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때 나를 존경한다던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으니 족히 30년이 넘어가는 가장 친하고 오래된 친구다. 지금도 나를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각별히 여기는 마음은 한결같을 거라 믿게 해주는 친구이다.
나는 멀지는 않지만 타 지역으로 결혼했고 각자 가정 돌보느라 또 그 친구는 남편대신 생활전선까지 뛰어들어 더 정신없고 바빠 안부전화도 일 년에 몇 번이 전부가 되기도 했었었다.
요즘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난다.
늘 해맑고 밝아서 걱정 근심 없이 사는 줄로만 알던 친구, 싫은 소리를 들어도 그냥 웃기만 해서 상처받지 않을 거라 오해했던 친구, 자기 것을 주장하기보다 책임과 의무가 무거웠던 친구...
무엇보다 나의 20대를 많은 추억들로 수놓을 수 있도록 늘 함께 했던 소중한 친구이다.
그 친구의 결혼생활은 매우 극단적이었고 버라이어티 했다. 배우자의 오랜 외도도 모자라서 알코올중독과 정신질환으로 내 친구와 친구의 아들을 오랜 시간 괴롭혔다.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하고 가정을 지키고 싶어 했던 친구는 그 모자란 인간을 끊임없이 용서해 주고 봐주며 살았다. 주변에서 바보소리까지 들으며 살았지만 결국 그 고통의 시간은 끝이 나긴 했다. 이혼으로 끝이 난것은 아니다.
친구의 인내심이 바닥이 보인 몇 차례, 이혼을 요구하긴 했으나 남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매사 잘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 반복되었다. 친구는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헌신했지만 그 남편은 변화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삶을 지옥처럼 여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율이와 동갑으로 올해 고등학생이 된 친구의 아들과 친구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너무나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한다. 이젠 불면증과 우울증 약에 취해 몽유병환자처럼 돌아다니는 남편을 보지 않아도 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묘하고 살기 가득한 시선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했다.
남편과 연락을 끊다시피 한 남편의 여자형제들은 장례식에서 아무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조카(친구아들)를 생각해서 차라리 없어져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다. 또 이 정도로 산 것도 내 친구 덕이라고도 모두들 말했을 정도라고 하니 친구 남편의 행태가 확실히 평범 수준은 넘고도 남았을 것이다.
친구가 혼자가 된 후로 과거 속앓이 했던 순간들을 조금씩 내게도 보여주고 있다.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용케도 견뎌냈는지 친구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내가 존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순하게만 보이던 항상 미소가 가득했던 어여쁜 내 친구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 순수하던 친구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순간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들 속에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하며 울지 않으며 견디기만 하는 다 괜찮아 보이는 여자... 나와 친구는... 우리는 많이 닮아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아픔도 고통도 느끼기 전 순수하기만 한 소녀 같았던 우리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 친구도 그 친구와 함께였던 모든 순간을 추억하며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워진다.
친구와 함께 봤던 영화들, 예쁜 것들을 서로 추천해 주며 쇼핑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 떨며 까르르 웃었던 작은 순간들...
지금의 우린 그때처럼 어리지 않다. 세상살이에 노곤해져 생기도 조금 잃었다. 하지만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큰 어른이 된 우리를 그래도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응원해 본다.
열심히 할 만큼 했다고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그 친구를 마음으로 한껏 안아주며 위로해 준다.
세상 살이 내 맘 같지 않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멀리서나마 그 친구가 잘 지내고 있음에 아들과 함께 행복을 찾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