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나라

by 전두엽

같이 살던 친구가 시험을 준비하러 고시촌으로 떠난 어느 연말부터 혼자 살게 됐습니다. 이삿짐이라고 싼 게 100l 짜리 종량제 봉투 세 개가 전부던 어설픈 자취생은 이제 넓지 않은 복층에서 고양이와 삽니다. 춥고 배고프지 않도록 아낌없이 보일러를 틀어 두고, 공기가 조금이라도 무거워진다고 느껴질 때 창문을 엽니다. 눈부심에 낮잠에서 깨지 않도록 버티칼을 쳐 두고, 그럼에도 햇빛을 받고 싶을 땐 그 틈을 잠깐 벌려 둡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지는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1년 여간 여러 번 개편을 거쳐 오늘날의 구성이 됐어요. 맨 위칸 손이 잘 닿는 곳에는 고양이 주식캔과 츄르를 쌓아 뒀는데 한달이면 동이 납니다. 두번째 칸에는 장류와 다진 마늘, 흙대파를 숭덩 썰어둔 통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신선칸'인 셋째 칸은 고기, 두부, 감자 등이 수시로 들락거리고요, 최근에는 과일들도 이쪽으로 옮기는 바람에 어지러워졌습니다. 넷째 칸을 한 달치 한약으로 채웠거든요. 문에는 계란과 버터, 케찹과 까망베르 치즈, 주스와 물, 콜드브루 커피 따위가 다닥다닥 들어 있습니다.

복층이 불편하다는 무수한 경고에 이사올 때부터 위층과 아래층의 공간 특성을 아예 분리했습니다. 아래층에는 탁자와 노트북, 소파, 화장대, 고양이 밥그릇, 옷, 웬만한 생활용품을 둬 일과를 날 수 있게 했고 복층엔 오로지 침대와 책꽂이, 속옷장만 두었습니다. 잘 때가 되면 아래층 불을 끄고 물통과 휴대폰, 베개에 깔 새 수건만 챙겨서 계단을 더듬어 올라갑니다. 침대맡에 있는 조명 스위치를 켜면 따뜻한 주황등이 복층을 밝힙니다.

제발 아늑하기를 바랐습니다. 뻥 뚫린 구석을 채울 훈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려면 비효율적이거나 어색하게 굴러가는 식의 집안일이 제 신경을 곤두세워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제법 생각한 대로의 모습을 갖춘 이후에도, 여전히 공간을 영유하는 동안 어딘가 결핍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는 마음이 힘들 때 훌쩍 떠나 상념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 있으면 좋다고 하셨어요. 그게 자연에 가깝다면 더 좋고요. 그런 공간이 있고 없고가 삶을 지탱하는 힘을 꽤 크게 가른다면서요. 그런 당신은 그런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버들과 억새가 평화롭게 흔들리는 선유도에 앉아서 친구와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친구는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떠나자면 열 살 남짓까지 뛰어 놀던 옛 동네 공원을 저도 모르게 찾게 된다고, 그 곳이 자기에겐 그런 공간인 것 같다고 말해 줬습니다.

저는 그게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힘들여 떠나지 않아도 되고, 자가발전하듯 일상 자체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러기에 이 곳엔 제 결핍이 또다른 결핍을 끝내 방치해 버렸다는 죄책감이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새 삶을 선물하겠다는 호기로 데려온 어린 고양이가 이 공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금세 떠났거든요. 그 일이 선명한 곳을 제 안위를 위해 다시 찾아 들어가는 순간은 매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결핍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아픈 곳이 돼버렸다고요.

그런데 이 곳은 죄책감에서 끝나도록 절 가만 두지 않았어요. 밥그릇을 채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바닥을 쓸고 쓰레기를 비우는 일이 결국 저를 살찌우고 해를 넘겨 줬습니다. 지저분하고 끝나지 않는 것들의 연속인 줄로만 알았던 모든 게 사실은 제가 저를 위로하는 과정이었다는 걸 아주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치유의 공간이 될 리가요. 다만 결핍된 채 머물러도 되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저에 대해서부터요. 처음 듣지만 가사가 마음에 드는 노래를 틀어 외로운 저녁을 채우고, 그래도 나를 괴롭히고 싶어진다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결제하면서요. 내 심정과 꼭 닮은 소설을 읽고 나서 그것의 손톱만큼도 따라갈 수 없는 투박한 문장으로 일기를 쓰면서요. 계절별로 적절한 두께의 잠옷을 사 입고, 섬유유연제를 듬뿍 넣은 덕에 오래 됐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양말을 꺼내 신으면서요.

1년 조금 넘게 함께 하고 있는 고양이에게도요. 다행히 고생하기 전에 선한 이들에 의해 구조돼 해맑은 아이예요. 그 태평한 모습은 이 장소를 내어준 나에게 몰두하려는 저를 다시 그에게 집중하게 합니다. 먼저 떠난 고양이도 생각나게 하고요. 여전히 모자란 제가 그에게 미처 못 해준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기꺼이 네 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이 고양이가, 이 곳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충만함을 주는지요.

여전히 매일 밤 일정 시간을 자책하는 데 쏟고 마음이 자주 어떤 이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축축해집니다. 그러는 동안 이 공간은 어쩔 수 없이 닳겠지만요, 이제는 그저 수많은 결핍들이 부끄러움 없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여기려고 합니다. 작은 고양이와 나약한 제가 서로를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바둥거렸던 흔적들을 예쁘게 봐 주려고요. 대단한 곳이 따로 있나요. 결국 이 겨울에 뜨끈한 바닥에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쓸 만한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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