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사람이다.
자료를 쌓는 것과 자료를 다시 불러올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수집이지만, 후자는 체계다. 이규태의 칼럼이 오래 버틴 힘도 결국 그 체계에서 나왔다고 보는 편이 맞다. 글을 쓰는 능력만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티기 어렵다. 오래가는 사람은 대개, 자기만의 정리 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인터넷 시대가 바꾼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개인이 카드와 파일로 해야 했던 일을, 검색 엔진과 링크 구조가 대신 떠안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의 등장은 그 변화의 상징이었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했던 연결 구조가, 인터넷에서는 공동 편집과 링크를 통해 훨씬 싸고 빠르게 가능해졌다. 한국에서는 나무위키 같은 서비스가 이런 감각을 더 대중적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의 경쟁력은 정보를 독점하는 데 있지 않았다. 잘 찾고, 잘 엮고, 더 높은 설명으로 바꾸는 데 있었다.
하지만 공개 위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모두가 보는 백과사전은 내 업무의 기억 창고가 될 수 없다. 회사의 회의록, 고객 대화, 검토 메모, 내부 판단 기록은 따로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위키의 효용을 알면서도, 막상 실무에서는 별도의 시스템을 세우고 권한을 나누고 운영 규칙을 붙드는 일이 남아 있었다.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가 끝내 남는 것이다. 위키피디아가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면, 회사와 개인은 결국 자기만의 위키를 따로 가져야 했다.
안드레이 카파시의 ‘LLM Wiki’가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 있다. 그의 제안은 위키 플랫폼을 새로 짓자는 말이 아니다. 원문 문서는 손대지 않는 진실의 층으로 두고, 그 위에 LLM이 관리하는 위키를 얹고, 다시 그 위에 어떤 형식으로 요약하고 무엇을 갱신할지 적어둔 규칙 문서를 두자는 구상이다. 질문할 때마다 원문에서 필요한 조각을 다시 끌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새 자료가 들어오면 LLM이 요약하고 연결하고 기존 문서를 고쳐가며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새 서비스가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어떤 규칙으로 유지할지를 LLM에 알려주는 일이다.
이런 구조는 보안 문서를 다루는 로컬 환경에서도 응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중요해질 능력은 완성품을 하나 더 만드는 능력이 아닐지 모른다. 예전에는 원하는 기능을 갖춘 플랫폼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이제는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자료를 남길지, 무엇을 연결할지, 충돌하는 정보는 어떻게 표시할지, 새 문서가 들어오면 어디를 갱신할지를 설계해 두면 된다. 사람의 일이 화면을 다 만드는 데서, 업무의 흐름을 계획하고 그 규칙을 기술해 지시하는 일로 옮겨가는 것이다. 카파시의 아이디어가 던지는 변화는 기술 자체보다 이 이동에 있다.
카드 정리의 시대에는 사람이 손으로 색인을 붙였다. 검색의 시대에는 사람이 링크를 따라다녔다. 이제는 사람이 규칙을 짜고, 기계가 정리를 맡는다. 이규태가 평생 공들였던 정보 관리의 노동이, 다른 방식으로 자동화되기 시작한 셈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완성품의 가치는 조금씩 내려가고, 일을 어떻게 흘러가게 할지 설계하는 능력의 값은 더 올라간다. 다음 시대의 경쟁력은 어쩌면 많이 만드는 사람보다, 일을 잘 지시하는 사람에게서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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